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변호사>(SBS, 2022)
정의와 승리는 동의어가 아니었다. 어딘가 이상한 변호사 천지훈(남궁민)이 법정이라는 무대에서 펼치는 활극을 다룬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는 법이라는 제도 이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드라마는 갑질, 사채, 사기 등 법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혹은 보호해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법정에서의 승리가 곧 삶에서의 정의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때문에 <천원짜리 변호사>는 정통 법정 드라마보다 히어로 드라마에 가까워진다. 사내 갑질 문제를 빙고 게임을 통해 해결하거나 직접 불법 중고차 딜러가 되어 환불을 받는 등의 기이한 해결방식은 초인적 능력을 지닌 히어로의 그것과 비슷한 모습을 취한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능력과 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천원짜리 변호사>는 법치주의의 원리와 현실을 무시하는 드라마라는 비판에 직면하지만 법‘없이’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근원적인 문제를 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정 드라마의 외부를 돌파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드라마의 서사 역시 천원의 수임료로 피해자들을 돕는 전반부와 모든 사건의 원인인 JQ 회장을 찾아 나서는 후반부로 나뉜다. 이 과정은 조직 내부에 갇혀있던 천지훈이 세상 밖으로 향하게 된 계기를 보여주기 위한 구성이기도 하지만 법이 정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천지훈 스스로 대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정의만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혼외자식이었던 천지훈이 아버지를 수사대상으로 삼으면서 부딪히게 된 현실이라는 벽은 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에 가깝다. 아버지의 자살과 조직에서의 배제를 겪으며 삶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던 천지훈이 상대 변호사 이주영(이청아)로 인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점은 이 드라마가 법을 모든 문제의 열쇠로 제시하는 법 만능주의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정에서의 승리가 구원이라고 맹목했던 검사 천지훈이 패배했을 때 비로소 법정 밖의 다른 세상과 만나는 장면은 법적 안정성과 실질적 정의의 충돌이 법정 승부의 본질임을 알려준다. 요컨대 천지훈이 그랬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법 기술자가 아닌 함께 실패와 패배의 경험을 함께 견뎌줄 ‘누군가’인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가 법이 보장해주는 평등성에 기초해 세상 밖의 누군가와 만날 수 있었듯이 <천원짜리 변호사>의 천지훈은 법 밖으로 나와야만 현실의 누군가와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이 마주친 세상을 시청자가 함께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천원짜리 변호사>는 일종의 치유 프로그램이 된다. 조기 종영과 완성도 논란에도 불구하고 <천원짜리 변호사>에 대한 기대가 끊이지 않는 기이한 풍경은 함께 비를 맞아줄 누군가를 우리가 여전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이 글은 Rolling Stone Korea 9호(2022.12)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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