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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다만사과수집가 Feb 08. 2023

주거를 합치는 문제에 관하여

곤란한 결혼에 답하여 (1)  2021. 7. 

데이미언 루이스 부부가 각자의 집을 따로 썼다는 것, 그런 방식을 부르는 말이 이미 있다는 것 - 지금은 헤어진 팀 버튼과 헬레나 본햄카터도 그렇게 했다고 - 을 알았을 때 얼마나 마음이 시원했던지요!


가족이란 한 집에서 주거를 같이 하는 이들을 이르는 말이긴 합니다만, 현대사회에서 파트너를 정해둔다는 것이 꼭 집을 함께 경영하는 일이어야 할까요? 


배부른 얘기이긴 합니다. 실은 저 자신도 주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거를 시작했으니까요. 3년에 걸친 그 시간은 아름답고 행복해 아련하게 기억에 남았으나 힘든 점도 많았습니다. 결국 주거를 분리하는 것으로 끝이 났었으니 어쩌면 '실패'라는 딱지를 갖다 붙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이제와 주거를 다시 합칠 구상을 하자 저는 목이 죄어오는 것 같은 갑갑함을 느낍니다. 사람에겐 누구나(아니 어쩌면 동물, 식물 모두에게) 자신이 관장하고 때로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망원집이 제게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쥐와 바퀴벌레가 나왔더라도 적당히 텅 비어 몇 권의 책과 노트, 노트북만 있으면 훌륭한 작업실이 되어주었고 싱크대가 널찍해 설거지할 맛이 나던 공간 말입니다. 맘 편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의 유무로 판단하자면 난민 상태가 된 지금 저는 망원동 집을 몹시 그리워합니다. 그곳엔 누구든 내맘대로 - 물론 쥐와 바퀴가 때때로 나온다는 것을 알면 초대에 응하지 않을 손님도 있었을 것입니다 - 초대할 수가 있었지요.


공간을 함께 꾸린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일입니다. 형평성있게 일을 배분한다는 것은 애초에 산술적 계산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결국에는 체력과 심력으로 감당 가능한 수준 안에서 각자의 마음의 수지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을 맞춰나가는 일 같습니다. "내가 다 한다고 생각하고 결혼해야 해" 했던 H(S의 남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을테지요.


L은 스스로 살림을 꾸릴 줄을 아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공간을 제 손으로 책임지고 쾌적하게 관리할 줄 안다면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의 손 - 주로 여성들, 엄마, 아내, 여자 형제, 혹은 집을 방문해주는 가사노동자까지 - 을 빌리면서 빌리는 줄도 모르고 삽니다.


엄마는 오랜 시간을 집 안팎에서 가사노동자로 살았습니다. 그 큰 전문성은 인정받지도 못하고요. 그러나 저는 엄마를 만난 집들이 얼마나 행운이었을지 압니다. (엄마를 동등하게 대한 분을 한편 존경하고 또한편 엄마를 사용자의 눈으로 보는 제 자신이 가증스럽기도 했습니다.)


집안일이란 참으로 사람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손님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공동의 책임자가 되면 좀 달라지지요. 다소간의 금전적 손해가 발생해도 상관 없으니까 제발 내맘대로 하고싶다, 라고 소리치고 싶게 돼요.


예컨대 설거지. 아주 옛날, 갓 스무살이 된 동생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동생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직 남은 그릇이 한참 많은데 왜 그걸 바로바로 해야해?


물론 저도 혼자 살 때는 그릇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쌓아둔 적이 많았습니다. 그 모습이 왠지 현대미술의 한 장면같다고 생각해 어지러진 방 안을 영상으로 찍어둔 적도 있습니다. 뭔가 아름답다고, 아름다운 모종의 질서가 그 안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함께 지내면 L의 미간에 십일자가 생기는 일이 늘어납니다.


L은 뜨거운 냄비나 프라이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을 절대 보지 못합니다. 파스타면을 끓일 때 양보다 많은 물을 넣어 거품이 끓어넘치게 되는 것도요. 


반면 저는 물이 부족해 면이 들러붙는 것만큼은 너무 싫어서 계량도 없이 물은 최대한 넉넉히 붓습니다. 넉넉한 공간 안에서 나의 젓가락질에 헤엄치는 국수를 보면 아주 기분이 좋기 때문입니다.


L이 다가오며 잔소리를 할라치면, 나는 "L이 국수 담당이다" 하면서 국수삶기 공정을 "니가 해" 하고 넘겨버립니다. 


서로가 손님일 때 참으로 좋았습니다.


망원동의 집에서 제가 요리를 합니다. 그는 손님이니까, 특별한 요청이 없으면 느긋하게 좀 쉬어도 됩니다. 선물도 가져왔고요. (그시절 그는 제철 과일을 주문해다가 몇 개씩 가져오곤 해서 '입장료'로 불렀습니다.)


내가 그의 집에 머무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다시 집을 합칠 생각을 하니 모든 일이 무척 두렵습니다. 

"미랑~!" 

이렇게 시작될 당부의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한 L의 마음의 노고 역시도 이해가 갑니다.


돈이 있다면 언젠가 따로 자그만 작업실을 마련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 합니다. 취향이란 섞어서 짬뽕으로 만든다고 될 일은 아니니까요. 고유하게 남아 자기답게 두는 일이, 결혼제도 안에서도 가능할까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묻게될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각자 그것을 지키는 길로, 그렇게 나아가리라 다짐을 하고요. 


우리가 함께여서 혼자보다 좋았다고, 세계를 넓히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길 수가 있었다고,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가 있었다고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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