‘죽음이 물었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다른 말로 하자면... 누구도 안 죽을 수 없다. 죽음이란, 생로병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사실 무거운 주제다.
죽음이 두렵고도 어두운 것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사후 세계에 대해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죽음은 늘 연구 대상이며 미지의 영역이다.
누군가가 죽었다고 가정해보자. 사인(死因)은 의학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정보에 불과하다. 이는 뉴스며 병원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단적인 형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있었고 그 세계가 스러졌다. 그러는 순간 죽음은 이미 감성의 영역이다.
이러한 죽음을 매일 매일 목도하는 사람은 어떨까? 완화의료 전담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의사 아나 클라우디아 킨타나 아란치스(Ana Claudia Quintana Arantes, 이하 아나 아란치스)의 저서 ‘죽음이 물었다’를 통해 자신이 만난 ‘삶’들과 ‘죽음’들 그리고 ‘죽어감’들을 함께 관찰하게 되었다.
p16. 죽음에는 예고편이 없다. ‘죽어감’이 길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서 서둘러 사라진다.
무병장수하고 자다가 내 집 침대에서 죽는 것. 만국공통 제일의 호상이지 않을까? 사람들이 이러한 죽음을 축복으로 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죽음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
우리는 주변에서 학습한 많은 죽음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죽어감’에 대해서는 알기를 주저한다.
지금도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당장의 아픔을 덜어내며 연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죽어가고 있는 과정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들이 죽어가는 것은 맞지만, 죽어가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단지 나의 죽음이 내 인생 어디 지점인지 알지 못 할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태어난 이상 모두가 ‘죽어감’의 상태에 놓인다고 생각한다.
p26.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 인생의 일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중략) 우리 모두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며, 단지 육체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행위로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한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이 무서워서 그것만을 떠올리며 살 수도 없다. 언제든 두 손 비우고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무소유’의 정신만으로 현재를 보낼 수도 없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결국 삶이다.
과거 드라마 속 삼순이는 말했다.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노라고. 나는 그 의견에 반대한다.
빛났던 시절이 있었다면. 그것이 과거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반짝반짝했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삶에 다양한 형태로 저장되어 다가올 삶의 원동력이 되어줄 수도 있다.
p94.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따라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삶이 주는 기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다 다른 서사로 연애를 하지만 형태나 순서는 대체로 비슷하다. 감전된 것 같은 짜릿함이 있고, 설렘이 있고, 뜨겁다가 다정한 온도로 식어간다. 편안해진다. 그러는 순간 연애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느 지점들을 모두 흘러가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 처음같은 짜릿함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사랑은 지속될 수 있다. 설렘이 가득했던 며칠의 기억으로도 한 사람을 영원히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
여느 직장인들은 하루의 삼분의 일 이상을 회사에서 회사일을 하는 데에 사용한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제 시간을 내어주며 돈을 벌고 있으니까.
우리네 아버지 세대에는 첫 직장이 마지막 직장인 경우가 많았고 회사에 충성하는 게 풍토였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은 기본이요, 요즘 사람들은 직장생활과 퇴근 이후의 시간을 분리해서 ‘본캐’와 ‘부캐’로 두 개의 삶을 산다.
n잡러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다양한 직업을 동시에 갖고 사는 시대다. 국내 최고의 기업 S전자는 주3일제 근무를 시장 최초로 도입한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길어졌고,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시간은 짧아지는 추세다.
경험의 기간보다 중요한 것은 자극의 강도이며, 각자가 느끼는 특별함이다. 시간은 늘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가지만 그 시간 안에서 쌓은 경험은 내 인생의 지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p100. 우리의 시간 체험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시계로는 단 5분간 지속된 체험이 너무도 놀랍고 특별하여 영원히 기억에 남기도 한다.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었다. 바로 조조 모예스 작가의 소설 원작이자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 되어 큰 사랑을 받은 작품 「미 비포 유(Me Before You)」 다.
미 비포 유는 로맨스물이기도 하지만 연명치료, 완화의료, 존엄사(안락사)에 대해 또렷하고 날카로운 잣대를 제시한 작품이었다.
끔찍한 사고 이후 하반신 장애를 갖게 된 남자주인공 윌은 존엄사를 희망했다. 여자주인공 루이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윌의 가족들은 윌이 마음을 바꿔 계속 살아가게 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윌은 제 삶을 사랑하는 이유로, 결국 존엄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루이자는 마음 아파하지만 상처는 삶보다 길지 않다. 윌은 떠나고도 루이자는 여기에 남아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p153. 죽어가는 사람의 곁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죽음의 날이 올 때까지 삶이 이어지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
p154. 많은 사람들이 몸은 멀쩡히 기능하는데도 진짜로 살아 있지 못한다. 그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책을 읽으며 죽음과 삶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계속 떠오르는 명언이 있었다. 탑 모델 한혜진 님이 한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다.
세상에 어떤 것도 제 마음대로 안 돼요. 일도 사랑도 제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제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제) 몸밖에 없더라고요.
- 모델 한혜진
‘죽음이 물었다’를 읽고 느낀 점을 이 말을 인용하여 표현하고 싶다. 죽음은 내 마음대로 안 되지만 삶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다.
p232. 당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그런 사람을 겪어내야만 했던 자신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중략) 삶 속의 일상적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무능력자가 된다.
죽음을 이토록 자유자재의 언어로 구사할 수 있을까. 저자가 작가가 아닌, 의사라서 더욱 과감한 영역을 오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 속의 일상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나의 죽음들을 인정하고 털어내고 또 다시 사는 것.
이 책을 읽고 나면 희한한 자신감이 생긴다. 죽음 앞에선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는 것처럼.
올해는 모두 흘러갔지만 작고 소중한 며칠이 남았고, 내 인생에는 다시 없을 내년이 오고 있다.
가장 좋았으며, 가장 로맨틱했던 최후의 구절로 글을 마무리한다.
p262. 모든 것은 죽지만 사랑은 예외다. 오직 사랑만이 당신 안에서 불멸의 가치를 지닌다.
이 포스팅은 세계사컨텐츠그룹을 통해 책과 원고료를 지급 받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