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iHyuk Nov 22. 2022

믿음의 붕괴 – <몸값>(TVING, 2022)

  남성과 여성이 몸값을 두고 흥정을 한다. 어플을 통해 만난 여성의 첫 경험을 두고 벌어지는 흥정은 이내 남성의 장기를 두고 벌어지는 경매로 넘어간다. 비현실적인 설정과 함께 시작하는 드라마 <몸값>은 동명의 단편영화를 원작으로 ‘콘크리트 유니버스’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리즈다. 원작이 그러했듯 드라마 <몸값> 역시 가평의 외진 모텔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성매매가 장기매매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속 어두운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원작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진이 모텔을 덮치면서 생겨난 콘크리트 무덤 속에서 이들의 흥정이 계속해서 역전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드라마 <몸값>은 재난의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을 그린 군상극처럼 보인다. 드라마는 형수(진선규)와 주영(전종서), 극렬(장률)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지옥과도 같은 모텔 안을 헤매며 탈출구를 찾는 모습을 원 테이크 기법(더 정확히는 원 컨티뉴어드 숏)으로 관찰한다. 이들의 사투가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보인다면 아마도 재난 속에서도 이들이 살아왔던 현실의 규칙들이 재난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난을 다룬 일련의 콘텐츠들을 재난 속에서도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들의 밑바닥으로 해석하는 것은 절반의 이해에 가깝다. <몸값> 역시 표면적으로 모텔 내부의 인간들을 움직이는 것은 돈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등가에 기반한 교환관계의 형성이다. 재난으로 무너진 상황에서도 돈, 장기, 목숨 등이 실시간으로 교환되며 관계를 재구축하는 풍경은 붕괴 이전에 우리는 안전하고 밝은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이 허구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국에 탈출에 성공한 형수와 주영, 극렬이 목격한 세상은 지금 여기가 안전하고 따뜻하다는 믿음이 얼마나 취약한 상상에 기반한 것인지를 상징하는 결말인 셈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개별 인물들의 욕망이 아닌 현실을 지탱하는 거대한 믿음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콘크리트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렸던 웹툰 <유쾌한 왕따>는 교실을 붕괴시키는 것으로 현실의 권력관계와 암묵적으로 형성된 폭력의 카르텔을 외부로 시각화시켰다.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이 무너져야만 드러나는 질서는 그동안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괴물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콘크리트 유니버스라는 세계는 재개발과 투기, 극단적인 자산 축적이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괴물에 우리가 둘러싸여 있다는 자각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콘크리트 유니버스가 보여주는 재난은 물리적 붕괴가 아닌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는 현실의 붕괴에 대한 이형(異形)의 응답에 가깝다. 형수와 주영, 극렬이 그러했듯 붕괴 이후에 우리가 마주쳐야만하는 세상이 지금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 이 글은 고대신문 1963호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40314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라는 이름의 구원, <수리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