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들
1.마교수님의 수업은 '연극의 이해'라는 이름과 관계없이 대략 1)마광수가 왜 야한 책을 썼는지 2)마광수가 어떤 탄압을 받았고 그게 왜 후진 일인지에 대한 내용을 강의했다. 놀랍게도 매 수업마다 1)과 2)가 비슷한 비율로 강의되었다.
2.TV도 없는 병실에 누워 있던 시절이라, 수업준비 겸 해서 마교수님의 '권태'와 '즐거운 사라'를 읽었다. 도서관에서 대여하니 중간중간 뜯겨나간 부분과 종이에 알수없는 액체가 묻은 탓에 종이끼리 붙어 있는 장이 많았지만 내용 이해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3.책을 읽고 든 생각은 '이건 뭐지?' 였다. 솔직히 정말 유치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놓고 본인, 즉 마르고 힘이 약하고 허여멀거름하고 손이 예쁘고 존 레논을 닮은(!) 문학 교수였다. 그리고 펼쳐지는 온갖 페티쉬들에 대한 묘사는 야하다기보다 기괴했고,
모든 여자들은 교수를 사랑하고, 유혹했고, 근육 없음/ 힘 없음/ 발기가 잘 되지 않음 같은 특질들을 칭송했다. 소설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자위행위 같았다. 그론데 묘하게 그 야하고 기괴하고 유치한 소설이 뭔가 논문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4.나중에 수업을 위해 마교수님의 수업교재인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를 보고서야 '마광수 소설'의 의미를 알았다. '문학과 성'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론으로부터 시작해서 프로이트, 마조흐와 사드 등으로 이어지며 '문학은 일종의 상상, 자위행위, 배설'임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로 등장하는 각종 페티쉬들을 그대로 묘사로 옮긴 것이 마교수의 소설이었다.
마치 공식에 따른 것처럼, 마교수의 모든 소설은 자신이 말하는 인간관과 문학관, 이론들을 소설화한 것이었다. 어딘가 모르는 논문스러움은 거기서 나온 것이었다.
5.마교수님은 늘 '재미있는 소설'을 말하고 '먹물스럽지 않은, 야한' 소설을 말했지만, 실제 그의 소설은 굉장히 먹물스럽고, 문학 이론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아서 사실 많이 야하지 않은 그런 것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노골적 야설이 '19금'도 없이신문에 연재되던 그 시절, 마광수만이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리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