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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Sep 06. 2021

DAY 4 : 제주 코워킹스페이스에서의 소소한 하루

바다를 보며 일하고 책 읽는 제주에서의 하루

#1.


오늘은 숙소에서 거의 하루 종일 지냈다. 갑갑하지 않았냐고? 여기에선 답답할 일이 없다.


오늘은 내가 제주에서 머물고 있는 공간에 대해 소개를 해볼까 한다. 이 곳 덕에 내가 제주행을 결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2.


재택근무 6년 차인 나는 위워크(WeWork)로 대변되는 코워킹스페이스를 즐겨 찾는다. 예전부터 성수동에 있는 카우앤독을 자주 다녔고, 발리에서는 비록 일은 안 했지만 디지털 노매드의 성지라는 후붓(Hubud)에도 들러봤었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세계 각지의 공유오피스에서 일을 하며 여행하며 살기'였고 내가 제주에서 지내고 있는 이 공간은 이른바 드림컴트루였다.


#3.


이름부터 재치 있다. 오피스(O-PEACE) 제주. 오피스(Office)와 오!평화(O-Peace)의 말장난이 귀엽다. 1-2층은 코워킹스페이스, 3-4층은 숙소로 구성되어 있는 이 건물은 내 로망을 실현시키기에 부족함 없는 곳이다.


오피스제주에서는 이렇게 바다가 보인다. 이 사진을 보고 반했었다. (출처: 오피스제주)


'숙소에서 자고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서 바다를 보면서 일을 한다. 그러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소파에 앉아 책을 본다. 점심엔 근처 바닷가 마을로 내려가 식사를 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바다를 보면서 차 한 잔을 하면서 업무를 다시 시작한다.' 오피스제주를 방문하자마자 내가 꿈꿨던 제주에서의 일상이 선명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듯했다.


제주에는 코워킹스페이스가 네다섯 곳 있는데 그중 바다 뷰는 오피스제주가 유일하다. 제주 하면 바다 아닐까!


#4.


오피스제주에서 며칠간 일해보며 느낀 가장 큰 장점은 여기는 군더더기가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필요한 것만 있고 불필요한 건 없다. 이 군더더기 없음이 나를 진짜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있는 것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대형 모니터였다. 난 평소에 집 서재에서 노트북과 모니터를 연결해 쓰는데, 여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모니터가 없으면 업무 하기가 불편했다. 그런데 여기는 모니터가 있는 거다! 집에서와 똑같은 쾌적한 업무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니. 내가 방문했던 어떤 공유사무실에도 없었던 건데 감동이었다.


오피스제주의 모니터들.  (출처: 오피스제주)


데스크 램프, 이른바 스탠드도 마찬가지였다. 책상 조명 없이 책을 오래 보면 어두워서 눈이 아픈데, 여기는 스탠드가 있는 책상이 많아서 오랫동안 집중해서 책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의자도 듀오백 같은 거라 오래 앉아 있어도 편했다.


오피스제주의 2층. (출처: 오피스제주)


책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업무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과 영감을 주는 책, 제주에 관한 책 이렇게 크게 세 종류의 책이 있는 느낌이었다. 보통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공간에 있는 책은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한다는 컨셉의 힐링 서적, 기득권을 비판하는 진보적인 서적이 많은데 여기는 일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 많았다.


난 여기서 알랭 드 보통의 '인생 직업'이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일하면서 어떤 즐거움을 느끼는지를 깨달았고, '좋은 문서 작성 방법'이라는 책을 읽으며 자료로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배웠다.


없는 것 중에 대표적인 건 다채로운 식음료들. 간혹 카페를 겸업하는 공유사무실에는 카페가 있고 직원이 다양한 메뉴를 만들어준다.


그런데 여기는 커피와 토스트 정도로 선택권이 많지 않다. 초콜릿이나 과자, 과일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긴 하지만 이 아이들은 주인공보다는 조연의 느낌이 강하다.


바다 보면서 먹는 커피와 빵! 천국 같았다. (출처: 나)


이렇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의 종류를 한정시켜 놓았던 게 난 좋았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일상을 좀 더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달까. 그렇게 아낀 에너지를 업무와 독서에 쏟을 수 있었다.


#5.


오피스제주에서 며칠 동안 지내면서 깨달은 건 나는 햇살 가득한 공간과 책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독일 뮌헨 여행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었다. 선진국의 전형이구나 싶을 만큼의 깨끗함과 쾌적함에는 감탄했었지만, 뭐든 무언가 투박했다. 멋 낼 줄 모르고 흥이라는 게 없는 모범생의 도시 같았달까.


하지만 뮌헨에서 내가 가슴 깊이 감동했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Pinakothek der Moderne) 미술관이었다. 그림도 좋았지만 그것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건물 안으로 들어온 햇빛이었다. 특히 계단에 꽃처럼 수놓아진 햇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창과 유리로 미술관 곳곳에 햇빛을 한가득 들여보내서 마치 햇빛이 인테리어의 일부처럼 느껴졌는데, 건물 안에 있으면서도 자연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 빛이 건물 안으로 유려하게 떨어진다. (출처: 나)


책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 어릴 때부터 여행을 가면 꼭 서점에 들러서 그 나라 사람들의 독서취향을 살펴보고 책 한두 권을 사서 숙소에서 카페에서 읽곤 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내가 여행지에서 누리는 최고의 호사였다.


햇살 가득한 오피스제주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은 오늘. 나만의 맞춤형 행복을 만끽한 것만 같은 하루였다.


나중에 놀러왔던 친구가 찍어준 오피스제주에서의 컨셉샷. 실제로 자주 이렇게 책을 읽었다. (출처: 나)


#6.


예전의 난 큰 이벤트를 중심으로 인생을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수능을 비롯한 각종 시험, 취직, 큰 금액이 걸린 프로젝트성 업무 등을 위해 준비하고 달리는 게 평범한 하루의 지당한 역할이라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그것보다는 매일의 소소한 일상이 더 소중하다. 오늘은 30분 일찍 산책하면서 맞는 바람이 더 시원했고, 오피스제주에 있는 발뮤다 토스트기의 굽기 강도를 3에서 2로 줄였더니 빵이 보다 말랑말랑해서 내 입맛에 맞았다. 점심식사 후에 마셨던 커피는 평소보다 유독 더 맛있었다. 효율화를 위해 업무를 살짝 변경해본 게 뿌듯했고, 늦은 밤 남편과의 통화는 나를 어제보다 더 많이 웃게 했다.


#7.


여느 때처럼 잠들기 전에 머리를 빗는데 머릿결이 새삼 부드럽다는 걸 깨달았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 머리카락은 엉키고 부스스한 게 당연한 줄 알았다. 펌이 풀어질까 걱정해 빗질을 자주 안 한 탓에 머리 끝부분이 조금만 길어지면 엉키기를 반복했었다.


작년부터 새로 다닌 미용실에서 내 머리는 어차피 펌이 금방 풀리는 직모라 펌보다는 염색과 커트로 볼륨감을 주는 게 낫다고 했었고 난 그 이후부터 매일 밤 씻고 나서 머리를 빗기 시작했었다. 빗질은 열댓 번 정도, 매일 1분도 안 걸렸다.


그 1분 덕에 평생 푸석했던 내 머릿결이 부드러워졌다. 지금 보내는 제주에서의 하루하루는 내 어떤 부분을 더 부드럽고 빛나게 만들고 있을지 궁금하다.



- 2021년 4월 29일, 제주살이 4일차 -


 글은 면세전문지 티알앤디에프(TR&DF)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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