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서 오래 일한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연예인이 오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인성'이라고요. 톡톡 튀는 스타성이 중요할 것만 같은 연예계에서 좋은 성격이 중요하다는 건 다소 의외였습니다.
사실 사업이라는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인 기업인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역시 심한 막말로 유명하죠. 그들은 직원에게 '넌 왜 인생을 낭비하냐'는 류의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해요. 이런 사례들을 보면, 일견 인성과 성공은 큰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화장품 브랜드 바비 브라운의 창업주 바비 브라운(Bobbi Brown)은 이러한 편견 아닌 편견을 부수는 사람입니다. 훌륭한 인성은 성공에 보탬이 된다는 걸 온 인생으로 증명해내거든요.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창업주 바비 브라운
바비 브라운의 삶의 태도는 가히 이상적이라고 할만합니다. 낙담할만한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그녀는 타개책을 찾아내죠.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요.
1957년에 태어났던 바비 브라운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미국의 1970년대는 깡마르고 파란 눈에 금발을 한 미녀들이 미의 정석으로 여겨지던 시기였습니다. 작고 짙은 색의 눈에 갈색 머리, 큰 코와 150cm 남짓의 짤막한 키의 바비 브라운과는 완전히 달랐죠.
외모에 대해 자연히 자신이 없을 수밖에 없었는데, 기특하게도 그녀는 위축되는 대신 그녀만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찾았습니다. 영화 러브 스토리(Love Story)의 알리 맥그로(Ali MacGraw)가 그 주인공이었죠. 바비 브라운처럼 짙은 머리카락에 자연스러운 얼굴을 가졌던 그녀가 바비 브라운의 롤모델이 된 겁니다. 바비 브라운은 맥그로 스타일로 메이크업을 하고 다녔다고 해요.
그녀는 자라서 이 경험을 살려 에머슨 컬리지(Emerson College)에 입학해 무대 메이크업을 전공했죠. 물론 이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어요. 처음에 그녀와 맞는 과를 못 찾아서 대학을 두 곳이나 다니다 중퇴한 뒤에 에머슨에 입학했고, 졸업한 뒤에도 직업을 찾기 어려워 1년간 웨이트리스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어요.
메이크업 분야로의 진출이 순탄치 않자, 그녀는 이른바 '맨땅에 헤딩'을 시도했습니다. 전화번호부에 있는 번호를 샅샅이 뒤져서, 메이크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인 것처럼 보이면 무작정 전화해서 일자리를 찾은 거죠.
처음엔 무보수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차 보수를 받는 경우가 늘어났고, 결국 바비 브라운은 7년 만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상 자리에까지 올랐어요. 미국 보그 매거진 표지를 담당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된 겁니다. 모든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꿈꾸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자리를 말이죠.
그녀의 성공적인 커리어 뒤에는 출중한 실력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간성도 자리했다고 해요. 현장에서 메이크업을 하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했다고 하죠. 그녀는 돈을 벌 기회는 사람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화장품 브랜드 바비 브라운의 시작 역시, 한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 덕에 이뤄졌다고 해요. 우연히 한 약국에서 화학자를 만나, 시중에 없지만 그녀가 늘 만들어보고 싶었던 립스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고, 그 화학자와 함께 만들게 된 립스틱이 바로 바비 브라운의 첫 상품이 되었거든요.
자연스럽고 이지적인 브랜드
개인적으로 뷰티 브랜드란, 추상적이고 모호한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손에 잡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무언가로 구현해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에는 수많은 결이 있는데, 그중에 자신들이 가치롭다고 느끼는 한 아름다움을 발견해 그걸 브랜드로 눈에 보이게 구체화하는 것이죠.
브랜드 바비 브라운에서 손에 잡히게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바로 '자연스러움'이에요. 즉,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이죠. 물론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수많은 해석이 존재할 텐데, 바비 브라운의 자연스러움은 '나의' 최고의 모습을 드러내는 거였어요.
바비 브라운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한창 활동하던 1980년대에는 이러한 니즈가 특히 절정에 달했던 시절이었죠. 하얀 피부, 빨간 입술, 컨투어링이 소위 대세를 이루던 시절이라, 메이크업이란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내 이목구비를 숨기고 감추는 것을 의미했으니까요.
립스틱 역시 '이것이 립스틱이다!'라고 소리 지르는 듯한 강렬한 컬러가 대세였는데, 바비 브라운은 그게 너무 싫었다고 해요. 그래서 1988년 우연히 방문했던 한 약국(하필 브랜드 키엘의 약국이었다고 하죠)에서 만난 화학자에게 '크리미하면서도 드라이하지 않고, 지속력이 좋고, 아무 향이 없으며, 무엇보다 "진짜 내 입술 색깔"과 비슷한 립스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그 화학자는 내가 만들어주겠다고 흔쾌히 답했고, 바비 브라운은 펜슬 타입 아이라이너와 블러시를 섞어서 색깔을 만들어서 보냈고요. 그렇게 탄생한 자연스러운 입술 색상의 브라운 컬러 베이스의 립스틱 10개가 바로 바비 브라운의 첫 라인, 바비 브라운 에센셜스(Bobbi Brown Essentials)가 되었습니다.
바비 브라운이 느꼈던 인위적인 화장품에 대한 불편함은 다른 여성들도 느끼고 있었는데, 딱히 대안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바비 브라운이 구체적인, 멋지고 세련된 대안을 들고 나오자 사람들이 열광했던 거고요.
미국 글래머(Glamour) 매거진에 다니던 친구가 브랜드 바비 브라운에 대해 3줄짜리 기사를 내자 오더가 밀려 들어왔고, 뉴욕 럭셔리 백화점 버그도프 굿만(Bergdorf Goodman)에 입점한 지 하루 만에 한 달 판매량으로 예상했던 100개가 당일 동나기도 했으니까요.
바비 브라운 제품의 품질은 만족스러웠는데, 그녀의 노하우가 담긴 것은 물론 수없는 테스트 절차를 거쳤기 때문이었어요. 공원에 가서 낯선 사람들에게 무작정 다가가 바비 브라운 제품을 테스트해보게 했거든요. 최대한 다양한 국적과 인종 사람들에게 말이죠.
마케팅도 주효했어요. 바비 브라운은 평상시 자연스럽고 세련된 메이크업을 하는 20대 후반 이상의 커리어 우먼을 타겟팅했는데, 프로모션 역시 연예인을 활용해서 화려하게 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에게 롤모델로 여겨지는 커리어 우먼들과 함께 하는 방식으로 했어요.
일례로 바비 브라운은 힐러리 여사가 사랑하는 브랜드라는 점을 1991년 론칭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어필했다고 해요. 그러면서도 가격은 고가가 아닌 중상 정도라서 부담 없이 살 수 있었고요.
시중에 없던 고급스럽고 이지적이고 자연스러운 브랜드, 그런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가격. 사람들은 바비 브라운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죠. 주요 백화점에서 판매량 1위 브랜드가 될 만큼 바비 브라운은 승승장구했습니다. 바비 브라운의 성공사례를 보고 브랜드 로라 메르시에가 태어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립스틱으로 시작된 바비 브라운은 점차 브랜드 철학에 맞는 제품들로 라인을 늘려갔는데, 그중 대표적인 건 파운데이션입니다. 바비 브라운은 수많은 여성들을 메이크업하면서 사람들의 피부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동양인이든 모두 노란 계열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해요. 그래서 바비 브라운의 파운데이션은 화사한 핑크빛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옐로우 베이스죠.
우리나라에서의 바비 브라운, 그리고 창업주의 현재
바비 브라운은 우리나라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바로 '물광 파운데이션' 덕분이었습니다. 1980년대 미의 기준이 하나였던 것처럼, 바비 브라운이 전까지 우리나라 피부 표현 방식도 한 가지였습니다. 하얗고 밝게 표현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1999년 바비 브라운이 들어오면서, 피부 표현 방식에 화사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물기를 머금은 듯한 투명하고 자연스럽게 피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된 겁니다.
그렇게 물광이라는 키워드는 우리나라 뷰티업계를 풍미한 동시에, 다양한 피부 표현 방식이 새롭게 태어나는 발판이 되었어요. 그 덕에 현재 우리나라 여성들은 화사함과 물광 외에도, 보송보송함, 윤기 있는 피부 등 여러 가지 피부 표현 방식을 선택해서 메이크업할 수 있게 되었죠.
바비 브라운은 론칭한 지 4년 만인 1995년 에스티로더 그룹에 인수되었어요. 인수 금액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지만 700억 원 이상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억만장자가 된 이후에도 바비 브라운은 예전처럼, 사치스럽지 않은 어쩌면 평범해 보이는 생활을 이어 나갔다고 해요.
애초에 에스티로더 그룹에 매각 결정을 했던 배경에는 당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둘째를 좀 더 잘 케어 하고 싶었던 것도 이유도 있었다고 하니, 그녀가 얼마나 가정을 중시하는지 짐작이 가죠.
인수 후에도 바비 브라운은 오랫동안 그녀가 만든 브랜드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했는데, 19~20년 차 때부터 브랜드를 본인이 컨트롤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2016년에 22년간의 바비 브라운에서의 생활을 끝내게 됐어요.
현재 그녀는 여러 종류의 사업을 하고 있어요. 이너뷰티 브랜드 에볼루션 _18(Evolution_18)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있고, 각종 미디어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죠. 남편과 함께 부띠끄 호텔 '더 조지(The George)'도 운영하고 있고요.
그녀는 더 이상 과거처럼 몇조 원짜리 기업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하지만, 그녀가 새로 하는 사업들은 다 꽤나 성공적이에요. 그녀의 이너뷰티 브랜드 에볼루션 18은 현재 월마트 3,000여 곳에 입점해 있고, 그녀가 쓴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죠.
브랜드 바비 브라운의 미래뿐만 아니라, 창업주 바비 브라운의 미래까지 기대되는 이유예요. 앞으로 두 바비 브라운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새로운 영감과 가치를 줄지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