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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Feb 17. 2022

우아한 독(毒)서 클럽 10.

위대한 개츠비, 프렌치 디스패치


1790년, 미국 수도의 지위를 상실한다. 허드슨강이 대서양을 만나는 그 지점에서 신선하고 달콤한 공기가 하늘을 가른다. 마침내 새들이 날아다니고 울창한 나무가 뒤덮인 '푸른 언덕의 섬'은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바로 '뉴욕'이다. 남성들의 목젖이 튀어나올 정도로 고개를 제대로 꺾어야 뉴욕의 빌딩 끝을 볼 수 있다. 보험업자, 은행가, 변호사, 그리고 부동산으로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까지. 그들이 마시고 뱉어내는 붉은 술은 뉴욕의 불빛을 자본주의로 물들인다.



이쯤 읽었나 보다. 위대한 개츠비를 짝퉁 YG 승리의 역할 모델 정도로 인식했던 나에게 연속으로 영화 리뷰 숙제를 안겨주던 사비나는 이미 와인에 반쯤 취해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의 눈빛을 따라 이제 그만 마시라고 사비나의 손을 잡았다.



"이름도 예쁜 데이지, 그녀는 돈, 물신(物神)의 상징이에요. 개츠비가 난생처음 알게 된 '우아한'여자가 데이지예요. 개츠비는 데이지가 탐이 났나 봐요. "


"개츠비의 베아트리체인가요?"


"오우 노! 데이지는 돈을 버리지 못해요. 겁쟁이죠.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르는 개츠비의 구애에 흔들렸지만, 예일대를 졸업한 남편 톰 뷰캐넌을 등질 수 없죠. 부( 富)가 주는 젊음과 신비 속에서 데이지는 안전하고 은처럼 빛을 내뿜는 뉴욕 그 자체였으니까요."



장소를 옮겨가며 독서모임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한 내가 카페를 비우지 못하자 꽤 많아진 독서모임 멤버들과 사비나는 영화 리뷰 모임을 카페에서 하자고 했다. 타인을 분석하는 시뮬레이션 끝에 알 수 없는 분노를 거친 목소리로 뽑아내던 사비나는 올라에게 와인을 부탁했다. 커피 향이 흐르고 클래식이 흐르는 카페는 오미크론으로 혼미해진 세상의 정적만큼 조용했다. 눈이 풀려가고 붉은 와인이 사비나의 입술 언저리에서 더 이상 삼켜지지 못할 때 독서 멤버들의 토론이 심각했다.



늘어나는 책의 분량만큼 각자의 언어가 달라지고 늘어나는 모임의 횟수만큼 각자의 색깔이 분명해졌다. 그때 모임의 리더 사비나는 두 편의 영화를 권했다. [위대한 개츠비]와 [프렌치 디스패치]


영화는 세 번 이상 봐야 제대로 보이고 책은 두 번 이상 읽어야 놓쳤던 진실을 본다고 했다. 새로 합류한 A는 위대한 개츠비를 흉내 내는, 짝퉁 부르주아를 비난했고, 영화가 어려웠다는 몇몇 멤버들은 뉴욕의 풍류를 극찬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색감과 호화로운 불빛은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의 일상에 충격적 영상임에는 틀림없다. 사비나는 삼키지 못한 와인을 입에 머문 채 멤버들의 모든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수용하는 고개의 끄덕임과 달리 그녀의 눈빛은 알 수 없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 우리는 종종 본다. 이쪽과 저쪽, 그리고 여기저기서 말 대신 소리가 아우성치는 것을.



"아, 안녕하세요."


마감 시간 30분 전 언제나처럼 마키아토를 주문하는 사십 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섰다.


"오늘도 마키아토?"


"네."


카페 중앙에서 위대한 개츠비가 결국 총에 맞아 억울한 죽음으로 마감했어야 했냐고, 톰의 계략과 윌슨의 억울함이 무엇이 문제냐고, 여전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그 자리를 힐끔 쳐다보던 남자는 단골이라는 이유와 곧 카페 불을 끄고 본격적으로 모임의 취지가 빛을 발할 시간이라는 이유로 우리 모임에 합류했다. 남자의 색이 가미되는 지점이다. 그는 '개츠비'를 알까?






마키아토라는 뜻이, '마크하다, 점을 찍다'라고 했나. 크레마에 우유 거품이 얼룩진 모양을 마키아토라고 했다. 캐러멀 시럽을 얹은 달콤한 커피를 선호하는 그 남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마키아토만 시켜서 먹었다. 그는 '개츠비'를 알까.


"제가 유년 시절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한눈에 반해 사랑했던 예전 여자친구는 돈을 좇아갔습니다. 그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죠. 아마 지금쯤 후회할걸요. 제가 이렇게 성공하고 부를 누리는 줄 안다면 엄청 후회할 겁니다."



초면에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남자는 입술에 묻은 하얀 우유 거품이 사라지기도 전에 뜨거운 커피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개츠비를 논하고 위대한 개츠비를 리뷰하는 시간에 그 남자는 분노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초면에 말이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보란 듯이 성공을 과시하고 싶다는 그에게 결국 와인의 향기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분노의 눈빛을 거둔 사비나는 개츠비가 위대하냐고 물었고 그는 로맨시스트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뉴욕 사교계에서 가장 큰 파티를 열고 사랑하는 데이지를 찾아 돈으로 얼룩진 당대의 현실을 조롱하는 개츠비의 낭만적 민감성은 과히 위대하다고 했다. 매주 금요일 밤마다 송도의 불빛에 취해 결국 찾아가는 곳은 가장 높은 라운지라고 고백하는 그는, 송도가 뉴욕을 닮았다고 했다. 우리는 일제히 초면의 멤버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사비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송도를 기록하는 the_ songdonian 매거진을 보여주었다.


"제가 화려한 송도의 이면을 디스패치(dispatch) 해볼까요?"


마치 우리가 모르고 있는 팩트를 찾아 파견 나간 기자처럼 와인이 사라진 그녀의 입에서 그제야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분노의 문장들이 나열되었다. 화려한 건물을 짓기 위한 노동자의 눈물을 아냐고 물었고, 24시간 불을 밝히는 송도의 호화로운 건물 안에서 쌓여있는 플라스틱 재활용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다고 징계를 먹은 일용직 아줌마의 눈물을 이야기했다. 성공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즐기는 파티와 웃음이 인스타그램에 포스팅되는 그 시간에 피 땀 눈물 흘리는 뒤안길을 이해하는 것이 우아한 독서클럽의 취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표현했던 마키아토 남자는 자신을 질책하는 말이냐고 물었고 부와 성공을 쫓아가는 송도가 신물이 나기도 한다는 A 멤버의 지지는 사비나의 호흡을 가다듬어주었다.



"프렌치 디스패치 영화는 어땠나요?"


연속으로 어려운 영화를 보고 좁혀지지 않는 의견과 이견으로 지쳐있던 멤버들은 달달한 달고나 커피를 비롯 아인슈패너를 리필하고 잠시 쉬어가자고 했다.


"인스타그램 화면이 영상으로 표현되는 느낌이었어요." 영화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지식인의 도움으로 알면 된다. 나는 어려운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를 이미 디스패치(dispatch) 했다.


각자의 노트북으로 민트가 가미된 파란색 건물과, 주황빛이 섞여들어간 노란 건물과 누구나 아는 티모시 샬라메가 영상에 보이자 멤버들의 언어가 달달해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 아름다운데요."


"보통은 사람이 주인공인데, 이 영화는 잡지가 주연이군요"









고개를 꺾어야 보이는 호화로운 송도의 불빛은 아홉시에 문을 닫아야 하는 폐점 시간에도 여전히 화려했고 빛났다. 어둠을 밝히는 밤의 향연이 아름답다고 표현하면 노동자의 눈물과 일용직 아줌마의 한숨이 퇴색될까 멤버들은 조심했다.


실제 잡지였다면 글과 사진으로 주제를 드러냈을 것이고, 인스타그램처럼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영상미가 영화 전반에 깔려있어서 기자가 밝혀 낸 활자가 인스타그램 릴스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평균 나이 50, 독서 모임 멤버들은 위대한 개츠비보다 더 어려운 영화를 도대체 왜 보라고 했냐고 물었다.



"분명 영화였는데 그림, 사진, 애니메이션, 연극이 뒤섞여있어요. 다행히 옴니버스라서 이해되는 섹션이 하나는 있네요..." 이 의견에는 이견이 없는지, 모든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나는 본인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주제를 선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인스타그램 화면을 하나의 손가락으로 휙휙 넘기면서 우리는 하트를 누릅니다. 인친이 올리는 포스팅의 일면만 보고 이면을 읽을 마음조차 우리는 없습니다. 프렌치 디스패치 역시 자막이 빠르게 지나가고 화면도 빠르게 지나갑니다. 나를 드러내는 도구가 다양해질 수 록 우리는 어쩌면 진짜 모습보다는 가면을 보여주기도 하겠죠. 저는 프렌치 디스패치를 잡지 일러스트를 보듯 한 번 보고, 각 섹션의 주제를 탐닉하기 위해 두 번 봤습니다. 다시 보면 제대로 보이는 건 반드시 있습니다. 자, 옆 사람을 다시 한번 바라봐 주세요."



불편하게 했고 불편할 마키아토 남자는 잠긴 카페 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다. 낯선 여자들의 틈에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성공을 쫓을 수밖에 없다는 궤변을 접고 이런 모임의 취지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섣부른 판단과 잘못된 소견이 모임의 흐름을 깬 것은 아닌지 죄송하다고 했다. 옆 사람을 다시 보라는 사비나의 지시에 일제히 옆 사람을 바라보다 보니 내 옆 사람이 하필 마키아토 남자였고, 단골손님이었으며, 너무 단순히 그 남자의 직업으로 그를 파악했던 일련의 시간이 떠올랐다. 후회가 내 얼굴에 드리웠나 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친화력을 가미한 남자의 액션은 옆 사람을 다시 보라는 지시에 나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며 말했다.


"누님, 이 모임에 계속 합류할 수 있을까요?"



책을 사랑하고 책을 이해하고 작가가 말하는 이면을 읽어내는 문해력까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못 했다.


위대한 개츠비도, 프렌치 디스패치도 마키아토 아저씨도 내게는 아직 어렵다. 책을 읽을수록 영화를 볼수록 그리고 토론을 통해 명료화할수록 더 어려워졌다. 일면만 바라보고 쉽게 휙휙 넘어가도 되는 삶이었는데, 이제는 이면을 보고 사람을 이해하라니... 복잡하다.



"제가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보고,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겠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첫인상은 지워주시죠... 제가 천천히 저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마키아토 남자의 언어는 마치 행간이 벌어진 활자 위에 점을 하나하나 찍어가듯 천천히 단호하게 말했다. 빠른 호흡으로 자신의 부를 자랑했던 이미지는 사라졌다. 문장의 색이 바뀌었을 뿐인데 그가 달라 보였다. 휙휙 넘겨보던 매거진과 하트를 누르기에 바빴던 인스타그램의 화면도 이제는 조금은 달라 보이겠지.


아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한 번 더 보고, 프렌치 디스패치를 한 번 더 보고 생각하자.



"아, 다음 주는 불편한 편의점 서평 대회를 엽니다. 심사위원은 자자주옥 작가님이십니다."


"네? 대회요?"



닫힌 카페 문이 열리자 마키아토 남자는 말했다.


"아, 이 모임 불편한데요. 사람을 쳐다보고, 이면을 읽고 이제는 서평을 쓰는군요."


"왜... 합류 안 하시게요?"


"아, 아니요. 한 줄이라도 써오겠습니다. 이미 제 인생을 다 디스패치했으니 뭐... 글의 퀠리티까지 바라지는 않겠죠... 뭐"



화려한 송도의 불빛을 쏘아보는 그의 차는 가격을 가늠할 수 있는 고가의 외제차였다.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은 심야의 송도를 아주 환하게 밝혔다. 잠시 아주 잠시, 그가 위대한 개츠비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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