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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Feb 27. 2021

로맨스 포르노? 그냥 <브리저튼>이라고 해줘

잘 만들어진 시리즈가 요상스러운 수식어에 가려지지 않기를


<브리저튼>의 글로벌한 대성공 때문인지, 요즘 포털 메인 기사나 각종 넷플릭스 리뷰들에서 '로맨스 포르노'라는 수식어가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로맨스 포르노'라고 불리는 새로운 장르는 주로 <브리저튼>과 <365일>이 함께 엮여 설명되고는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두 작품이 하나의 수식어로 엮이는 것도, '로맨스 포르노'라는 단어 자체도 난삽하게 느껴진다. (<365일>이 끌었던 일시적인 주목에 호기심이 일어 조금 살펴보았는데, 도무지 이 영화를 끝까지 스킵 없이 볼 수 있는 용기까지는 생기지 않아 중간에 꺼버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브리저튼>은 로맨스 포르노라고 단순히 설명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그저 잘 만들어진 넷플릭스 시리즈다. 로맨스가 메인이며 19금스러운 장면도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레이디 휘슬다운의 정체를 파헤치는 추리, 남자 주인공들의 액션도 적지 않으며 가족 간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도 녹여져 있다. 즉, <브리저튼>을 로맨스 포르노라는 장르로 무 베듯이 분류하고 섣불리 판단하기는 속에 담긴 서사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수식어로 인해, <브리저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본 나 그리고 다른 시청자들이 폄하되는 듯해 분하기까지 하다. 



배경이 되는 시대가 시대인지라 분명 여성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것이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사교 행사에 참석해야 하며 많은 남성들과 좋든 싫든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눈다. 오히려 이러한 세계에서 주체적인 삶을 이끌어나가는 여성은 지위와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없다.  


그 속에서 <브리저튼> 속의 다프네, 그녀의 동생 엘로이즈, 흑인 왕비, 흑인 레이디 댄버리 등의 캐릭터는 시대 배경을 깨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주체성을 보이며 살아 숨 쉰다. 특히 다프네는, 처음에는 그저 예쁘고 귀하게 자란 세상모르는 수동적인 여성처럼 그려지다가 점차 성장하고 주체적인 캐릭터가 되어가는데, 이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상류층 여성의 삶을 가장 격하게 거부하는 엘로이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자 하는 자신의 로망을 위해 프러시아 왕자의 청혼도 거부하고,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버브룩에게는 주먹을 날리는,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이먼과 위장 연애를 고안해내는 발칙함까지 갖춘 다프네. 게다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장녀'로서의 부담감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때도 있었다. 


'포르노'라고 치부됐던 19금 장면들 역시 다프네의 변화된 모습 중 일부다. 수동적이고 무지했던 다프네가 오히려 사이먼 공작과 적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단순히 '야하고' '자극적인' 장면을 넘어서, 그동안 세상사로부터 단절된 채 살아왔던 새장 속의 새가 스스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삶을 더듬어가는 중요한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물론 야하고 자극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365일>처럼 맹목적인 19금도 아니며 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도 아니라는 것이다. 시리즈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건너뛰지 않고 모두 본 나로서는 오히려 야한 장면들의 비중은 아주 잠깐으로 느껴질 정도로 일부였다. 



<브리저튼>의 잘한 점 또 한 가지. 사교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여성들의 시선에서 풀어나가는 스토리가 메인인 드라마 치고, 여성 캐릭터들 사이의 시시껄렁한 질투와 경쟁이 이렇게나 없는 드라마가 있을까? 게다가 '로맨스'가 주축인 시리즈에서 말이다. 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치정극이나 알량한 다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해도 <브리저튼>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작품이다. 그 흔한 머리채 싸움 한번 없고 시시한 험담으로 우정과 사랑이 갈라지는 가벼운 인물들도 없다. 그러기에 그들의 목표, 우정, 가족애, 사랑은 끈끈하다. 


이런 단단한 시리즈의 성공을,
로맨스와 포르노라는 단어가 억지로 섞인 뜨악한 장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설명하는 것은 <브리저튼>에 대한 얕은 이해와 편파적인 시선에 의해 드러난 편견이 아닐까.




레이디 휘슬다운의 소식지로 인해 새로운 사건들이 상류계에 퍼지고 그로 인해 스토리가 진행되는 플로우, 레이디 휘슬다운의 내레이션이 자주 등장하는 점 등은 흡사 '가십걸'의 형태를 빌려온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 시즌 끝에서야 정체가 드러난 가십걸과 달리, <브리저튼> 속 레이디 휘슬다운의 정체는 시즌1이 끝나는 시점에 (시청자들에게만) 벌써 공개됐다. 


그리고 시즌2는 당연히 확정됐다. 시즌2에서, 우리는 알고 있는 휘슬다운의 정체를 엘로이즈가 밝혀내게 될지, 그 이후 휘슬다운과 엘로이즈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다프네와 사이먼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모습과 이 부부가 겪게 될 또 다른 갈등은 무엇일지, 다프네의 오빠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어떻게 지켜나가고 혹은 포기할지, 펼쳐져야 할 두루마리가 수도 없다. 1년쯤은 기다려야 공개되겠지만, <브리저튼> 제작팀이 시즌1에서 보여줬던 (스토리, 영상미, 음악 등 수 없이 많은 포인트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 저력을 시즌2에서도 맘껏 뽐내 많은 시청자들을 매료하기를 기대한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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