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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자 Jan 31. 2021

불안감은 언제부터 였을까?

요한이 본 세상(2) 요한일서 1:5-6

요즘 시기에 보기드문 확신에 찬 말들로 가득한 요한은 이제 말한다.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한일서 1:5


'신은 이런 분 이야' 라는 설명 글로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놀라운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하나님은 빛이다"  빛은 헬라어로 [프호스] 라고 하고, '드러나게 하다'는 뜻을 가진다. 빛을 단순지칭하는게 아니라 빛의 효과, 효능(?)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은 빛, 즉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한다. 라고 이해할수 있지만, 그래도 이해가 잘 안된다. 그 다음 구절은 '하나님은 빛이다'라는 것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빛의 반대는 어두움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두움은 헬라어로 [스코티아] 불분명, 불투명 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어가는가.


 우리의 삶은 불확실, 불분명 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우리를 두렵게, 불안하게 한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 말하면서도 불안한 삶이 반복되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요한의 확신의 찬 말이 부럽고 이상하게 느끼는 이유 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안한 삶을 반복한다. 왜 이리 불안한 삶을 반복하는가?


한번 돌이켜 보자 언제부터 우리의 삶은 불안하게 되었을까? 초등학교 때, 유치원 때? 어린 시절을 불안감은 부모로부터의 분리가 가장 큰 불안감이이었다. 아이들을 부모가 없을 때 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의식이 생기고 나서 기억하기 시작한 순간의 불안감과 두려움은 언제부터였을까?


불안감과 두려움은 언제부터였을까?

 학교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교육 또는 정보를 접하게 된다. 서로 비교하게도 하고, 진학에 대한 묘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정보들 속에 산다. 결국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의  input 값이 문제이다. 정보는 바다 위에 목마른 자에게 펼쳐진 바닷물 같다. 먹을수록 더 목이 마르다. 정보와 교육을 통해 더 알게 된거 같은데 더 불안하다. 


이 모든 정보의 출처가 세상이고 그 세상의 속성이 죄, 또는 어두움이다. [스코티아] 불분명이다. 


깜깜한 방에 불빛이 있어야 하듯. 어두운 세상에 빛은 필수이다. 하나님이 빛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의 불분명한 것을 비추는 것, 드러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 뿐이라는 것이다. 빛은 불분명하고, 더러운 것들을 드러나게 한다. 더러운 것이 보이면 청소할 수 있다. 


 결국 요한의 확신에 찬 말은 하나님이 내 삶의 더러운 것을 드러나게 해야, 근본적인 불안감과 두려움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경험한다고 주장하면서 어둠 속에서 넘어지기를 반복한다면, 우리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며 자신의 말대로 살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1:6 (ver.더메시지)

 

요한은 하나님 앞에 직면된 내 더러움을 어떻게 해결하시는 지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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