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은 항상 불완전하고 부정확하여 쓰고 오랜 시간 흐른 후에 아차 하고 깨닫는 때도 있다.
이날 밤의 기억은 우리 넷에게 제각각 비슷하고 또 다른 풍경으로 저장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위로가 된다. 우리 넷이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이.
실은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다. 나의 못난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뒷감당을 넷이 함께 해야했다.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안그래도 부족한 기억이 달아나버리기 전에 쓴다.
나는 당근마켓에서 책장을 봐두었다. 가로세로 120cm라고 되어 있었다. 책장이 꼭 필요한데 어떤 것을 사야할지 결정을 못해 두달간 머뭇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중고로 1만5000원을 주고 산다면 별 후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레조 트렁크에 이 책장이 정말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는, 어느 순간 별로 중요치 않은 문제가 되어 있었다. "둘이서 들고 가셔야 해요" 했으니 그대로 믿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내가 힘을 합쳐 든다면, 혹시 차에 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15분 거리의 집까지 들고갈 수 있는게 아닐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어제 퇴근 후로 약속을 잡았다고 밤 9시에 함께 오피스텔에 가서 책장을 가져오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줄자를 들고 주차장에 내려갔다가 착찹한 표정으로 돌아오셨다. 간당간당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한데.
지금 생각하면 이때 나는 모든 것을 명확히 했어야 했다. 치수를 정확히 재 보고, '차에 안 들어갈 것 같아요' 하고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야 한다. 정말 이 책장을 가지고 싶었다면 어디에 가서 바퀴달린 끌차라도 마련을 해뒀어야 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노력하지 않았다.
약속시간이 되어 오피스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 책장을 수령했다. 책장이 생각보다 커보여서 불안했다. 아니나다를까. 이 쪽으로 기울여도 저 쪽으로 기울여도 책장이 실리지 않았다. 둘이서 들어 옮겨야 했다. 아버지는 일단 차를 빼 두고 다시 오시겠다고 했다.
둘이서 책장을 1층 출입문까지 옮겼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아파트 관리실에서 끌차를 빌릴 수 있는지 문의해달라고 했는데 우리 동 경비원께서는 끌차가 없다고 했다. 인근 편의점? 뭘 믿고 나에게 비품을 빌려 주겠나!
아버지가 아이디어를 냈다. 집에 있는 자전거를 가져와 뒤에 싣고 가자고 했다. 아버지가 집에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를 끌고 오실 때까지 20여분을 책장을 지키고 서 있었다. 비가 안 온 게 천만 다행이었다.
"엄마와 **이(동생)도 부를까요?" 말을 꺼내니 이미 전화를 해두셨다고 했다. 분명 들고 오기 어려울 것 같다며 나를 따라나서는 엄마를 내가 얼마나 대차게 만류했던가! 엄마는 그냥 집에 있어, 아버지랑 둘이 처리할게, 충분하다, 라고...
밤 늦어 집 나서는 걸 동생이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싫은 소리 한 마디 안 하고 엄마랑 나란히 손잡고 나오는 동생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원래라면 티격태격 했겠지만 함께 살기 두달 차인 우리는 요즘 한참 거리두기를 하는 중이다.
"이렇게 무거운데... 자전거가 망가지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어림없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사람 두 명이면 100킬로가 넘잖아. 사람 둘을 거뜬히 태우는데 책장을 왜 못 실어." 준비해 온 깔개를 짐칸(?)에 묶인 끈으로 동여매며 아버지가 말했다.
끙차, 책장을 눕혀 안장부터 짐칸까지 놓아봐도 끝부분이 한참 튀어나왔다. 그 부분을 동생이 받들고 엄마와 나는 양쪽 날개를, 아버지는 핸들 쪽을 맡았다. 네 식구가 마름모꼴로 책장의 한 모서리씩을 책임지고 가는 셈이다. 나는 이 책장이 누구 한 사람 발이라도 찍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아파트단지로 들어가는 '개구멍'을 이 책장은 통과할 수 없을 같았다. 폭이 개구멍보다 클 것을 염려해서 우리는 개구멍을 지나쳐 큰길로 갔다. 책장이 기우뚱 기우뚱 할 때마다 한 번씩 쉬어가며 중심을 잡았다. 요령도 없는 노+소 네 식구가 이렇게 붙어가는 모습이 정말이지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사진을 찍을 여유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다)
아버지는 왼손으로 핸들을 쥐고 오른팔로 책장 모서리를 꽉 붙잡고 있었다. 이 장면을 다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팔이 아프다. 각자 정말 최선을 다했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이 아파트단지는 지상 공간이 차로 빼곡하다.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잠깐 멈춰서서 기다리고 멀리서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면 바짝 긴장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되면 답이 없다. 미리 미리 어느 구석으로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차 와요, 차!" 워닝 사인은 동생이 맡았다. 다행히 집까지 이르는 동안 택시 한 대 세단 한 대 외에는 만나지 않았다. 6동을 지나 9동, 12동... 얼마나 멀던지.
책장을 자전거에서 내려 집까지 올리고 나서 모두가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비싼 책장일세." 엄마는 이 책장을 새걸로 사면 얼마인지 물어왔다. 나는 멋쩍어서 "비싸지! 20만원쯤 하겠지!" 하고 말을 했는데 가족들이 돌아간 후 검색해보니 새 물건의 가격은 8만원이 채 안 되었다.
책장을 제자리에 놓고, 종이상자를 작게 잘라 붕 뜨는 모서리 바닥에 끼워넣어 균형을 맞췄다. 작업이 끝나자 11시. 두 식구가 장장 두 시간을, 또다른 두 식구가 한 시간씩을 썼다. 최저임금으로 쳐서 시급을 계산해보니... 새 책상 가격에 아주 약간 못 미친다.
나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이 가족 모두를 험한 고생에 빠뜨릴 수 있음을 알았다. 어느 한 사람 나를 나무라지도 타박하지도 않고 이 멍청한 일의 수습에 최선을 다해주었으니,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보답할 밖에... 16년간 떨어져 살던 딸이, 가까이서 보니 이렇게 허술하다고, 엄마와 아버지는 집에 가서 껄껄 웃으셨을까? 연휴 마지막날이 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오늘 아침 카톡으로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몸살 나지 않았느냐는 나의 말에 엄마 아버지는 모두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셨다. 나 역시 멀쩡하다고 답을 했는데 이 글을 쓰는 동안에 팔이 몹시 욱신거려온다, 물론, 견딜만 하게 기분좋은 수준의 몸살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