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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Hyuk Jul 04. 2019

영화, 없음으로의 세계

-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켄 스콧, 2018)

  인도의 가난한 청년 파텔은 이케아 매장에 가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이 소원은 파리에 가겠다는 어머니의 소원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가난한 인도 서민의 파리여행이라는 불가능한 상상이 이케아로 상징되는 것은 이케아가 가진 글로벌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일종의 알레고리와 같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스웨덴의 작은 가구 브랜드에서 전지구적인 문화의 상징이 된 이케아는 미니멀리즘을 기조로 세계 어디에서도 낯설지 않은 인테리어를 창조한 기업이다. 북유럽이라는 관념적인 세계를 집이라는 가장 내밀한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환상은 이케아를 유지하는 핵심이다. 때문에 위조지폐를 들고 파리에 도착한 파텔이 곧장 이케아 매장으로 향한 것은 서구를 상상해왔던 자신의 과거를 현실화하는 선택이다. 흥미롭게도 매장에서 미국 여자 넬리에게 반한 파텔이 취한 행동은 스위트 홈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영화의 서사와 상관없이 이케아가 주는 문화적인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상상하는 비서구인의 관념을 이케아라는 직관적인 상징으로 전환시킨 것은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영화 <이케아>는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는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시놉시스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이케아의 옷장을 통해 세계를 여행한다는 상상은 난민에 대한 은유로 읽어낼 수 있다. 정당하게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여 파리에 도착한 파텔이 난민으로 오해받아 재소의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난민들과 함께 떠돌아다니는 장면은 이 영화가 애초에 의도한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말하자면 내전과 국제분쟁으로 인해 떠돌아야했던 사람들, 그 사이로 고향과 가족을 잃은 파텔이 관찰하는 난민들에 대한 시선이 이 영화의 주된 서사인 셈이다. 의도치 않는 유럽 일주 중 로마에서 만난 할리우드 여배우까지 서로를 향해 복잡하게 얽힌 시선들은 무례하진 않지만 여전히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특정한 브랜드를 서사의 주요 오브제로 활용한 것처럼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이하 이케아)은 많은 것들을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인도 빈민 소년의 성공기라는 점에서 <슬럼독 밀리어네어>을, 공항에 억류되어 일상을 살아가는 장면에서는 <터미널>을, 열기구를 타고 떠난 여행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상류층 여인과 로마를 데이트하는 부분에서는 <로마의 휴일>을, 이야기라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속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묻는 부분에서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과 영화를 여행하는 행복한 기억의 영화 <이케아>는 마지막 선택에서 스스로 균열을 드러낸다. 이 모든 여행을 종국에 환상으로 제시하고 인도 아이들을 학교로 되돌려보내는 현실로 편입시킨다. 셔츠에 적힌, 감정으로 충만한 파텔의 이야기와 난민들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순간이 픽션으로 돌변하는 순간은 이 행복한 기억들을 꿈으로 부유시킨다. 

  이케아가 세계인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을 점유하듯, 할리우드 시스템이 전세계 극장의 풍경을 고정시키듯 세계는 계속해서 없음(Worldless)을 지향해나간다. 영화 <이케아>는 스스로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없음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이케아와 할리우드가 지워낸 세계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희미해져갈때쯤 무채색의 이케아에서 총천연색의 인도로 되돌아가는 파텔의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로컬라이징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없음으로의 세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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