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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짱 May 23. 2024

어맨다 몬텔의 <컬티시, 광신의 언어학> 속 문장들


우리는 태생적으로 ‘컬트적’인 것이다. 

"소외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과 순응하려는 강박 때문에, 집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 옳은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 책은 컬트라는 단어에서 오는 편향적인 시선에 의구심을 던지며 시작한다.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부터 파고든다.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끼고, 그것을 무기 삼아 우리는 더 담대해지곤 하니까. 때때로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특히 밀레니얼 세대를 꼬집어 현대 사회는 커다란 컬트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도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나 역시 가끔  누군가 방법이나 길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달리곤 한다. 선택지는 왜 이리도 많은지 신물이 날 때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선택한 것, 이미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되는 것을 찾곤 한다. 하지만 이내 포기한다. 한 사람마다 모두 고유한 시간을 가진다는 점에서 누군가의 시간이 나의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언어가 곧 암호이자 연막, 진실의 물약이었다. 실로 강력한 힘이었다. 

작가는 소위 '나쁜' 컬트의 역사에 대해 분석한다. 그중에서도 컬트 집단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의 기술'에 집중해, 평범한 사람도 순식간에 빠져드는 강력한 힘의 원천을 파고든다. 지배자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 것은 재력도 미모도 아니다. 컬트에 속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체계에 대해 고발한다. 우리는 여러 공동체에 속해있다. 그 공동체에서는 흔히 쓰는 용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용어들은 구성원들 간의 강력한 소속감을 만들어낸다. 지배자들은 이 언어의 힘을 적극 활용했다. 


"언어라는 궁극적인 권력 도구를 바탕으로 전향(이 집단이 유일하며,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것), 조건형성, 강제(목적 달성을 위해서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태도)라는 체계적인 기술을 활용한 덕에 존스와 애플화이트는 털끝 하나 직접 건드리지 않고도 추종자들에게 어마어마한 폭력을 가할 수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자가 되어 니체를 지적으로 인용하며 이십 대 샌프란시스코 진보주의자들을 홀렸고, 나이 많은 오순절파 교인들을 대할 때는 목사의 친근한 음색과 성경 구절을 활용했다. "


"일반적인 전문 분야에서 특수 용어는 더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데, 즉 명확한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컬트 환경에서 특수 용어는 정확히 반대 역할을 한다. 화자가 혼란에 빠지고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 그들은 순응할 수밖에 없다."



한번 발화되면, 이런 표현은 대화의 여지를 없애고 극단적인 신념의 대립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볼 기회를 영영 지워버린다. 

컬트 언어 기술 중 '사고 차단 클리셰'에 대한 설명이다. 대화를 중단시켜 심리를 지배해버리는 것인데, 논쟁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차단해버림으로써 속해있는 컬트에 대한 의구심을 삭제해버린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책을 멈추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는데, 사고 차단 클리셰의 예시들이 내가 자주 쓰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서로가 가진 신념이 어떠한지 공유하고 토론함으로써 건강한 사고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앞선 문장들은 이러한 활동을 확실히 방해한다.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발화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대화가 중단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비판과 논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끌어갈 수 있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원대한 꿈을 꾸는 일은 사람들을 취약하게 만든다. 

컬트에 빠져 인생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말한다. 그저 현실에서 벗어나 유일한 희망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고 말이다. 나은 선택지와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은 삶을 개발해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포교자들은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선호한다. '우울증 환자', '삶을 포기하기 직전의 사람', '삶이 망가진 사람'처럼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을 주로 타깃으로 삼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컬트 표교자들은 사실 선량하고, 서비스 정신이 있으며 예리한 사람들이야말로 이상적인 후보군이라고 말한다. 그런 수준까지 도달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가 유독 순진하거나 절박해서는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유달리 이상주의적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대표적인 컬트 공동체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스타트업'이다. 지금까지 스타트업에 오랜 기간 종사하며 특정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에 일조한 사람으로서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어떠한 예시보다도 더 와닿았다. 



어떤 회사가 불편할 만큼 컬트적인지 판단하는 데 언어가 핵심적인 단서가 된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는 격려의 말, 슬로건, 떼창, 암호, 그리고 의미 없는 기업 내 은어가 지나치게 많다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라는 결속력을 강력하게 만든 것은 '우리만 아는 단어'로 소통할 수 있느냐이다. 스타트업에 종사하며 이직을 할 때마다 그 조직에서 이용하는 특징적인 단어나 문장을 이해하려 애썼다. 이는 전문 용어와는 결이 달랐다. 모른다고 해서 업무 자체에 영향은 주지 않는다. 다만 '조직 생활'에서는 확실히 문제가 된다. 이를 정리해 보려는 시도를 통해 수많은 단어 사전이 생겨났다. 내가 아는 한 단어 사전은 한 번도 제대로 정리된 적이 없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질 뿐이었다. 


 조직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컬트적인 언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고, 이는 조직 밖의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선을 만들었다. 언어가 조직을 둘러싼 선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언어적인 특징은 분명 장점도 존재했다. 종종 더 효율적으로 일이 진행되기도 하고, 결속력을 강화시켜 전에 없던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집단을 모두 컬트라고 명명하고 따라서 악하다고 비판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모두가 뭔가를 믿는 일이나 어딘가에 참여하는 일을 거부한다고 세상이 나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도한 경계심은 인간으로 사는 삶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을 망쳐 버릴 수 있다. 잠시 나마 경계를 내려놓고 다 함께 주문을 외우거나 합창할 수조차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모두가 다른 선택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연결이나 의미를 조금도 믿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컬트에 대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컬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시간을 허비했는지 원인을 '제대로' 살펴보고,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와는 먼 이야기 같았던 컬트 문화에 진득하게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컬트에 빠지는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길을 잃었다. 

"삶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에게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중략) 같은 것을 추구하는 타인 곁에서 뭔가를 믿고, 느끼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 DNA에 새겨져 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이 있다고 확신한다. 마음 한편에서는 동시에 여러 '컬트'에 속하는 게 바로 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처럼 느껴진 막바지 문장이었다. 인간은 늘 길을 찾고, 잃어가며, 끝없이 걸어간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아가는 방법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어떤 곳인지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가진 목표와 결핍을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되, 잃어버린 길을 찾을 수 있는 힌트가 되어줄 수 있다면 기꺼이 취할 용기도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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