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유령호수가 돌아왔다.

데스벨리

by Joyce


출산을 앞두고 데스밸리를 다시 찾았다. 데스밸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은 라스베가스에서 차로 두 시간 반 남짓이면 닿는 거리다. 이미 만삭이라 망설였지만, 최근 내린 비로 배드워터 베이신(Badwater Basin)에 물이 차며 호수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오래 아쉬울 장면일 것 같아, 길을 나섰다.


데스밸리(Death Valley)는 1849년 골드러시를 좇아 이동하던 사람들이 이 지역을 지나며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름부터가 거칠다. 이곳은 지구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높은 산맥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 열을 안쪽에 가두고, 건조함이 그 열을 더 오래 머물게 한다. 그래서 데스밸리의 풍경은 늘 ‘뜨거운 건조함’과 ‘극단’으로 기억되지만, 이번에는 그곳에 잠시 들어찬 물을 보러 왔다.


IMG_5932.jpg 데스밸리


데스밸리는 규모가 큰 공원이라 빠르게 둘러봐도 이동 시간을 포함해 이틀에서 사흘 정도의 여유가 있으면 좋다. 일정이 촉박하다면, 세일링 스톤(sailing stones: 바닥에 놓인 돌들이 스스로 움직인 듯 긴 자국을 남기는 현상)으로 유명한 레이스트랙 플라야(Racetrack Playa)는 과감히 포기하고, 스토브파이프 웰스(Stovepipe Wells)와 배드워터 베이신(Badwater Basin) 주변의 주요 지점들에 집중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데스밸리 국립공원 안에서는 주유소와 편의시설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입장 전 연료를 충분히 채우고 간단한 식사거리와 물을 챙기는 것이 안전하다. 여기서는 물조차 ‘풍경’이 아니라 ‘생존’에 가깝기 때문이다.


image.png 데스밸리 주요 스팟들


스토브파이프 웰스(Stovepipe Wells)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작은 거점이다. 주유소와 숙소, 식당, 기념품 가게가 모여 있어 동선 중간에 잠깐 숨을 고르기 좋다.


그 근처에는 메스퀴트 플랫 사구(Mesquite Flat Sand Dunes)가 펼쳐진다. 메스퀴트는 사막에서 자라는 작은 나무인데, 모래 능선 사이사이로 그런 나무들이 점처럼 박혀 있다. 사구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능선은 더 커지고 시야는 끝없이 트인다. 아이들은 썰매를 들고 와 모래 위를 미끄러지고, 어른들은 해 질 무렵의 붉은빛을 기다린다. 해가 지기 30~40분 전쯤이면 사람들은 캠핑의자를 들고 더 멀리 걸어가 자리를 잡는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천천히 가라앉는 해와 모래 위로 반짝이는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음 깊이 기억에 남았다.


DSC01935.jpg 메스퀴트 플랫 사구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화염골짜기라는 이름의 퍼니스 크릭 비지터 센터(Furnace Creek Visitor Center)가 있다. 근처에는 캠핑장이 여럿 있다. 우리는 이전에 비지터 센터에서 가까운 캠핑장에 하루 묶었었는데, 화장실 접근성이 좋고, 저녁에 하는 국립공원 레인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좋았다. 데스밸리는 밤에 별을 보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고 실제 밤에 진행되는 별자리 관련된 레인저 프로그램들도 있어서 미리 확인해 방문날짜와 시간을 맞춘다면 레인저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또 퍼니스크릭 비지터 센터 근처에 고급 리조트도 있는데, 리조트 내에 작은 슈퍼와 기념품 가게가 있어 들러보기 좋다. 예전에 캠프파이어에 쓸 장작을 리조트 내 슈퍼에서 구매했다.


배드워터 베이신으로 향하는 길에는 들러볼 만한 지점이 이어진다.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는 노랑과 갈색의 줄무늬가 겹겹이 쌓인 배드랜즈 지형을 한눈에 내려다보게 해 주고, 아티스트 팔레트(Artist’s Palette)는 광물 성분 덕분에 바위가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든 풍경을 드라이브로 스치듯 만나게 한다.

데블스 골프 코스(Devil’s Golf Course)는 더 거칠고 큰 소금 결정이 만들어낸 표면을 가까이 보여 준다. 단테스 뷰(Dante’s View)는 높은 곳에서 데스밸리를 내려다보는 전망대지만, 이동 시간이 꽤 걸리니 배드워터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낸 뒤 여유가 있을 때 들르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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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스 골프 코스의 소금 결정들



그리고 마침내 배드워터 베이신(Badwater Basin). 이곳은 해수면보다 약 86미터 낮은 곳에 위치한다. 수만 년 전에는 빙하수가 모여 거대한 호수를 이루었지만,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물은 증발하고 염분과 미네랄만 남았다.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분지 지형은 결국 소금만 축적시켜, 하얀 소금평원을 만들었다. 대부분의 시간에 이곳은 그 하얀 소금 평원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배드워터는 늘 ‘뜨거운 건조함의 결말’처럼 보인다. 이 ‘배드워터’라는 이름 자체가 “마실 수 없는 물”에서 왔다고 한다. 물이 있기는 있지만, 짜서 목을 축일 수 없는 물.


DSC01960.jpg 배드워터 베이신


몇 주 전, 데스밸리와 인근에 많은 비가 내리며 이 평원 위로 다시 호수가 등장했다. 짧은 기간에만 등장하는, 말 그대로 유령 같은 호수다. 이 호수를 구경하려 이른 아침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북적거렸다.


소금평원 일부를 덮은 반짝이는 물결 뒤로 눈 덮인 텔레스코프 피크(Telescope Peak)의 능선이 길게 누워 있었다. 하늘은 깊은 청색으로 활짝 열려 있고, 그 아래로 산의 윤곽이 호수 위에 그대로 복제된다. 물은 많아 보이지만 사실은 발목 정도를 적실만큼 얇게 소금평원을 덮고 있을 뿐이다. 호숫가에는 소금 결정과 작은 돌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이 호수는 “해갈”이 아니라 “거울”이다. 풍경은 완벽하게 되살아나지만, 이 소금물로는 목을 축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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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워터 베이신의 멘리호수(Lake Manly)



그래서 더 유령 같다. 분명 존재하지만 오래 머물지 않을 것 같은 존재감. 사막의 바닥을 잠시 덮는 물은 멀리서 보면 구원처럼 반짝이지만, 가까이 가면 그 물이 소금으로 가득하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호수는 돌아왔으나, 마실 수 있는 물은 아니다. 물이 있다는 사실이 곧 생존이 되지는 않는다.


이 유령 호수와 비슷하게, 데스밸리를 다녀온 직후에 시작된 출산 휴가는 임신으로 배가 불러오면서 체력적으로 지쳐가던 나에게, 그리고 그 와중에도 불안한 마음에 닥치는 대로 일을 쳐내며 스스로를 갉아먹던 번아웃으로부터 잠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기회가 되고 있다. 아이는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줄 만큼 사랑스럽고, 너무 감사하게도 산후조리 기간 엄마가 미국에 와 주셔서, 회복하는 동안 아이와 육아에 대해 배워가고 있다. 이 시간이 내게는 분명 ‘물이 돌아온’ 시간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배드워터의 호수처럼, 어떤 회복은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지만, 그 자체로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호수는 존재하되 소금이 녹은 물이고, 결국 짧은 기간만 머물다 사라진다. 그래서 이 쉼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연습의 시작’이다. 이 짧은 물빛이 남아 있는 동안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은 휴식 그 자체라기보다, 다시 바빠질 일상 속에서도 아이와 함께 일을 해나가는 리듬이다.


호수는 봄이 다가오며 곧 증발할 것이다. 하얀 평원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나도 다시 일하는 삶으로 돌아가고, 새롭게는 육아를 하는 삶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결심은 예전과 같이 일에 모든 것을 소진하는 방식으로는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다. 데스밸리에서 본 것은 ‘물이 있는 기적’이 아니라, 물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방법이다. 짧게 반짝였던 수면이 산의 윤곽을 한 번 더 또렷하게 보여주었듯, 이 시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 인가하는 삶의 윤곽을 잠시 선명하게 비춰주는 계기가 된다.

유령호수는 목을 축이지 못했지만, 방향은 보여주었다. 그 방향을 기억한 채로, 결국 호수가 사라진 뒤에도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배워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