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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변 Jul 21. 2016

영화 룸(Room)

실화를 다루는 시선의 좋은 예

상경 이래 서울이라는 사람 많은 곳에 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저 많은 사람 하나하나가, 태어나서,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자라고, 그러고 나서 또 어떠한 많은 일을 겪은 끝에 여기에서 나를 스치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아도 그랬다. 하다 못해 어벤저스를 보면서도 지금 캡틴 아메리카가 허리 한가운데를 후드려 패 아작 낸 사람은 이후 어떤 간호를 받고, 저 사람의 가족은 어떻게 슬퍼하고, 또 이후에는 살아가게 될까.


역사학에서의 구술사처럼, 이 세상이 큰 흐름 아래 얼마나 많은 필부들의 삶과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정신이 아득해지곤 한다.




생각해 보면 참 그렇다. 특히나 영화처럼 제한 시간 내에 기승전결의 구조를 취해야 하는 경우에는 주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그 시선이 끝날 때 영화도 끝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데 범죄라든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있어 그 시선의 주인이 가해자에 가깝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꽤 이상한 일이다. 이를테면 범죄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된다거나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된다거나 하는 것은 카메라는 비록 두 사람 모두를 담고 있을지 모르나 가해자 쪽에 가까운 시선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영화 '룸'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포스터에도 쓰여 있다, '7년 간의 감금, 그리고 진짜 세상으로의 탈출'이라고. 그래서 이 영화는 고통스러운 감금과 감금에서의 탈출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그러한 오해를 가지고 영화를 보다 보면 러닝 타임의 절반쯤 왔을 때 이미 탈출해 버린 주인공들의 모습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영화 전체는 '룸'에서 나고 자란 5살 아이 잭의 시선을 취하는데, 이는 바탕이 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 도서)를 고려할 때 자칫 빠지기 쉬운 자극적인 분노의 감정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장치가 된다. 이 작품의 강점은 이러한 면에서 드러내기보다는 암시와 지연 효과 등에 있다고 할 것이다.


바탕이 된 실제 요제프 프리츨 사건을 보면 친딸을 감금하고 성폭행하여 7명의 아이까지 출산하게 하는 등 그 사실관계가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영화 룸에서는 이 사건에서 한 명의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강한 어머니를 끄집어내어 실화를 훌륭하게 다루어 낸 드라마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고 또 분개한 혹자는 요제프 프리츨 사건을 있는 그대로, 혹은 이를 더욱 드라마 타이즈 하여 실제 사건 속 친딸의 시선에서 그 고통과 악행의 전말을 드러내지 않은 것을 비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잊힌 범죄를 드러내고 그 고통과 분개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은 아니다.


대신 이는 대체로 아들 잭의 시선에서 관찰되어 관객에게 매개되는데 이를테면 성폭행 장면 같은 것은 가해자의 시선에서 자극적으로 묘사되는 대신 옷장에 갇힌 잭의 시야에서도 조금은 빗겨 나 삐걱대는 침대 소리와 낮은 신음소리로 암시된다. 이는 관객에게 명확히 상황을 해설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고통받는 어머니의 세밀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대신 아이는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아들 앞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억눌리고 숨겨진 고통스러운 감정을 관객이 스스로 상상하고 헤아리게 하여 그 안타까움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탈출시켜 감금 기간 동안의 한스러운 감정을 표출시키는 대신, 아이가 탈출에 성공하여 처음으로 방을 나와 푸른 하늘, 가짜라고 믿었던 나무, 바람,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휘둥그레 한 표정을 부각한 장면의 연출 또한,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이 매일 감금 없이 만나는 세상을 새롭고 신선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좋은 예술적 장치로 느껴졌다.




또한, 가해자의 시선을 취했을 때, 영화는 그가 어디서 어떻게 체포되는지를 보여 주며 그 범죄 행위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아들과 어머니가 눈물의 상봉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피해자의 시선을 취하고 있기에 그 대신 그들이 사건 이후 어떻게 세상을 마주하고 삶을 찾아가는 지를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방으로 다시 한번 가고 싶다며 다시 마주한 방의 물건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는 잭의 모습이나, 엄마 이외에 처음으로 인간관계를 맺은 새롭게 얻은 가족인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하는 모습, 적응을 어려워하는 잭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새 할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수년만에 딸과 돌아온 손자를 부끄러워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등의 군상은 범죄 사실과 그 종결이 어떠한 사건을 다루는 데에 있어 전부가 아님을 가슴 아프게도 잘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범죄자의 악행과 처벌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떤 잔혹하고 유명한 사건을 접할 때 그 피해자들의 리커버리와 삶으로의 귀환에 주목한 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룸은 그러한 면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너무나도 아름답게 만들어 낸 드라마였다. 이 영화로 브리 라슨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들 잭 역할을 맡은 아역 배우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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