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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변 Sep 18. 2016

영화 벤허(BEN-HUR, 2016)

로마인이 되지 않으려면

리메이크된 영화 벤허를 보고 왔다. 원작 영화와 다소 달라진 점이 있지만 워낙 원작이 훌륭했던지라 어떻게든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원작과 달라진 점 가운데 하나는 나사렛 예수와 기독교적 메시지의 비중이 커졌다는 점일 텐데, 이는 그 당시와 현재 모두를 반영한 바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속 시간대의 예루살렘에서 살면서 예수의 말씀에 영향을 받는 것은 비단 종교적 색채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그 역사적 측면에서도 어쩌면 당연하거나 적어도 가능성이 높은 일이 아닐까. 그리고 거시적으로는 테러와 국가 간 안보 위협이, 미시적으로는 개인 간에 팍팍한 분쟁이 벌어지는 현세에도 충분히 힘 있게 전달될 이유가 있는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브루스 올마이티, 나우 유 씨 미 등 여러 영화에서 각종 전지적 인물을 맡아 온 모건 프리먼의 등장도 이러한 종교적 메시지를 강화하는 맥락에서 잘 어울렸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점에서 벤허의 결말은 조금 김 빠진 글레디에이터 같기도 하다. 비극이 결코 치유되지 않고, 증오와 복수가 파국으로 치달아 결국 극단에 이르는 방식으로 여운을 남기는 글레디에이터의 결말과 달리, 벤허의 결말에서는 사랑과 용서라는 이름 하에 극에 달했던 비극은 너무나 손쉽게 치유되고 증오와 복수는 조금 급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녹아내린다. 추석 연휴에 가족과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기에는 더없이 좋은 결말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결말이 산뜻했기 때문인지, 혹은 워낙에 유명한 영화라서 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 전면에 나선 이야기 보다도 마음에 무겁게 남은 것은 따로 있었다. 메살라가 전차에서 지고 중상을 입은 뒤 일더림이 빌라도에게 내깃돈을 찾으러 가는 장면이었다.


'부하를 잃어서 유감입니다'

라는 일더림에게 빌라도는 메살라의 망가진 몸뚱이와 유다를 향해 환호하는 군중을 보며 말한다.


보게, 사람들은 이미 피를 원하고 있지.
저들은 이미 로마인이 되었네.

뜻밖에 이 장면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언뜻 로마가 영화에서 말한 것처럼 공포와 잔인성, 폭력으로 정복을 수행해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히 반항하는 사람들을 그로써 억압한 것만은 아니었단 것이다. 대신 경기장에 모아 놓은 뒤 전차 경주라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통치 방식을 군중들에게 너무나 쉽게 효과적으로 주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로마의 정복 전략이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면에서 영화가 리메이크를 통해 강화한 예수의 사랑과 용서라는 메시지가 비로소 더욱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게는 전쟁, 테러, 작게는 배신, 분쟁에서 이를 나도 모르는 사이 공포와 폭력을 주입하여 '로마인'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 IS라든지, 현세에도 여전히 분쟁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의 전략일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데 있어 그 옛날 예수 살아생전의 예루살렘이나 지금이나 그 메시지가 지니는 힘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영화의 주된 플롯이 되는 메살라와 유다의 이야기보다도 저 대사에서, 리메이크 벤허의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는 더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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