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어색하지만 멋진 영화 <승리호>
개봉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던 <승리호>가 드디어 (두둥) 등장했다. 장르가 장르인 탓에 스토리든 기술적인 면이든 호평일색은 아닐 것이라 예감은 했다. 역시나 영화에 대한 평은 많이 갈리고 있다. <승리호>의 인물 구성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신파와, 웹툰에서 글로만 적혀있어야 할 대사가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올 때 느껴지는 어색함은 무시할 수 없는 약점이기는 했다. 다소 평면적인 주인공들, ‘대기업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하위계급’이라는 단순한 스토리 라인에서는 분명한 벽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만하면 좋다. 티켓 파워는 물론 연기력도 뛰어난 배우들의 열연,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높은 수준의 CG, 가볍게 즐기기 좋게 만들어진 웃음 버튼들. 영화관을 자주 못 가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관대해진 내 시선에, <승리호>는 모질게만 대할 수 없는, 수작은 아니더라도 졸작도 아닌, 약간의 애정을 보태 응원해주고 싶은 영화였다.
승리호
<승리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승리호'다. 그동안 영화에서 많이 봤던 총천연색의 화려한 우주선도 아니고, 최첨단 기술이 요모조모 붙어있을 만한 깔끔한 느낌도 아니다. 오히려 인천 앞바다에서 볼 법한 화물선, 그것도 세월의 흔적을 잠자코 겪어온 늙고 큰 배의 느낌에 가까웠다.
낡고 붉은 선체에 적힌 승리호라는 문자와 태극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설핏 애국심 비슷한 것도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와-와- 소리를 연발했다. 아쉽게도 영화의 타이틀이 된 데다가 하는 역할도 적지 않은 우주선의 비중에 비해, 승리호 자체의 특이한 기능과 역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능력 있는 선원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승리호에는 빚만 쌓여갈 뿐이다.
승리호에 한눈에 반한 관객으로서, 승리호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깊이 있게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하염없는 기대를 해본다.
인물
영화의 시작이 태호에게 맡겨졌고, 여러 인물들과 흔들리는 스토리 라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이 되는 인물 역시 태호다. 그래서인지 과거가 자세히 밝혀지는 인물도 거의 태호가 유일하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태호 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타이거 박, 장 선장, 업동이, 꽃님이 모두 영화를 전개하는 데 있어 각자가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찬찬히 살펴보자면 다소 심상하다. 스타워즈의 C-3PO가 자연스레 연상되는 업동이는 유해진 배우의 목소리와 영화 끝에 등장하는 반전 파격 변신으로 생기를 얻지만, 다소 우스운 소리를 하며 인간들에게 친근한 여느 로봇 캐릭터들과 크게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은 없다. 태호와 장 선장은 말 그대로 잘 나가다 비주류가 된 인물들로 그 외의 특징으로 꼽을만한 점이 없다. 그나마 태호는 개인사에 대한 스토리라도 풀어줬지, 장 선장 역할은 도대체 왜 UTS에 그토록 심한 거부감을 갖게 됐는지, 분노의 기원은 무엇인지, 어쩌다 선장이 된 건지 무엇하나 분명한 것이 없다. 타이거 박도 다르지 않다. 우락부락하지만 누구보다 아이를 좋아하는 반전 매력조차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인상이다.
다만, 인물들이 모여 승리호 위에서 '우주 쓰레기 수거' 및 '도로시 협상 작전'을 펼칠 때는 그들의 밋밋한 성격과 배경이 조금씩 지워지고 오고 가는 대화에 웃음이 난다. 각 캐릭터는 진부함을 면치 못했어도, 새로운 배경과 새로운 설정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 속에서는 미약하게나마 캐릭터들도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인물들과 관계에 깊이를 더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반,
그래도 영화 보는 내내 나를 지루하지 않게 해 주었던 인물들에 대한 칭찬 반.
스토리
거대 기업의 횡포, 심화된 계층 간 갈등.
그리고 그에 맞서는 비주류 계급들의 고군분투.
배경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우주 스케일로 커졌다 뿐이지 독특한 스토리는 아니다. 다만 커진 스케일 탓에 작은 설정들이 바뀌었는데, 그중에서 UTS라는 해외 기업이 등장한 게 개인적으로 어색했던 점이다.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왠지 김치찌개에 스테이크가 들어가 있는 기분이랄까, 참을 수 없이 불편하다. 연기가 부족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한국 카메라가 뭔가 다르기라도 한 건가...
보통 영화 속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발화점은 특정 인물의 부재 혹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인데, 승리호는 후자의 케이스를 취했다. 오직 돈만 보고 달려온 네 인물은 꽃님이(도로시)의 등장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시선을 약간씩 달리하게 된다. 우연하지만 기구하게 얽힌 UTS와 각 인물들의 관계는 꽃님이로 대표되는 지구의 희망을 보태는 화력이 되고, 승리호는 그 희망을 지키기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투기를 보인다.
이순신 장군의 명언은 승리호에서도 여지없이 착 들어맞는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라는 말이 이보다 적합할 수가 없다.
나름의 반전도 갖추고 있는 승리호의 스토리.
새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더라도, 이토록 속이 뻥 뚫리는 완벽한 ‘선’의 승리도 가끔은 필요한 법.
승리호는 영화 속에서는 물론 영화 밖에서도 많은 것을 부수고 부딪히느라 녹록지 않은 여정을 걷고 있는 듯하다. 부서진 것들 중에는 누군가의 기대감과 누군가의 희망이 있겠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뿌옇게 서렸던 벽도 그 부서진 것들 중 하나였다. 어색하지 않은 CG와 그럴법한 우주 영화가 우리나라 배우들의 얼굴과 한국어의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작지 않은 성과인데, 26여 개 국가에서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까지 토하고 있으니 말이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명량>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섞인 듯한, 애매모호한 맛이 나는 음식을 먹은 것도 같다. 하지만 알을 깨고 나서야 새로운 세계의 공기를 호흡할 수 있듯, <승리호>가 깨부순 작은 벽은 <킹덤>이나 <스위트홈>에 이어 한국 영화의 저변을 넓혀줄 것이 명징하다.
점점 다양한 작품들이 이 작은 나라에서 기획되고 제작되어 큰 세계로 뻗어나가는 모습이 강력한 국뽕(?)이 된다. 다음에는 또 어떤 기괴하고 어처구니없지만 놀라운 제2의 승리호가 새로운 벽을 깨줄 지 기대가 되는 요즘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