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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젠 Oct 27. 2022

추억이지. 하지만 이봐, 인종차별이라고.

Arabian Nights - 알라딘(1992)


Arabian nights, like Arabian days
아라비아의 밤, 아라비아의 낮처럼
More often than not are hotter than hot
항상 열기보다 강렬한 매력이 있는 곳
In a lot of good ways
좋은 의미로 말이야



아그라바를
불태우자


2015년 말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퍼블릭 폴리시 폴링(PPP)은 공화당 예비 선거 유권자, 그러니까 트럼프 지지자들을 상대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총기 규제, 이민자 정책, 최저임금 등에 대한 의견을 물은 이 설문에는 이상한 질문이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당신은 아그라바Agrabah 폭격을 지지 혹은 반대합니까?"


PPP의 발표에 따르면 30%의 공화당원들이 아그라바 폭격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57%는 잘 모르겠다고 했고, 13%만이 반대했다. 참고로 이 설문은 민주당원들에게도 아그라바를 불태워야 하는지 물었다. 19%가 찬성했고 36%가 반대했다. 아직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아그라바는 디즈니의 [알라딘(Aladdin, 1992)]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다.



이 해프닝은 미국인들에게 중동과 무슬림이 어떤 존재인지 투명하게 드러낸다. 일단 이들은 중동에 대해 엄청나게 무지하다(사실 미국인들이 미국 말고 어디인들 잘 알겠냐만). [알라딘]을 보지 않았더라도 아그라바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이것이 '아라비아'와 '바그다드'를 적당히 섞어서 만든 가상의 지명이라는 건 지구본이나 구글 어스를 갖고 놀아본 적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백 보 양보해 모를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도시를 왜 폭격해야 하는가? '아그라바'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에?


지금에야 길거리에서 누군가 '알라 후 아크바르(하나님은 위대하시다)'를 외치면 일대가 패닉에 빠질 정도로 무슬림과 테러리즘을 연관짓는 사고방식이 흔해졌지만, [알라딘]이 개봉한 1992년의 세계는 9.11을 겪기 전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듬해인 1993년에는 알 카에다가 세계 무역 센터에 첫번째 테러를 가했는데, [알라딘] 개봉 전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이 영화의 흥행 스코어는 어떤 식으로든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검은 금요일


[인어공주]를 성공시킨 콤비 존 머스커와 론 클레멘츠가 감독과 각본을 맡은 [알라딘]은 전세계에서 5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2년 후 [라이온 킹]이 개봉하기 전까지 역대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타이틀을 가져갔다. 27년 후 제작된 가이 리치의 실사판 [알라딘(2019)]도 로빈 윌리엄스의 지니를 윌 스미스가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보란 듯이 성공했다. 테마파크처럼 포장된 중동은 예나 지금이나 잘 팔리는 상품이다.


물론 좋은 소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 성공의 뒷면에는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모든 대형 프로젝트가 그렇겠지만 유독 [알라딘]은 제작 과정에서 기획이 여러 번 수정되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일단 당시 디즈니 스튜디오의 사장이었던 제프리 카첸버그는 각본을 두 번 퇴짜 놓는 것부터 시작했다. 극작가 하워드 애쉬먼이 최초로 써 냈던 40페이지 분량의 트리트먼트는 원전 [천일야화]에 매우 충실한 내용이었는데, 이 버전은 거의 통째로 반려됐다.


생전의 하워드 애쉬먼(좌)와 제프리 카첸버그


1991년 봄, 애쉬먼이 [미녀와 야수]의 개봉을 보지 못하고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뒤 머스커와 클레멘츠는 수정된 각본을 내놨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알라딘은 지금처럼 톰 크루즈를 닮지도 않았고, 더 앳된 소년이었으며, 병든 86세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카첸버그는 알라딘의 노모를 비롯해 각본의 많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다시 전체 스토리를 손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이듬해 11월에 개봉한다는 원래 스케줄은 수정하지 않았다. 카첸버그가 이 결정을 내린 날은 스태프들에게 '검은 금요일'로 불렸다.


결국 두 번째 대수술이 이루어졌고, 이때쯤엔 음악 작업도 상당 부분 진척된 상태였기 때문에 각본상 필요 없는 곡들은 단체로 삭제를 당했다. 원래 알라딘의 아이 원트 송은 잠든 어머니를 보며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프라우드 오브 유어 보이Proud of Your Boy]라는 노래였지만, 카첸버그의 지시 하에 알라딘이 고아가 되며 그의 아이 원트 송은 지금의 [원 점프 어헤드One Jump Ahead]가 되었다. 원숭이 친구 아부에게 부르는 [유 카운트 온 미You Count On Me]라는 노래도 삭제됐다.


[프라우드 오브 유어 보이]의 스토리보드


극장에 선보이지 못한 노래는 이뿐만이 아니다. 알라딘에게는 동네 친구 트리오가 있었는데 이들을 소개하기 위한 [뱁칵, 오마르, 알라딘, 카심Babkak, Omar, Aladdin, Kasim]이라는 넘버가 있었다. 자스민은 최종 버전보다 더 오만한 고집불통이었으며, 그런 자스민의 캐릭터와 관련된 [콜 미 어 프린세스Call Me a Princess]라는 싱글곡이 있었다. 한편 램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지니의 심정을 표현하는 [투 비 프리To Be Free]가 있었는데, 이 노래는 이후 뮤지컬 버전에서 자스민의 노래가 되었다. 자파가 알라딘의 정체를 폭로하는 장면에 삽입될 곡은 본래 [휴밀리에잇 더 보이Humiliate the Boy]라는 곡이었으나 너무 잔인하다는 이유로 반려되었고, 지금처럼 [프린스 알리Prince Ali]의 리프라이즈가 대신 채택되었다.


자스민의 성격은 지금과 다소 달랐다.


원래 각본대로 영화가 개봉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알라딘]이 엄청나게 성공했기 때문에 여기서만큼은 카첸버그의 완벽주의와 결단력, 그리고 그의 지휘에 따라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디즈니의 자본과 조직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카첸버그 같은 상사 밑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다).




인종차별이지.
하지만 이봐, 디즈니라고.


그러나 이렇게 작품을 절차탁마하는 디즈니의 역량은 작품 속의 세계와 인물들을 사려깊게 표현하는 데는 발휘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최초로 중동 지역을 다룬 이 작품에서 디즈니는 아랍인들에 대한 낡은 스테레오타입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예컨대 작품의 시작과 함께 흘러나오는 [아라비안 나이츠Arabian Nights]에는 아그라바가 어떤 곳인지 설명하는 이런 구절이 있다.


Where they cut off your ear if they don’t like your face
얼굴이 마음에 안 들면 귀를 잘라버리는 곳이라네
It’s barbaric, but hey, it’s home.
야만적이지. 하지만 이봐, (누군가에겐) 고향이라고.


분명히 [알라딘]을 봤는데 이런 가사를 들은 기억이 없다면 그건 디즈니가 비디오판을 내면서 이 가사를 수정했기 때문이다. "얼굴이 마음에 안 들면 귀를 잘라버리는 곳(Where they cut off your ear if they don’t like your face)"은 "평평하고 광활하고 열기로 이글거리는 곳(Where it’s flat and immense and the heat is intense)"으로 바뀌었지만, "야만적이지"는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수정되지 않았다. [뉴욕 타임즈]는 디즈니의 이런 문제적인 태도를 두고 [인종차별이지. 하지만 이봐, 디즈니라고It's racist, but hey, it's Disney]라는 사설로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2019년 실사판에서 이 가사는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Where you wander among every culture and tongue
온갖 문화와 언어가 넘쳐나는 곳
It’s chaotic, but hey, it’s home
혼란스럽지. 하지만 이봐, 고향이라고.


빵도둑 검거 작전


비판 받은 것은 귀를 자른다는 가사뿐만이 아니었다. 각본가들은 아무래도 중동 문화의 핵심은 신체 절단이라는 생각에 꽂혀 있었던 모양이다. 빵을 훔친 알라딘에게 아그라바의 경비병은 중동 억양으로 "네놈 손을 트로피로 가져가겠다"라고 엄포를 놓는가 하면,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에는 손이 아니라 머리를 자를 기세로 커다란 곡도를 휘두른다(알라딘도 "고작 빵 한 조각 때문에?"라고 묻는다). 한편 자스민은 가출 중에 만난 알라딘이 자파에게 잡혀 갔다는 걸 듣고 그의 행방을 묻는데, 자파는 "안타깝게도 녀석에게 선고된 형은 이미 집행됐습니다"라고 답하고는 굳이 덧붙인다. "참수됐죠".


여기서 대체 어떤 부분이 문제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중동이 야만스럽다는 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이란에서 한 여성이 머리카락을 보였다는 이유로 의문사한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신체 절단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절도범의 손목을 절단한 사례도 존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사형을 참수형으로 집행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런 부분만큼은 고증이 아주 철저하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무슬림은 모두 잔인하고 야만적이라는 재현은 아이가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준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모든 기독교인이 오만하고 독선적이지 않은 것처럼 모든 무슬림도 그렇지 않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영화는 무슬림 가정의 아이도 볼 수 있다.



2020년 디즈니 플러스가 런칭한 이후, 오래 전에 개봉했던 몇몇 클래식 작품들에는 작품 내에 차별적 묘사가 존재함을 알리는 경고가 붙었다. [아기 코끼리 덤보(1941)], [피터 팬(1953)], [레이디 앤 트럼프(1955)], [아리스토캣(1970)] 등이 이 경고를 표시하며, [알라딘]도 이 중 하나다. 이 문구를 보며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어릴 적 향수로 남아 있는 작품을 좋은 마음으로 보러 와서 굳이 이런 문구를 마주해야 하나? 나는 지니의 익살맞은 춤사위와 알라딘과 자스민의 로맨틱한 야간 비행을 보러 온 거지, 경비병이나 상인 같은 엑스트라들의 외모와 억양이 어떤지는 관심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 우리에겐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그라바를 불태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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