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만 가르치는 게 아닌 퀼트 선생님,
저에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 새롭게 정착한다는 것은 설렘이 큰 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잦은 이사와 유학생활로 한 지역에서 평균적으로 4년 정도만 지내 온 저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게 익숙한 편입니다.(이 방랑벽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렌지카운티를 떠나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퀼트/퀼팅 수업을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렌지카운티에서는 이 주에 한번 정도 근처 지역으로 가서 친구와 함께 한국인 선생님께 퀼트/퀼팅 수업을 듣곤 했습니다. 이 수업은 오렌지카운티를 사는 마지막 일 년 반 정도 동안 저의 일상에 가장 깊게 들어왔던 루틴이었습니다.
퀼트/퀼팅(quilting)은 천 조각을 한 땀 한 땀 이어 붙여 소품이나 따뜻한 담요 등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각 천 조각은 다양한 색상과 패턴으로, 때로는 오래된 옷이나 기억이 담긴 천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작은 조각들이 연결되어 가며 조금씩 더 큰 조각이 되어가는 작업은 고되기도 하지만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고 나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처음 천을 자르는 것부터 이어 붙여가는 것, 마감을 하는 것까지, 이곳에서 만난 퀼트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격 주 토요일에 선생님 집으로 찾아가면, 거실에 테이블을 모아 6-7명의 수강생들이 모여 퀼트를 배웠습니다. 저와 친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10년 가까이 퀼트를 하신 분들이라 다른 수강생분들은 배운다기보다는 같이 퀼트를 하고 계시고, 저와 친구만이 열심히 배워가는 단계였습니다. 연습 용 작은 소품부터 혼자서는 시작하기 어려운 커다란 작품까지 선생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주중에 일에 시달리고 이런저런 잡생각에 시달리다 퀼트를 시작하며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도 두어 시간씩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마음을 소란스럽게 휘어잡고 있던 생각들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손의 바쁨은 잡생각을 쫓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마음의 풍랑을 잠재우는 것은 단지 퀼트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퀼트 선생님은 퀼트도 가르쳐주시지만, 먼저 미국에 정착한 인생의 선배로써 제가 삶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선택지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퀼트 선생님은 젊어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 이미 손주들까지 보신, 오랜 경험을 가진 분이었고, 정말 긍정적인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삶에 대한 마음가짐을 곁에서 보고 배우며 많이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삶의 어려움 앞에서도 선생님은 의연하게 인내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퀼트를 통해 기다림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인생의 선배로써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 늘 애쓰셨습니다. 퀼트는 스스로 만들어가지만, 선생님의 조언이나 가르침이 가득해서, 완성 후에는 언제나 애정이 가득 담긴 소품을 만들어 낸 느낌이었습니다. 선생님과 퀼트를 만드는 동안은 참 이쁨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기간이었습니다.
퀼트 수업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크리스마트 파티도 했었습니다. 해외로 나온 후, 언제나 단출히 집에서 축하했던 크리스마스를 맞아 퀼트 수업에서 각자 챙겨 온 작은 선물들도 주고받으니, 정말 오랜만에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해외생활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가까운 친구들을 원할 때, 필요로 할 때 만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퀼트 수업을 통해서 미국 사회에서 긴 역사를 자랑하는 퀼트클럽에 소속될 수 있었습니다.
이사를 온 후, 조금씩 이전에 배운 것을 기반으로 스스로 만들고 싶은 소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할 때보다 훨씬 오래 걸리지만, 조금씩 하다 보면 실력도 더 늘거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선생님이 놀라실 만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그리고 종종 선생님도 뵐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