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본인이 패션 디자이너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원래 의대를 다니던 의학도였던 데다, 큰 뜻 없이 패션 업계에 종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934년 이탈리아 북부의 한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가족들의 권유로 인해 밀라노 의대에 진학했죠. 하지만 2년 간 공부해보니 의학에는 흥미가 없었던 거예요.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군입대가 의무였어서, 그는 의료보조원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진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그는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제대 직후인 1957년 우연한 계기로 밀라노의 라 리나센테(La Rinascente) 백화점의 쇼윈도 디스플레이 일을 하게 됐죠. 사실 흥미도 있었지만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하게 된 일이었어요.
그렇게 아르마니는 1970년까지 니노 세루티와 함께 일했고, 1970년부터는 프리랜서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했어요. 로에베, 제냐 등 명품 브랜드를 디자인하면서 역량을 키웠죠. 그리고 마침내 1975년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했고요.
몸에 편안하면서도 우아하면서 세련된 디자인의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유럽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어요. 그의 디자인은 '중성적(androgynous)'이기에 더 특별했는데요. 딱딱했던 남성복에는 여성복의 부드러움을 도입했고, 우아함만을 고수하던 여성복에는 남성복의 힘을 부여했던 겁니다.
특히 그가 만든 여성복은 파워 슈트(power suit)라는 의상의 한 종류를 탄생시킬 정도였어요. 1980년대에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의 위상이 올라가던 시기였기에, 기존 옷들이 강조하던 여성적 굴곡이 아닌 실용성을 강조하면서도 우아해 보이는 아르마니 옷이 시대와 딱 부합했던 거죠.
조르지오 아르마니에서는 2000년 로레알 그룹과 손을 잡고 뷰티 라인을 론칭했습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는 작년에 국내에서 전 면세점 통틀어 매출 22위를 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그 비결 중 하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패션의 핵심 정체성이 화장품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해요. 즉, 자연스러우면서 편안하고 흐르는 듯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옷처럼, 메이크업 제품 역시 부드럽고 가볍고 자연스러운 느낌인 거죠.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래스팅 실크 UV 파운데이션'도 마찬가지예요. 바를 땐 촉촉한데 마르고 나면 보송하고 부드러우면서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어 마치 가벼운 실크를 피부 위에 얹은 듯한 감촉이거든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옷을 얼굴에 바른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는 기대를 완벽히 채워주는 제품이랄까요.
그저 느낌만은 아니에요. 로레알 그룹에서 조르지오 아르마니만을 위해 '마이크로-필(Micro-Fill)™'이라는 특허 기술을 개발했는데, 그 덕에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제품들은 입자가 극도로 미세하게 정제되어 있어요. 그 고운 입자들이 자연스럽고 은은한 광을 내고, 아무리 덧발라도 밀리지 않게 해 주는 거죠.
이렇듯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 브랜드는 패션과의 밀접한 관계를 토대로 전개되고 있어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루미너스 실크 라인은 실크에서, 마에스트로 라인은 벨벳에서, 페이스 패브릭은 시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요. 신제품을 개발할 때에도 아르마니 패션쇼에서 메이크업을 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 상품들 위주로 개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팔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일하고 있어요. 할 일이 없어 주말엔 불행하다고 하니 그 열정을 짐작할 만하죠. 아르마니 브랜드들의 모든 프로젝트는 아르마니의 최종 결정 없이는 진행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아르마니 브랜드들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모두 일관된 느낌을 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참, 아르마니는 커리어에서 가장 큰 실패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자신의 사랑하는 파트너를 죽음으로부터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답했는데요. 사실 아르마니가 독립된 회사를 차리게 된 건 그의 연인이었던 세르제오 갈레오티(Sergio Galeotti)의 덕이 컸어요.
건축학도였던 그는 아르마니의 실력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있었기에,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하면서까지 아르마니가 독립하는 걸 도왔죠. 첫 회사 설립부터 이른 나이로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던 1985년까지, 그는 아르마니 곁에서 사업적인 부분을 담당하며 든든한 조력자로 함께해 왔어요.
이것 외에는 아르마니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전 아르마니의 이러한 신비적인 면이 아르마니 향수 라인 아르마니 프리베(Armani Prive)와 묘하게 비슷하단 느낌이 들곤 해요.
아르마니 프리베는 향수의 오뜨 꾸뛰르, 즉 하이엔드 라인인데요. 아르마니는 이 라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죠. “나는 아르마니 프리베가 지극히 평범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르마니 프리베는 그 본연의 독특한 향을 통해 나의 옷을 입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깊은 호감과 애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믿는다. 타인과 취향이 다른 차별화된 이들에게 프리베는 귀중한 선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아르마니의 유년 시절 경험, 집무실에서 쓰던 독특한 향 등 아르마니의 일상과 닿아 있기도 하고, 향조 역시 다른 아르마니 브랜드들처럼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세련되고 독특해요. 꼭 조르지오 아르마니 같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