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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다만사과수집가 Sep 11. 2020

<The Story of More>, 호프 자런

수와 사적 경험을 얽어 쓴시 

읽는 동안 번역서가 나왔다. 제목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나라면 제목을 이렇게 했을 것 같다. <더 많이, 더 많이를 외치는 세계에서>.


지구생물학자로 주로 식물을 연구한 그는 대학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모은 수많은 자료를 곱씹어, 자신이 태어난 1969년부터 반세기동안 생산과 소비가 어떻게 변했고, 그 결과 지구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쉬운 말로 풀어썼다. 


간명한 서술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끔 눈물이 난다. 꼭 수와 사적 경험을 얽어 쓴 시 같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을 비판하는 대목에선 스스로를 ‘랩걸’로 지칭하는 이 차분하고 강인한 사람이 이를 악물고 말하는 게 느껴진다. 지구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변해버렸음을 증명하는 이 숫자들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와 싸울 문제가 아니다.


자런의 말을 빌리면, ‘OECD 국가의 사람’인 나는, 인구로는 6분의 1밖에 안 되면서 에너지는 총량의 3분의 1을, 전기의 절반을 쓰고 이산화탄소는 3분의1을 내뿜고, 전 세계 고기의 3분의 1을, 설탕을 3분의 1을 먹어치우는 사람이다.


생물종의 70%가 없어지면 지구의 여섯번째 대멸종을 생각해야 한다는데, 지난 50년간 양서류, 새, 나비 절반의 개체수가 줄었고, 물고기와 식물종 4분의1이 줄었다. 전혀 몰랐던 얘기론 ‘해조’가 있다. 반세기동안 해조 생산량이 열 배 늘었는데 그 중 절반은 식품첨가물 하이드로콜로이드를 만드는 데 쓰인다고 한다. 썪지 않는 가공식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경이다.


어떤 수치들은, 우리가 먹고 쓰는 것만 더 많이 한 게 아니라 ‘불평등’ 또한 팽창했음을 보여준다. 전기 생산량의 절반을 인구의 약 20%가 쓰는 동안, 전기를 아예 못 쓰는 사람은 10억 명을 넘었다.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질까? 당신이 부자나라 사람이라면, 무기력에 빠져서는 안 된다. 뭐라도 해야한다.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진정 더 많은 소비로 더 많은 이윤을, 더 많은 소득을, 더 많은 부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문명을 일궈야 하는지를.
바로 이 가정이 그 모든 거대한 위협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각자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더 많이’ 대신 ‘더 적게’ 쓸 수 있는지를.
비즈니스나 산업은 절대 우리 대신 이 질문을 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문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훌륭해서, 고등학교 교과서로 썼으면 좋겠다. 바람이 왜 부는지, 석탄 연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수력 화력 풍력 발전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이토록 문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니. 주변을 정갈한 말로 채우고 싶을 때 이 사람의 책을 읽고 또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 장, 감사의 말에서 자런은 그래피티로 이 문구를 남긴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은 섬기면서 눈에 보이는 자연은 학살한다. 우리가 학살하는 자연이 우리가 섬기는 바로 그 신인 줄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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