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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소리 Mar 05. 2023

청바지, 같이 늙어가는 동료

변하는 세상에서 아껴두는 것 (3)




   옷을 좋아해요. 친구랑 얘기하면 옷에 관한 주제가 나올 때가 있어요. 그때면 ‘옷장에 옷은 많은데 입을 게 없다’는 말을 종종 듣지요. 그해에 유행했던 옷을 사는 게 한몫하는  것 같아요. 그런 옷은 한 철 지나면 유행이 지난 디자인, 패턴, 소재가 되어버려서 더 입을 수는 있지만 입고 나가기 애매해지죠.




미시마 유키코 .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 2016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이란 영화를 친구가 저랑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해줬어요. 쏠쏠하게 봤어요. 제 정서랑 잘 맞았어요. 그리고 제가 옷에 대해 갖고자 하는 태도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어요. 미나미라는 주인공은 디자이너였던 할머니가 이웃에게 손수 맞추어준 옷을 계속 입을 수 있게끔 수선해주고 있어요. 사진에 나온 하늘색 원피스는 미나미의 할머니가 만들었어요. 세일러 교복을 입은 학생의 어머니가 주인이지요. 어머니가 아가씨였을 적 입은 옷을 이 학생이 입고자 해서 미나미를 찾아온 거예요. 옷이 한 계절에서도 촘촘히 나뉘어져서 생산되어 매번 바뀌는 지금 패션 흐름과는 완전 정반대의 일인 거죠.     




   옷도 빨리 변하는 시대죠. 여러분은 아껴서 오래도록 입고 싶은 옷이 있나요? 가령 그런 것들이요. 특별한 날 입으려고 했는데 형제나 자매가 입고 나가서 불같이 화낸 일화가 담긴 옷, 매일 입어서 이 옷 말고 다른 옷을 입으면 불편하게 느껴지는 옷, 이 옷이 아니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옷, 입으면 기분이 좋고 그날 하루가 설레는 옷.     




   저는 그런 옷이 있는데. 그중 바지에 관해서 얘기해볼까 해요. 누가 ‘평생 단 하나의 바지만 입어야 한다면 무얼 고르겠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청바지요!'하고 답할 거예요. 덧붙여서 그 청바지는 제 체형에 잘 맞아야 해요. 스키니핏이나 슬림핏이면 안 돼요. 통이 넉넉해서 여유로워야 해요. 소재는 면 100%여서 세탁을 수차례 해도 비교적 원형이 유지되어야 해요. 무릎이나 허벅지 부분이 찢어진 디자인은 아니어야 하고요. 워싱은 되어있지 않은 짙은 생지 데님이어야 해요.     




   이런 청바지를 고른 이유는 첫째로 편해요. 내 몸에 잘 맞는 청바지만큼 편한 바지는 없는 것 같아요. 관리하기도 수월하죠. 울 소재로 된 슬랙스나 베이지색 면바지는 오염되면 제거하기 까다롭지만, 청바지는 그냥 세탁기 한 번 돌리면 돼요.







둘째로  신발에도 어울려요. 운동화, 구두, 부츠, 스니커즈. 종류를 가리지 않아요.     




요시유키 하야시, 청바지 브랜드 레졸루트 창립자




   셋째로 세탁을 거치면서 나만의 바지를 만들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생지 데님은 어두운 남색이지만 세탁할수록 물이 빠지면서 경년변화가 일어나요. 색은 진청에서 중청으로, 중청에서 연청으로 점점 연해지죠. 사타구니나 오금처럼 주름이 많이 가는 부위와 허벅지나 엉덩이 부분처럼 마찰이 잦은 부위에 인상적인 워싱 자국도 생기죠. 내 몸을 기억하는 거예요. 같이 늙어가는 동료 같달까요.




   마지막 이유는 저만의 작은 의식 때문이에요. 옷은 생활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게 가장 중요한 활동은 읽고 쓰는 일이에요. 작업할 때 대부분 청바지를 입어요. 도서관이나 카페에 머물기도 하지만 주로 집에서 쓰죠. 일어나서 씻은 뒤와 이부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주로 청바지를 입고 있어요. 제 방에 놀러 왔다 이걸 알아본 친구가 ‘너 집에서 그러고 있으면 안 불편하냐’ 하고 질색했죠(웃음). 제겐 생활복이라 이질감이 없어요. 오히려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도구라고 할까요.







청바지는 광부를 필두로 하여 육체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졌어요. 튼튼하니까요. 지금이야 패션의 요소로 대부분 자리 잡았지만, 육체노동자의 옷이라는 인식을 저는 간직하고 있어요. 나의 글쓰기는 육체적 노동이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글 쓰는 일은 정신적 노동일 것 같지만 반만 그렇다고 봐요. 부지런히 직접 눈으로 본 만큼, 발로 오간 만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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