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생활을 마치시고 막 출소하신 초동이 녀석은 자신의 거처가 필요하다며 가을의 거처인 숨숨집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숨숨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누라가 싸구려 방석 6개를 ‘다*소’에서 구매하셔서 손바느질로 친히 가을이의 거처를 만들어준 것이었습니다. 얌전하고 조신한 가을이는 숨숨집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또 그 숨숨집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을이의 구박을 받아 숨숨집으로 피신을 했던 초동이 녀석은 숨숨집이 취향저격이라며 기회만 생기면 숨숨집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숨숨집을 뭉개고 소파로도 사용할 수 있다며 뭉개진 숨숨집 위에 앉아 정복자 포즈를 취하고는 했습니다. 그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숨숨집을 용도변경하여 샌드백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신나게 물고 뜯고 맛보는 통에 숨숨집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을 달리하셔서 재활용 의류상자에 매장되셨습니다.
정말 고양이마다 성격이 제각각이라고 하더니 가을이는 2년 동안 실오라기 하나 상하게 한 적이 없었는데 초동이 녀석은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숨숨집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그후로도 초동이의 눈에 찍힌 대상은 오래지 않아 기능상실, 작동불능 상태를 만들어버리곤 했습니다. 숨숨집 외에도 다음 아고라의 고양이 스토커님이 보내주셔서 가을이가 잘 사용하고 있었던 스크래처가 있었는데 초동이가 수감생활을 마친 뒤 어느 날부터인가 몹시 심한 피부병으로 살갗이 떨어져나가는 환자처럼 스크레쳐의 귀퉁이는 조금씩 사라지고 종국에는 그 역시 사망진단을 받아 가스통 화덕에서 화장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초동이의 파괴본능은 스크래처를 시작으로 장난감 쥐돌이의 가죽을 분리하거나 새로 사준 스크래처2 와 3의 모서리를 뜯뜯해놓거나 물건을 보관한 박스나 포장용 박스를 눈에 뵈는 대로 전부 뜯어놓고 샷시문의 방충망이나 커튼에도 수많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가을이가 이갈이를 할 때 제 손과 몸의 이곳저곳을 도화지 삼아 물고 할퀴고 해서 조폭 수준으로 만들어주신 전례가 있었기에 초동이 역시 이갈이를 하나보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녀석이 고양이의 가죽을 쓴 강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녀석은 사고뭉치 강아지처럼 수많은 고양이 용품과 물건들을 용도 폐기시키며 무럭무럭 성장해가고 있었습니다.
초동이의 사망놀이에 제 마음도 사망지경에 이를 무렵 녀석의 놀라운 재능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2015년 4월 중순의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컴퓨터방으로 사용하는 방문 옆에는 물건을 놓기 위해 선반을 하나 달아놨는데 그 선반의 위치는 문의 손잡이 바로 옆이었습니다. 가을이는 유독 방문을 닫는 것을 싫어했기에 우리가 문을 닫아 놓을라치면 그 선반에 올라 문 손잡이를 아래로 내려 문을 열고 나가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초동이가 물끄러미 얼빠진 표정으로 살펴보고는 했습니다. 가을이가 하도 문을 열어대는 탓에 할 수 없이 선반을 떼어버렸는데 어느 날 아침에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초동이는 점프를 해서 문 손잡이를 잡아당겨 문을 열고 밖으로 탈출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pc로 일을 하다 이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녀석의 놀라운 재능에 한껏 고무된 저는 동영상을 찍으면서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가을이의 문 여는 것을 한참 쳐다보던 초동이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혹시 이 녀석은 천재 고양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문이 안 열리도록 문 뒤에 무거운 아령을 놓아두었는데 한참을 연구하더니 아령마저 발로 굴려 치워버리고 문을 열고 탈출해버리는 빠삐용 초동 선생, 빠삐동으로 거듭나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무엇으로도 빠삐동의 탈출을 막을 수 없었던 저는 눈물을 머금고 거금을 들여 일자형 문 손잡이를 원형 손잡이로 교체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빠삐동의 전설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냥이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