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Oct 30. 2023

매튜 패리의 죽음과 미국을 덮친 오피오이드 사태의 교훈

우리에게 시트콤 '프렌즈'의 챈들러 빙으로 더 친숙한 매튜 패리의 죽음 앞에서 미국의 오피오이드 전염병(opioid epidemic)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미국은 지난 20년간 오피오이드 (아편계 진통제, 헤로인, 펜타닐을 두루 아우르는 아편계 마약류)와의 전쟁 중이다. 이게 얼마만큼 심각한 문제냐면, 2021년과 2022년 연달아 한 해 10만 명 이상씩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으며, 그중에서 75퍼센트 이상은 오피오이드과 연관된 죽음이다. 또한, 미국 18-45세 사망원인 1위는 펜타닐 과복용 죽음이다.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배경

1) 퍼듀라는 거대 제약 회사의 탐욕에서 시작 : 이에 대한 수많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드라마가 있는데('죽음의 진통제', 'Heroin(e)', 최근에는 'Painkiller'라는 시리즈로 제작이 되기도 했다), 짧게 말하면, 그들은 1996년, 옥시콘틴이라는 아편계 진통제를 시장에 내보이며, 거짓 광고(다른 아편계 진통제와 달리, 중독에 빠질 확률이 1퍼센트 이하 수준일 정도로 중독성이 낮다)를 포함한 공격적 마케팅을 시작한다. 그들은 영업사원을 전국 각지의 의사들에게 보냈고, 미국에서 가장 통증이 심한 지역들(러스트벨트를 비롯한 전통적으로 노동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곳들)에 더 집중적으로 마케팅 노력을 쏟아붇는다.

퍼듀 제약회사의 만행을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Painkiller> (출처: Netflix)

2) American Pain Society라는 통증 학회에서의 잘못된 의제 설정:  옥시콘틴이 출시된 시점에, 통증 학회 American Pain Society에서 병원에서 환자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필수적인 네 가지의 활력징후(vital sign)인 체온, 혈압, 맥박, 호흡수, 외에 '통증'을 다섯 번째 바이탈 사인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발표한다. 이에 따라 병원들에서는 환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통증을 모니터링하게 되었고,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통증을 줄여주는 것이 치료의 우선순위가 된다. 이는 우연치고는 기막힌 타이밍에 때마침 출시된 옥시콘틴의 처방이 급격하게 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해당 학회는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고, 결국 2019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의사들의 방심: 앞선 1) 2)가 진행되는 환경에서, 의사들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용량의 아편계 진통제를 환자들에게 30일치씩 처방하기 시작했고, 처방 지시를 따르기만 했을 뿐인 환자들은 퍼듀의 광고와는 달리 굉장히 많은 수가 오피오이드에 중독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악랄하게 돈을 번 의사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의사들은 선의를 가지고(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통증을 줄여주려는) 처방을 했을 것이고 실제로 환자를 돕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미국의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은 전형적인 인간에 의한 재해이다.

4) 처방전 진통제에서 불법 마약으로의 이동: 2000년대 초반 오피오이드에 중독된 수많은 환자들을 목격하기 시작한 의료계에서 그제야 문제를 인지하고 약물 처방을 줄이기 시작했지만, 이 시점에서 가장 큰 미국의 문제가 이 문제를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킨다. 바로 마약에의 접근이 너무 쉽다는 것. 더 이상 의사들에게 진통제를 처방받지 못한 환자들, 혹은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 처방전 진통제를 받는 것에 부담을 느낀 환자들은 1/10 가격에 얻을 수 있는 같은 아편계의 불법 마약인 헤로인으로 넘어가게 된다.


5) '죽음의 마약' 펜타닐의 상륙: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좀비 마약'이라고 알려진 펜타닐이 미국에 상륙하기 시작한다. 펜타닐은 처방전이 필요한 아편계 진통제보다 50-100배 더 강력한 합성 아편계 약물로, 극미량으로도 호흡을 멎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적으로는 몸에 붙이는 패치 형태로 사용한다. 펜타닐이 널리 퍼지면서, 오피오이드 과복용 사망자수는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좀비 걸음'으로 유명한 켄싱턴의 거리에는 Tranq라는 신종 약물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출처: Fox Business)

6) 현재 근황: 최근에는 더 심각한 것이, 펜타닐도 모자라 거기에 각종 타 마약을 합성한 마약이 거래가 되고 있다. 한국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유명한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의 영상에 보이는 약물 중독자들은, 많은 경우 자일라진(동물 마취제)이 함유된 펜타닐을 사용한 것이라 한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펜타닐이 한국에서 '좀비 마약'이라고 불리게 된 원인은 바로 이 펜타닐과 자일라진이 합쳐진 "Tranq"라 불리는 약물로 인한 걸음인 "Tranq walk" 때문이며, 펜타닐만으로 그런 걸음을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최근 펜타닐 과복용으로 사망한 자들의 혈액에서 자일라진이 함께 검출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배워야 할 점

1) 절망감이 기저에 깔린 사회에서 불법 마약, 혹은 처방에 의한 마약류가 퍼지는 것은 '이미 불이 난 집에 장작을 지속적으로 던져 넣는 것', 혹은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다. 실제로 미국 아팔라키아 산맥일대는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의 가장 큰 피해지역이며, 오피오이드는 지역 경제의 붕괴와 맞물려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들불처럼 퍼져갔고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갔다.


나는 한국의 10-20대의 자살률 증가와 마약 사용 증가 또한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생각하며, 이대로 방치할 경우 우리도 많은 젊은이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생각한다. 가령, 현재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펜타닐 패치를 이곳저곳에서 처방받아 이를 흡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저에 절망감과 무망감이 널리 퍼진 한국 청소년, 청년들에게 펜타닐은 독약이 될 것이다.


2) 의사들의 처방 방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미국의 실패에서 배울 수 있듯이, 절대다수의 의사들은 선의로 환자들에게 처방을 하지만, 마약 청정국인 나라의 처방 방식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처방 방식은 달라야 한다. 즉, 처방하는 약물이 다른 향정신성 약물, 혹은 마약과 함께 복용될 때의 잠재적 효과에 대해서도 고려를 하면서 처방을 해야 한다. 펜타닐을 비롯한 아편계 진통제가 벤조디아제핀계 혹은 졸피뎀과 같은 약물과 함께 복용될 경우에 과다복용으로 인한 호흡정지에 이를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된다.


3) 미국에서처럼, 환자의 통제 약물(한국의 향정신성 약물과 유사한 약물들) 처방 기록을 검색할 수 있는 온라인 프로그램인 PDMP(Prescription Drug Monitoring Program) 사용을 한국에서도 하루빨리 활성화시켜야 한다. 한국에도 이미 유사한 프로그램과 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용률이 0.04%에 이를 정도로 미미하다. 미국에서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을 막기 위해 개발된 이 프로그램만 잘 사용해도 닥터 쇼핑을 통한 처방전 약물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펜타닐이 '좀비 마약'이라 불리고 있지만(앞서 말했듯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펜타닐은 '죽음의 마약'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하지만 굳이 펜타닐까지 가지 않더라도, 처방전이 필요한 아편계 진통제, 혹은 다른 향정신성 약물 중독으로도 사람의 인생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실제로, 매튜 패리가 중독된 약은 제트스키 부상 후, 의사가 합법적으로 처방한 바이코딘(타이레놀과 아편계 진통제가 결합된 약물)이었다. 물론 매튜 패리는 오피오이드에 중독되기 전에 이미 알코올에 중독이 되어있었지만, 오피오이드에 중독되면서 술은 오히려 마시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이 이미 있는 사람이 더 마약에 중독되기 쉽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들에 의해 밝혀져있으며, 알코올에 굉장히 관대한 우리의 문화에서 이 또한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메튜 패리는 생전에 회고록을 통해 중독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의 중독을 고백했다 (출처: The West Australian)

패리는 인터뷰에서 십 년간 동료 배우들과 동고동락했던 '프렌즈' 종방 당시에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속으로 죽어있었다(I was dead inside)'는 것.


부디 그의 죽음이 단순히 슬픔을 넘어, 그가 자서전을 통해 주고 싶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줄 수 있었으면 한다. 한국에서의 마약 중독이라는 쓰나미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의 잠금장치들이 중요하며, 그중 여러 개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을 경우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의료계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매튜 페리의 죽음으로 실감하게 된 미국사회의 실패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 생각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약성을 보듬어주는 사회를 꿈꾸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