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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자 Jan 31. 2021

신에게 난 무슨 필요하겠어.

요한이 본 세상(1)  요한1서 1:1~4

 삶은 불확실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마음에 보험이 될만한 것을 찾는다. 종교의 가치  복음, 교회, 기독교 라는 가치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엔 너무 모호하다. 그래서 조금 있는 믿음도 흔들린다. 


이런 불안한 마음에 답은 없는 것일까?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한일서 1:1


 요한의 이야기의 시작은 흥미롭다. 그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을 들었고 봤고 만졌다고 한다.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오감으로 경험할수 있을까? 요한 1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들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수 있다.


"보았고, 증언하고, 전한다" 1:2
"나타내신 바 된지라" 1:2


 앞에 표현과 비슷하다. 요한은 어찌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수 있을까? 더 이상한 것은 '나타내신 바' 라는 표현이다. 보통은 진리라는 것, 교리라는 것은 찾고 연구해야 얻는 것이 생각하는데 '나타내신 바'라는 것은 그냥 신이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뉘앙스 같다. 정말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너희에게 우리와 사귐이 있게... 1:3


사귐이 있게 한다... '사귀다'는 관계의 표현이다. 각별한 관계를 나타내며, 주로 연인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사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로 친구, 반려자, 상호교류 이런 의미를 갖는다. 요한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장 큰 이유를 이 '사귐'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우리가 반려자이자, 친구, 상호교류하는 관계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상호교류 할 만 한 것이 있는가? 흔히 아는 give & take 가 되려면 나에게도 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어야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생각의 끝에 난 신에게, 하나님에게 도움이 되는가? 라는 좀 찌질한 물음을 한다. 항상 결론은 신에게 난 무슨 필요가 있겠어 라는 바닥을 치는 말로 끝이 난다.

신에게 난 무슨 필요하겠어.


 이렇게 말하고 나면, 한참 더 불안해진다. 신이 나를 돌볼 필요도, 도와줄 이유도 없는 존재 같으니 말이다. 요한은 뚝심있게 계속 말을 건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4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은 여러분도 이 사귐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ver. 더메시지)


 성경을 읽으면,  턱턱 거슬린다. 나는 턱턱 걸리는 게 정상이라고 본다. 단어를 하나씩 쪼게어 읽어보자.


 '충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플레로오"로 가득차다. 만족하다. 공급하다. 성취하다. 이런 뜻이다. '우리는' 이라고 표현하는 대상은, 어떤 경험(보고,만지고,사귀고.. 등등)을 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듯 하다. 기쁨은 헬라어로 '카라' 인데, 환영, 행복, 축하하다라는 뜻이다.


 그럼 정리하면 우리의 기쁨, 행복감에 만족하고, 완성하고, 공급하고 싶다. 내 행복감을 공급하고 싶다는 의미로 이해할수 있다. 공급이라는 것은 결국 "전함(전하다)"라는 단어와 연결점이 있다.


충만하다 = 전하다, 전달하다


 요한은 편지로 확신에 가득차서 자신은 지금 기쁘고 행복하며, 그것을 가득차게, 넘치게 공급하고 싶다는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요한은 세상에 대하여 불안하고 부정적인 우리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보인다. 그래서 그의 확신에 찬 말들은 더 궁금증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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