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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Aug 10. 2022

엄마는 강하다고요?

전혀요, 엄마는 너무 약해요

엄마라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극단적인 두 감정의 파도 사이에서 전투적으로 헤엄치는 일 같습니다. 행복하다가도 고통스럽고, 즐겁다가도 화가 나고, 완전한 존재 같다가도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가 됩니다. 물론 변화무쌍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엄마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경험이긴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 감정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화가 치미는 자신이 밉고 하염없이 못나보여, 결국은 자기혐오라는 종착지에 떠밀려가곤 하니까요. 


엄마가 되고 나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족하지만 가장 완벽해야 하는 존재가 됩니다. 특히나 모든 선배 엄마 아빠들 눈에는 미숙한 점 투성이로 보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아가씨 시절에는 쉽게 들어보지도 못했던 별의별 조언과 간섭과 꾸중과 걱정을 폭발적으로 듣기 시작합니다. 양말이라도 안 신겨서 외출하는 날에는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나를 쫓아오면서까지 '애 춥다'라고 걱정하고, 아이가 스스로 할퀸 얼굴 상처에도 '얼굴이 왜 이렇게 됐냐'는 질문에 엄마는 죄인이 됩니다. 


아무리 잘해줘도 부족하고, 몸과 마음이 아픈 순간에도 아이에게는 웃어줘야 하는 엄마들. 그런 엄마들에게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은, 가끔은 너무 폭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엄마는 사실 너무 약해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몸이 완전히 정상궤도로 채 돌아오기도 전에 육아 전선에 뛰어든 엄마가 어떻게 강하겠어요. 밥도 잠도 그 무엇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이 육아인 걸요. 제가 엄마가 된 이후로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엄마"의 정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날 곳이 없는 존재"에요. 코로나로 열이 치솟아도, 새벽에 수유하느라 잠 한 숨 못 자도, 우울함에 잠겨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날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날 곳이 없어"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키웁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건 엄마라서 강한 게 아니에요. 사실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하고 예쁜 우리 아기지만, 누군가 나 대신 아기를 안아주고 달래주고 먹여줄 수만 있다면 너무 좋겠어요. 강한 존재이고 싶지 않아요. 엄마는 너무 힘들고 아프고 약해요. 


강해 보이는 엄마에게는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은 위로도 응원도 아니에요. 적어도 저한테는 그랬어요. 오히려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힘들어도 된다는, 그게 당연하고 가능할 것이라는, 그저 혼자 버텨내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느껴집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가 우리가 아는 그 한국 아줌마가 탄생한 거겠죠. 억척스럽고 눈치 보지 않고 막무가내인.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강함을 요구하면서 그런 아줌마의 모습에 눈살 찌푸리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네요. 우리가 언제 한 번 엄마들의 힘든 내면과 여린 모습, 기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나 있나요?


하여간, 엄마는 강하다는 말은 최소한 저한테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밥 한 끼 사주던가, 아기를 한 시간이라도 봐줄 게 아니면, 그냥 입 꾹 닫고 토닥여줬으면 좋겠어요. 힘들고 약한 몸으로 고생한다고 도와줄 건 없는지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저는요, 우리 딸이 엄마가 되면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울어도 되고 힘들어해도 되고 화가 나고 소리 지르고 싶어도 된다고,
아기가 좀 다쳐도 되고 덜 재밌어도 되고 좀 적게 먹어도 되니까 대충 해도 된다고,
아기도 좋지만 스스로를 먼저 돌보고 스스로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고,
이미 네가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만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뭘 어떻게 해도 괜찮다고,
육아 콘텐츠 너무 많이 보지 말고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 너무 많이 듣지 말고,
강하지 않아도 되고 다 잘 해내지 않아도 되니까 가장 몸 편한 마음 편한 길을 찾아서 육아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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