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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태 Sep 09. 2017

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 (1)

기억

1.마광수 교수님의 수업은 2008년에 들었다. 당시 나는 세브란스에 2달 정도 입원을 해서 수업에 가기 힘들었고, 팔에 깁스를 한 상태라 레포트(야설)를 쓰거나 시험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2.이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환자복을 입고 링겔을 끌면서 연구실에 두어 번 찾아갔는데, 신기한 점은 그렇게 엄청 특이한 비주얼을 하고 갔음에도 내 얼굴과 존재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3.교수님의 방 풍경은 매우 신기했다. 긴 손톱을 가진 손 조각, 각종 야한 사진들, 그리고 온갖 성인용품들이 있는데, 교수님께 이게 뭐냐고 묻자 특유의 나른한 말투로 '아 애들이 가져다 준거야- 레포트에 이런거 붙여서 보내고 그러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라고 이야기했다.

4.그러던 중, 나는 교수님이 '요즘은 야한 사이트를 다 막아놓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푸념하는 것을 듣고, ip우회 등을 위해 사용하던 DNS free 등의 프로그램을 usb에 넣어 전달했다. 사용법을 모르실까봐 설치하는 법, 우회하는 법 등을 설명하는 블로그 글도 출력해서 같이 가지고 갔다.

5.그 프로그램을 깔아 드리고, 이제는 이러이러한 야한 사이트를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드리자, 늘 피곤해 보이던 교수님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면서, '야, 이제 되는거야? 우와, 신난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야 너 이름이 뭐야?'라고 물었다. 그때 비로소 교수님은 나를 기억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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