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일루에 진출하기도 어려워서

황성희, 「공의 마음과 스윙의 향방」

by 나무소리




공의 마음과 스윙의 향방




지독한 슬럼프였다

대단한 슬라이딩을 한 것도 아닌데 일어나지 못했다

배트를 휘두른 것이 상상일 줄은 시즌 내내 몰랐다

수십 년 공들인 타격 폼은 단 한 번도 쓸모가 없었고

나는 번번이 공의 정면을 놓쳤다

몸을 풀던 선수 몇 몇은 시작과 끝이 뒤엉킨 채 퇴장했고

기자들은 죽음에 관한 특정 질문을 의도적으로 빠트려

인터뷰가 삶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을 도왔다

나는 연달아 번트에 실패한 뒤 항명하는 손목을 잘라냈고

아버지는 연명장치도 없이 삼진 아웃을 당했다

야유로 가득 찬 더그아웃에서 빈볼이 날아들었다

췌장을 강타당한 아버지는 파울석으로 날아갔고

어머니는 시합 내내 엉터리 암호로 작전을 교란했다

내야를 책임지던 언니가 공 대신 눈알을 뽑아 던진다

병살타를 친 동생이 냅다 뛰어와 투수의 목을 조른다

관중석은 끝없는 연장전에 대한 불신과 공포로 가득했고

오빠는 리비아에서부터 참아왔던 오줌을 홈에다 갈긴다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오빠는 울면서도 오줌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그라운드의 밖을 향해 걸어 나간다

평생을 도루에만 골몰해왔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그라운드는 작심한 듯 내가 다가설 때마다 뒤로 물러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외야 깊숙이 날 데리고 들어간다

어떤 공에든 한 번은 제대로 속아보고 싶었다

헛스윙을 날리며 멋지게 쓰러지고 싶었다




황성희 , 『현대문학』2020년 2월호, 『가차 없는 나의 촉법 소녀』








요즘은 날이 따뜻하기도 춥기도 하네요. 바람이 불면 몸이 으스스 떨리고 노을이 질 때면 한기가 느껴져요. 저는 겨울을 싫어하는데요. 싫다기보다는 제 몸이 겨울을 나기에 부적합한 거겠죠. 손발이 한번 차가워지면 좀처럼 온기가 돌아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겨울엔 무엇보다 책상에서 이것저것 작업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봄으로 건너가는 지금 추위가 얼른 가셨으면 좋겠어요. 창을 열어두고 따뜻한 손발로 지내고 싶네요.


저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어요. 학부시절 동안 한 일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읽기, 생각하기, 쓰기입니다. 대상은 ‘사람’으로 축약되겠네요. 인문학으로 대표되는 문사철文史哲 중에 문학계열의 예술을 전공했습니다.


“인문학을 하면 밥이 나오나요?”


『여덟 단어』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인문학 관련 라디오를 진행하다가 청취자로부터 짓궂은 질문을 받았대요. 이 책의 저자이면서 광고계 인사인 박웅현 씨는 잠깐 생각하다가 답했다고 합니다.


“인문학을 해서 밥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안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문학을 하면 밥이 맛있어집니다”


인문학을 하면 밥이 맛있어진다는 답변. 어때요? 제가 느끼기엔 재치 있는 것 같아요. 인문학은 밥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꼭꼭 씹어 먹는 일에 가까울 거예요. 그리고 오늘 먹을 한 끼가 어떤 과정으로 지금 내 앞에 놓였는지 되돌아보고 감탄하는 일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인문예술을 전공한 제가 구직하고 있는 실황으로는 그 답변에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밥이 맛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어야 맛이라도 본다는 겁니다”


채용공고 사이트를 확인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지원하는 부서와 조금이라도 연관 있을 것 같은 포트폴리오를 첨부하고, 지원서를 열람했는지 살피려 메일을 확인하고, 연락을 기다리고, 면접을 보고, 미끄러지고…. 이 과정이 반복되니까 나름 담담한 편인데 한 번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정말 없는 건가. 그동안 내가 해온 일이 무가치한 걸까.

당신은 그런 적 없었나요? 내가 한 노력이 외면받거나 안개가 흩어지듯 사라진 것 같을 때요. 가령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짝사랑해온 사람이 애인을 사귀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거나, 밤새서 PPT를 만들었는데 사수한테 퇴짜를 맞거나, 직접 만들어준 선물을 줬는데 애인의 반응이 냉담하거나, 개발한 요리가 잘 팔리지 않거나 하는 그런 경우들이요.

당연하지만 참, 내 맘대로 되는 게 잘 없죠. 제 몫의 노력을 하더라도 인생의 불확실성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을乙이 되는 경험을 거듭 겪는 것 같아요. 그때 느끼는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허망虛妄이 아닐까요? 그때면 좌절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다음을 기약하고, 차선을 모색하고, 아파하고, 상처 받죠. 그 상처를 곧잘 견뎌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신은 어떤가요? 한동안 자기만의 굴에 담겨있을 시간이 필요한가요.


「공의 마음과 스윙의 향방」이라는 시에는 그 굴에 담겨 있는 사람이 있어요. 수십 년 공들인 타격 폼이 단 한 번도 쓸모가 없었다고, 번번이 공의 정면을 놓쳤다고 말하고 있죠. 얼마나 맥이 빠질까요.

심지어 그라운드에 있는 가족의 플레이는 아수라장이지요. 가족이란 어쩌면 기댈 수도 있는 존재일 텐데요. 연달아 번트까지 실패한 화자의 부모와 형제자매는 아니에요. 무참히 삼진 아웃당하거나 엉터리 암호로 방해하고 또 무섭고도 엽기적인 일을 펼치고 있죠.

집 천장 한 구석에서 물이 새면 당혹스러워도 대처는 할 수 있을 텐데요. 천장뿐만 아니라 수도가 터져서 바닥에도 물이 새고 태풍으로 창문이 깨져서 비까지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지죠. 그렇게 사건은 한 번에 몰아서 터지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정진하는 일상을 보냈는데 한꺼번에 엉망이 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수천 번, 수만 번 배트를 휘둘렀는데도 타석에서는 공을 한 번도 못 친 것처럼요. 그런 때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고장나버리는 것 같아요.


멋진 홈런을 치려고 욕심낸 것도 아닌데 세상은 왜 일루에 진출하기도 어려운 걸까요. 순수한 내 잘못도, 세상의 잘못도 아닌 걸 알지만요. 그런 때는 상실감에 빠지는 것 같아요. 왜일까요? 아마 연습장에 꾸준히 나갔던 나에게 보답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가 아닐까요. 아무도 없는 연습장에서 줄곧 배트를 휘둘렀기 때문에 그런 나를 기억하는 게 나 혼자여서 그런 게 아닐까요.

어쩌면 내가 닦아온 타격 스타일이 한국에서는 안 먹혀도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쭉쭉 나갈 수 있을 테고요. 경기를 치르는 날 하필 날씨가 나빠서 안 풀렸던 것일 수도 있죠.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눈을 뜰 때마다 연습장 한 구석에 들어섰던 사람의 뒷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요.




병살타라도 안치면 다행인 봄날

나무소리 올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