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홈페이지 제작기
2023-06-24
<개인 코치가 홈페이지를 만들면, 좋은 걸 알면서도 자꾸 못 만드는 이유> : 나의 홈페이지 제작기 (1)
친한 동료 코치분들과 같이 모이면, 하나같이 만날 때마다 이야기하는 주제들이 있다.
“그래, 우리 유튜브 해야지. 이젠 안 하면 안 되는 시대지.”
“맞아, 맞아. 그래, 홈페이지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진짜 오래전부터 했는데, 아직 안 했네.”
“야야, 인스타그램 하나 유지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요즘 노션으로도 프로필 정리할 수 있다던데?”
“아, 프로필 사진 다시 찍어야 하는데 그치?”
“그래, 책 한 권은 내야 시장에서 일할 수 있지. 맞아 맞아. 글 써야지 글,글.”
다들 그렇게 누가 한 마디 꺼낼 때마다 매번 격한 공감을 한다. 모두 활동하면서 이 시장이 더 이상 스스로가 자신을 알리지 않으면, 웹상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활동하기 어려운 때가 되었음을 자명하게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날 때마다 또 깊이 공감하는 것은 머리로 알면서도 실제 행동으로 취하는 것이 너무나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면서도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서로 끄덕인다. 그리고 각자 현장에 돌아가 다시 일을 하다보면, 일의 접점에서 다시 그 현실과 만난다. 그렇게 가슴 한 켠에 ‘그거 해야 하는데, 언젠간 해야 하는데-’라는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제로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부채감이 쌓여간다.
나는 지금 그 부채감들과 격렬히 만나고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두려움을 정면으로 대하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더 이상 쌓여만 가는 부채감을 모르는 척 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 않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보다 하면서 고통스러우면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선택했다.
홈.페.이.지.
홈페이지를 만들 생각을 하니까 제일 먼저 그 안에 무엇에 대해 넣지? 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막 끄적여보았다. 먼저, 1) 코치로서 나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 제안 받을 때, 프로필 보내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는데, 만약 홈페이지가 있으면 링크 하나 보내드리며 참고하시라 하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종종해왔다. 그리고 그 코너에서 내 최근 프로필을 담당자, 고객분들께서 직접 다운로드를 편히 하실 수 있으면 좋겠지란 생각도 했다. 아, 요즘엔 영상 시대니까 나를 소개해 주는 영상도 링크로 걸려 있어서 메뉴 들어가면 코치로서 나를 소개 하는 영상도 들어가면 좋겠다!
그 다음은 2) 그런 내가 관심 있는 전문분야와 그걸 담아 진행하는 일들에 대해 소개하는 코너도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안에 뭐가 들어갈진 모르겠지만, 어디서 본 건 많아가지고- 전문성이 막 느껴지는 그래픽에 누가봐도 그 분야에 대해 깊이가 있는 신뢰가는 이미지를 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끝으로 3) 그런 내가 하는 일들에 관심 있는 분들이 신청하고 문의할 수 있는 코너까지 들어가면 좋겠다! 까지
‘나의 홈페이지’ 하고 떠올리자마자, 이렇게 큰 코너(메뉴)들은 정말 금방 뽑아졌다. 그리곤 나의 비지니스 컨설턴트 ‘조르바’님께서, 이 각 메뉴들마다의 상세 페이지에 들어갈 ‘사진’과 글들을 모두 작성해 오는 것을 다음 과제로 주셨다. 코너에 대한 아이디어도 금방 나왔고, 지금 이미 하고 있는 것들, 하고자 하는 것들도 명확하니까 그저 글로 옮기고, 사진자료들을 찾아서 삽입만 하면 될거라며 웃으며 미팅은 끝났다.
문제는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총 메뉴가 3개니까 금방 수르륵 적을 수 있겠지 해서 나는 요 며칠 동안 집중해서 이걸 하리 하고 일정표에 적어뒀었는데, 이게 왠일인가. 한 꼭지의 글도 작성할 수 없었다. 막상 직면하고 나니 코너 하나하나마다 너무나도 핵심적인 질문들이 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먼저, 코치로서 나를 소개하는 메뉴코너. ‘나는 누구지?’ ‘나를 코치로서 소개한다면, 어떤 말로 소개하고 싶지?’, ‘나는 어떤 코치이고자 하지?’,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경력 중 내가 코치로서 대표경력이라고 뽑고 싶은 경력은 무엇이지?’, ‘나는 지금까지 코치로서 어떤 것들을 해 왔지?’, ‘사람들에게 코치로서 나를 뭐라고 기억하게 해 드리고 싶지?’, ‘나는 코치로서 다른 코치들과 다른 지점을 무엇을 가져가고 싶은 것이지?’, ‘지금 그것들이 예비 시장과 고객분들께 매력적일까?’ … 그렇게 나는 하얀 백지 위에서 나는 ‘안녕하세요’ 5글자 적어두고 깜빡이는 커서만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나를 코치로서 소개한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무슨 말로) 소개하고 싶지?’
너무 흥미롭지 않은가? 이 질문 앞에서 난 아무 글도 못 써내려가고 있었다. 이미 활동도 하고 있고, 심지어 강의장 가서 앞에 서서 마이크 잡고 자기 소개를 하면서, 왜 나는 못 써내려가고 있는가. 한 글자도 못 써내려가던 그 나날들에 나는 얼어붙은 나를 그저 마주보며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알아챘다. 어딘가에 활자로 새겨질 내 소개를 적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신중한 것이라는 것을. 거기 적힐 글들이 가볍게 흩어질 것이 아니라, 한 번 적고 나면 (가까운 날에 수정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나를 한 번즘 중간 정의하게 된 것에 가깝다는 것을, 그래- 본능적으로 지금 이 서술이 가진 깊은 의미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본질적인 질문 앞에서 멈춰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코치로서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할까?’, ‘나는 코치로서 뭘 중요하게 생각하지?’, ‘내가 코칭을 통해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걸까?’와 같은 깊고도 깊은 질문 앞에 난 서 있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당신께서 벌써 예상했겠지만, 이러한 ‘한치 앞도 못 나감’은 첫 번째 코너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소개하는 두 번째, 그 프로그램들을 신청하는 페이지가 담길 세 번째. 모든 코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감 있게 상세 페이지를 써 보고 오겠다고 말했던 나는 단 한자도 쓰지 못한 채로, ‘일주일’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이미 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 하고 싶은 것들도 명확하다고 말했던 나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온 몸으로 깨달았다. 홈페이지를 만들면 좋다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료코치님들도 나도 그 동안 착수하지 못했던 이유를 말이다. ‘홈페이지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 진하게 만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홈페이지를 표상, 결과일 뿐, 먼저 거기에 담길 자기 자신에 대한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창작’의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다. 나만 해도 그렇다. 이미 기업에서 프로필 요청하면 보내드리는 코치 프로필도 있고, 누가 마이크 쥐어주고 코치로서 소개해 달라 하면 말하는 메시지도 있다. 누가 나에게 어떤 일 하냐 물으면 답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걸 하얀 페이지 위에 활자로 남긴다는 것은 또 다른 ‘창작’인 것이다. 그리고 그 창작은 ‘홈페이지’라는 채널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만나 정말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는 것의 무게와 의미를 알기에 어려울 거라는 것을 모두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고통이 뒤따르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데, 거뜬히 덥석 해내는 시도는 당연히 쉽지 않았으리.
이걸 깨닫고 나서 나는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래! ‘착수하면 고통스러울 거 뻔히 아니까 착수가 잘 안 됐던 거야.’ 이걸 깨달은 날, 길을 걷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피식 웃었다. 홈페이지 제작은 외주 전문가가 하셔도, 그 안에 담길 내용은 의뢰할 내가 제공해야 하니까. 결국 나는 내 안에 각 메뉴마다 담길 컨텐츠를 위해 나 자신에게 아주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하고, 그 모든 답들을 명료한 활자로 표현해 내는, 홈페이지 제작이란, 말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는 창작’ 행위였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창작엔 창작의 고통이 있기 마련.
그렇게 혼자 피식 웃고 나선, 오히려 이 작업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단 더 굳은 다짐이 섰다. 나에게 2사분면(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스티븐코비-시간관리매트릭스 개념)의 일이었다. 이게 정립되어야 앞으로의 10년을 나아갈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들자, 창작의 ‘고통’이란 자리에, ‘정립’의 ‘시원함’이란 표현이 대체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에 대해서, 누가 봐도 명료하게 알 수 있게 표현, 정립해 내는 시원함의 작업을 난 하고 있구나란 전환이 일어났다.
부채감이 아닌 명료한 가벼움으로
고통이 아니라 시원함으로.
나는 그렇게 나만의 홈페이지에 대한 기획안을 PPT에 적고 또 적고 또 적어가고 있다. 오늘도 길 걸어가며 휴대폰 메모장에, 운전해 가다가 휴대폰 음성메모장에, 노트북으로 일하다가 메모장에. 떠오를 때마다 적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작업은 홈페이지를 만들어 가는 프로젝트긴 한데, 이상하게도 내가 정말 원하는 삶,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가는 여정 같아서 애틋하고,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