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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Hyuk Jul 29. 2022

우영우라는 세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2022)

 우영우 신드롬은 분명 이상하다. 텔레비전의 종언이 언급되는 시점에서 비인기 케이블 채널, 그것도 장애인을 다룬 법정 이야기는 그간 K-Drama가 보여준 정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두의 예상을 엎고 등장한 우영우 현상은 분명 예기치 못한 사고와도 같다. 이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박은빈)의 성장과정을 그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그간 K-Drama가 구축해온 공식 밖에 선 드라마다. 장애라는 민감한 소재, 에피소드식 구성, 로맨틱코미디의 부재, 비지상파 편성 등은 오히려 실패를 위한 요소들을 집합시켜 놓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둘러싼 비정상적인 현상은 K의 시대를 둘러싼 문화적 맥락이 징후적 독해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맥락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TV 없는 시대의 드라마다. <킹덤>의 성공 이후 시청자들은 지상파 채널이 애써 외면해왔던 세계를 TV 밖에서 발견했다. 안마의자와 프랜차이즈 커피, 재벌이 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는 K-Drama가 추구해오던 방향과는 다르다. 요컨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TV가 없어야만 비로소 시작되는 포스트 텔레비전 시대의 드라마란 무엇인지를 직접 증명해낸 셈이다.

  둘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법정서사를 전면으로 내세운 드라마다.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법은 뒤틀린 욕망을 보여주기 위해 고안된 불쾌한 장치에 가까웠다. 반면 우영우에게 법은 알 수 없는 현실을 해석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논리이자 사회의 원리이다. 하지만 사실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진실은 더욱 불투명해진다. 민주적인 절차와 논리적인 타당성이 불투명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로소 법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에 관한 드라마다. 최근 배리어프리(barrier-free)나 이동권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 역시 담고 있다. 예컨대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정훈(문상훈)과 소통하면서 우영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우영우가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고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에 대한 드라마적인 응답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하나의 예술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데에는 문화적 맥락만으로 그 이유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영우는 “나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 “나와 너로 이루어진 세계”로 어렵게 걸음을 옮긴다. 타인과의 관계를 직접 손으로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고통은 영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에 대해 아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에서 나와 너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대책 없는 희망과 무책임한 위로 대신 영우를 바라볼 수 있는 긴 시간을 그린다. 영우는 왜 다른 사람과 손을 잡지 않는지, 영우는 왜 늘 3초가 필요한지, 영우에게 고래는 무엇이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결국 영우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의 세계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영우가 ‘너’라는 알 수 없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길때 우리 역시 영우라는 ‘햇살’같은 세계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견뎌내야만 경험할 수 있는 성장의 과정이야말로 지금 드라마라는 예술이 줄 수 있는 가장 빛나는 성취일 것이다.            


* 이 글은 고대신문 1954호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3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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