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JTBC, 2021)
법과 진실은 동의어가 아니었다. <로스쿨>이 법이라는 소재를 드라마 안으로 끌어와 스테이지화 시킨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로스쿨>이 그리는 학교 안의 풍경은 법조인이 되기 위한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서병주(안내상) 살인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법 시스템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의하는지를 주목하는 <로스쿨>의 기획의도는 법과 일상의 괴리를 극적으로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법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양종훈(김명민) 교수다. 소크라테스식 선문답으로 학생들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양종훈의 얼굴 뒤에는 냉혹한 법이 가질 수 있는 인간다움이 드리우고 있다. 서병주 검사장의 비리를 밝혀내지 못해 검사복을 벗게 된 양종훈은 학교와 학생들의 갈등을 누구보다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그의 기획 아래 학교, 모의법정, 살해현장이 무대 위로 올라오며 법이라는 서사 아래 다양한 인간의 얼굴이 교차하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양종훈이 보여주는 냉정함 뒤의 온기는 법 시스템이 세상을 운영하는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구속 중에도 별다른 동요없이 시험지를 채점하는 양종훈의 모습은 마치 법이 의인화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김명민의 배우적 역량이 극대화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법 시스템에 대한 <로스쿨>의 믿음은 미성숙한 학생들을 드라마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면서 더욱 증폭된다. 법조인으로서의 지성적 준비는 끝마쳤으나 실제 사건 앞에서 미성숙한 로스쿨 학생들의 모습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삼촌 서병주와의 불화 끝에 세상에 등을 돌린 한준휘(김범)와 감정을 내세우며 로스쿨에 적응하지 못하는 김솔a(류혜영), 데이트폭력을 당하는 전예슬(고윤정)과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강솔b(이수경) 등 <로스쿨> 속의 학생들은 비슷한 나이대의 20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청춘드라마의 문법을 상당부분 차용하고 있는 것도 공정한 법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가진 얼굴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법을 다루는 인간들도 각자의 얼굴을 지니고 있기에 학생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법 시스템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구조는 이 드라마가 보이는 법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병주 살인사건을 계기로 각각의 인물들 속에 잠재된 빛과 어둠은 <로스쿨>이 매력적인 법정 드라마임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 법의 안과 밖에 위치한 사람들의 삶을 곧장 무대로 끌어올리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아동성범죄자 이만호(조재룡)의 어둠을 무대 위에 구현하기 위해 김은숙 교수(이정은)를 유산시키거나 피해자와 기어코 재회하게 만드는 <로스쿨>의 의도적인 서사전략은 위험하다. 누구나 원하는 대답을 만들기 위한 <로스쿨>의 손쉬운 선택은 드라마가 건네야 하는 근본적인 윤리적 질문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 바꿔 말하면 법리적 공방을 벌이는 것이 정의와 진실을 확증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임을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리적 판결은 정의와 진실이라는 보이지 않는 증언에 기반할 수 없다. 때문에 드라마 내내 강조되는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주의는 법 시스템이 어디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법이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사건의 실정성이다. 진실과 정의는 법의 판결 후 건내져야 할 윤리적 질문을 통해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법이 진실과 정의와 동일한 궤도에 놓여있다는 믿음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법과 진실, 정의를 같은 궤도 위에 올려놓기 위해 무리하게 스테이지 위로 끌어올린 인간들이 놓친 윤리적 질문은 이제 드라마 밖에 놓인 우리들의 몫인지도 모른다.
* 이 글은 Rolling Stone Korea 2호(2021.6)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rollingstone.co.kr/modules/catalogue/cg_view.html?cc=101111&p=1&no=349
<로스쿨>을 리뷰의 대상으로 선택했던 것은 법정물과 청춘물, 추리물의 매력을 검증받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때문이었다. 발행된 원고에서는 강조하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의 문제는 윤리적 감각의 결여라고 생각했다. 중심서사를 '법'이라는 장르적 특징으로 매끄럽게 섞어낸 매력이 끝내 개운하지 못했던 이유가 <로스쿨>이 보여준 이 무감각에서 기인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법을 다루는 일은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에 기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여론과 외압이 원한다 할지라도 법에 대한 지식과 이에 따르는 윤리적 딜레마를 버텨내는 것은 법조인의 직업윤리이자 존재의 이유다. 그럼에도 <로스쿨> 속 교수들은 법조인도, 교육자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정성스레 서사를 쌓아가고 쌓여진 서사를 다각적으로 복기하는 양종훈과 달리 김은숙은 직업윤리와 시대적 감각,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도 불가능한 자동인형(automata)처럼 등장한다. 판사시절 아동성범죄자에게 감정적인 판결을 내리고 사임했던 김은숙은 판사라는 전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열린 교수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김은숙은 성적인 발언을 청춘로맨스로 포장하는 대사를 남발하고 이사장의 강의권 침해에 들러리를 서는 교육자로서 아무런 신념을 가지지 못한 인물이 되고 만다. 종국에 <로스쿨>은 김은숙을 유산하기 위해 임신을 시키고 아동성범죄자를 피해자와 재회시킨다. 악을 강조하기 위해 선한 인물들을 바닥으로 내모는 서사 전략은 하수가 남발하는 악수의 연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 글에서 스테이지(Stage)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던 것은 <로스쿨>이 법정을 드라마화시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한 연출이라는 범죄학의 단어를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로스쿨>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정의와 진실에 대한 화려한 연출은 이 윤리감각의 결여를 숨기기 위한 알리바이 확보를 위한 은폐전략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윤리에 대한 무감각은 단순한 이분법에 놓여야만 빛이 나기 때문이다.
법에 대한 불신과 무지는 다른 문제다. 어쩌면 2021년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로스쿨>의 괴리는 이 둘을 혼동하는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