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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Hyuk Sep 27. 2022

아버지라는 이름의 구원, <수리남>

<수리남>(Netflix, 2022)

  폭력과 욕설, 마약과 사이비. 최근 K-드라마에 펼쳐지는 풍경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성매매(<인간수업>(Netflix, 2020)), 자금세탁(<모범가족>(Netflix, 2020)), 마약(<소년비행>(Seezn, 2022)) 등 그간 텔레비전에서 시도할 수 없었던 높은 수위의 드라마가 대거 제작되기 시작했다. 범죄가 텔레비전을 넘어 OTT까지 점령하는 지금의 현상은  비정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K-콘텐츠가 생존을 넘어 글로벌 시대의 정서구조를 고안해내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수리남>은 가족을 위해 전 재산을 걸고 수리남으로 온 강인구(하정우)가 현지 한인교회의 전요환 목사(황정민)을 만나면서 홍어 대신 마약과 얽히며 국정원의 권유로 민간요원으로 잠입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연스럽게 <수리남>은 전요환과 강인구의 대립을 서사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선악의 경계가 뚜렷한 인물의 배치는 그동안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혼돈의 판을 펼쳐오던 윤종빈의 세계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리남>의 서사를 강인구와 전요환의 ‘관계’로 옮겨놓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부모 없이 동생들을 책임지며 밑바닥을 구르던 강인구는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전화 돌리기로 결혼상대를 결정하는 짧은 청혼 시퀀스는 강인구에게 결혼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전요환 역시 밑바닥 인생을 타개하기 위한 종교와 마약을 통해 아버지가 되기를 자청한다. 부패한 공무원(경찰과 안기부 직원)과 만난 이후 아버지가 되기 위해 수리남으로 향해야만 했던 사실은 이 둘의 목적지가 같음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다만 국가라는 아버지가 무너진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각 생물학적 아버지와 영적 아버지라는 선택지가 갈렸을 뿐이다.

  그간 윤종빈은 폭력으로 순환하는 일그러진 남성 세계 이면에 폭력이 세대를 횡단하는 풍경을 카메라 밖의 아들들을 통해 세밀하게 관찰해왔다. 그가 그리는 영화 속 남성들은 생존을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면서도 아버지라는 역할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아버지를 보며 자라난 아들이 다시 아버지가 되어야만 하는 폭력의 순환이야말로 윤종빈의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수리남>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경제위기에 위태롭게 서 있던 아버지를 관조하며 성장한 세대가 현실에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윤종빈이 던졌던 질문은 진부해 보일지언정 결코 가볍지 않다. 강인구와 전요환이 구원이라 생각했던 아버지 되기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점차 일상으로 바뀌는 지금 일생을 건 모험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되기를 스스로 포기해야만 하는 시대의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확인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고대신문 1958호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34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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