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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리더, 남는 책임

– 구조조정 이후, 리더는 어떻게 책임지는가

by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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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이 말했다.

“구조조정을 단행한 리더는 결국 회사를 떠나야 해.
그래야 진짜 책임지는 거지.”

그는 덧붙였다.

“그래서 난 스스로 구조조정 명단에 내 이름을 넣었고, 그게 잘한 결정이었어.”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과연 그런 걸까?
사람을 내보낸 리더는, 그 칼날의 끝을 자신에게도 겨눠야만 '진짜' 리더일까?


2

구조조정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문제고, 관계의 문제다.
그리고 그것을 지휘하는 리더에게는 무거운 책임이 남는다.


리더가 회사를 떠나는 선택은 그 책임을 지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내보냈다면, 나 역시 물러나야 한다는 윤리적 균형.
“누군가의 희생 위에 안주할 수는 없다”는 내면의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에게 변화의 진정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일 수도 있다.


한 스타트업 CEO는 구조조정 후 스스로 회사를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변화의 일부다.”


그 말은 조직 안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아주 선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 변화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정직함,

그리고 “누군가는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고 물러난다”는 용기.


그런 리더의 퇴장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고 내려놓는 것’ 일 수도 있다.


3

하지만 모든 리더가 그래야 할까?
떠나는 것이 언제나 정답일까?


회사의 변화는 단발로 끝나지 않는다.
구조조정 이후 조직은 오히려 더 많은 손길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혼란 속에 리더가 사라진다면, 남겨진 사람들은 또 다른 방향 없이 흔들릴 수도 있다.


“칼은 휘둘렀고, 책임은 피했네.”
남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게 하려면,
리더는 오히려 더 단단하게 자리를 지켜야 할 때도 있다.


떠나는 리더는 용기일 수 있고,
남는 리더는 책임일 수 있다.


결국, 그 선택이 ‘용기’인지 ‘회피’인지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4

그 지인의 결정을 존중한다.
구조조정 이후, 스스로 회사를 나오는 용기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 결정이 단지 개인의 커리어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 조직을 위한 정리이자 메시지였다면 더더욱.


다만 기억하고 싶다.
떠났다고 책임지는 것은 아니고,
남았다고 책임을 회피한 것도 아니라는 것.


결국, 핵심은 ‘떠나는 이유’와 ‘남는 의미’다.


리더가 떠났는지 남았는지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구조조정이 누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가 이다.


정리해 보면......

“아랫사람을 내보낸 리더는 언젠가 회사를 나와야 한다.”

이 말은 일종의 윤리적 금언(金言)처럼 들릴 수도 있고,

현실 도피의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결정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그 결정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이다.


리더는 늘 가장 어려운 질문 앞에 선다.

누구를 살려야 하는가,

어떤 기준이 공정한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더십이란,

모든 칼날이 끝난 뒤에도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고,

그 선택이 누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를 끝까지 묻는 태도다.


그리고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한 리더만이

떠나도 남고, 남아도 남는다.


10개월 전, 구조조정을 결정했고, 그 마지막에 조용히 내 이름도 올렸다.
누군가는 그 선택을 이해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결국, 그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져야 했다.
이 글은 그 질문들 사이에서 오래 머물다 나온 기록이다.
생각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그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야 겨우 이렇게 기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선택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이제는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리고 나의 다음을 다시 설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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