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육아 돌입-나와의 타협이 필요한 순간들 (이유식편)
아이가 돌이 지나자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 되었다.
지금까지 육아는 육아도 아니었던 것처럼, 갑자기 선택지가 쏟아져내렸다.
- 아이주도 이유식을 할 것인가?
- 아이 밥은 사먹일 것인가? 해 먹일것인가?
- 어린이집을 보낼 것인가? 가정보육을 할 것인가?
- 겨울학기 문화센터는 몇개나 들을 것인가? 음악 활동? 신체 활동? 오감 자극?
- 전집을 들일 것인가? (교육을 시작할 것인가)
이 모든 고민의 시작은, 자연스럽게 찾아온 아이의 성장 발달에서도 기인했고,
또 지지난 주말에 다녀온 [육아교육전]의 영향도 한몫했다.
이유식 완료기에 접어들면서,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는 방법에 관한 고민이 생겼다.
'저희애는 네살이 되었는데도 제가 떠먹여요. 부끄럽지만 아이주도 이유식을 못하겠어서 넘겼더니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제가 먹이지 않으면 먹지 않아서요. 그래도 안먹는것보단 낫지않나요?'
'저희 아이는 10개월부터 자기주도 이유식을 했어요. 많이 흘렸지만 포기하고 내버려두니 금세 적응하더라구요. 16개월인 지금은 스스로 아주 잘 먹습니다. (주변이 더러워지는건 여전하지만요^^;)
맘까페에서 읽었던 글들이다. 물론 후자가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역시도 언젠가는 할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온몸에 음식물을 잔뜩 묻힌 아이들의 밥상 사진을 보면서 미룰만큼 미루고 싶단 생각을 한건 사실이다.
그런데, 돌을 기점으로 떠먹여주는 이유식을 아주 잘 받아먹던 아이가 죽 형태의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7개월간 대부분의 이유식을 만들어서 먹이던 나는 충격에 빠졌다. 다채로운 질감의 메뉴를 선보여도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아이. 내 손에 들린 식기를 빼앗아 본인이 쥐려 하길래 아이용 수저와 포크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랬더니 스스로 먹는 척은 하지만 성공률은 극히 낮아 영 진도를 뺄 수가 없었고 15분이던 식사 시간이 40분으로 늘어났다. 육아서적에는 20분 이상 먹이지 말라 하지만 어디 그게 그렇게 쉽나. 아이가 스스로 먹는걸 기다려주기도 하다가 늘어나는 식사시간 + 성대로 차지않는 배 때문이었는지 금세 싫증을 내고 짜증을 내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그렇게 하루 세끼의 음식을 먹여왔다. 아이주도 이유식을 하면서 횟집에서 깔아주는 투명한 테이블 비닐을 대거 구매한다는 맘까페의 누군가의 댓글에 웃었었는데, 일주정도 밥을 먹이고, 치우는데 족히 한시간은 걸린다는 것을 체험한 후로 바로 구매했다. 횟집 비닐을 바닥에 모두 펼쳐놓고 식탁에서 밥을 먹인 후에야 툭툭 떨어지는 밥알, 반찬들, 우유, 물, 과일 처리가 두렵지 않아졌다. 이런 윤택한 방법을 발견한 천재같은 누군가가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얼마전 나와 비슷한 개월수의 아이를 키우는 M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근황을 나누다가, 이유식 먹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M 역시 아이주도 이유식을 시도했으나, 난장판으로 변하는 모습에 지쳐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또 떠먹여주는 것을 그대로 잘 받아먹는다고. 스스로 시도를 하지 않는다 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했다. 그랬더니 모두가 아이주도 이유식을 하는건 아니었다. 그 시기를 건너뛰고도 인지능력이 자란 아이들이 언젠간 도구를 쥐고 먹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말은 아이주도 이유식을 하기 두려운 엄마들에겐 한줄기 빛처럼 느껴질만하지만, 음식만 보면 손을 먼저 뻗는 우리 아이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이주도 이유식을 해야 주류일까?'라는 질문엔 뻔하지만 '애마다 다르다' 정도가 맞는 대답이지 않을까 싶다.
완료기 이유식 + 유아식을 섞어서 먹이면서 아이가 다시 잘먹기 시작하였고, 달라진 방식에도 어느정도 적응하는듯 보였다. 그러자 또 다른 난관이 펼쳐지는데, 세끼 모두 밥과 반찬이 필요한 아이의 식단 만들기에 과부하가 걸려버렸다. 매일 저녁 새벽배송으로 재료를 구매하고, 아침부터 끼니마다 반찬을 만들고 먹이고 설거지하는 과정은 돈을 받고하는 직업이라 해도 버거울 정도로 체력에 부쳤다.
후기까지의 이유식 재료들은 찌고 다지고 섞여 먹으면 되어서 비교적 간편했는데 유아식은 어른의 반찬보단 간은 밋밋하고, 알갱이는 작아야 하면서도 이유식과는 확실히 다른 식감이어야 하고, 어른밥에 가까워야하는 까다로움이 있었다. 아이 음식은 내가 꼭 해 먹여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었다. 가끔, 그렇게 우리 엄마도 날 키웠을텐데, 지금의 나는 왜 맨날 배달음식만 먹는 것인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다 아이가 낮잠을 건너 뛴 어느날, 반찬이 똑 떨어졌고 나는 열심히 감자를 깎고 있었는데, 내 급한 맘도 모르고 아이가 놀아달라고 다리를 붙잡고 투정 부리다 엉엉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바쁜 손과 여유없는 마음은 제 새끼도 예뻐보이지 않는 마법을 부리는데, 그 때 이 작은 아이가 그렇게 애석하고 미워보일 수가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이에게 '아 진짜 너 밥주려고 하잖아! 왜그러는거니?!' 말을 했을 때, 말을 하지 못해 대답이 없는 아이 덕분에 내 말소리가 그대로 내 귀로 들렸고,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 아차 싶었다.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보다, 웃어주고 함께 놀아주고, 엄마의 따뜻한 손길 하나가 아이에겐 더 필요한게 아닐까 하는 판단이 '아기 음식 직접 만들기 고집'의 벽을 무너뜨렸다.
해서, 그날로 바로 문센에서 주변 엄마들이 괜찮다고 추천해준 동네 친환경 수제 이유식 가게에서 반찬을 배달 시켜봤다.
이것이 아이를 키우며 내 스스로 만든 강박과 타협한 첫번째 일이었다.
막상 만들어 먹이다가 사서 먹이니 아이가 어떤 질감을 좋아하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 좋았고 (내가 만든걸먹일 때는, 내가 공들인 노력이 자꾸 생각나서 아이의 취향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손쉽게 사용하질 못할 식재료를 활용한 식단으로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또 다른 이점이 직접 만들어 먹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죄책감을 아주 가뿐하게 상쇄시켰다.
그렇지만 또 저 아이 반찬 사서 먹여요! 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겠는 이 이상한 심리는 뭐지.
해먹이는 것이 모성애가 강한 엄마라는 이미지가 있고, 그 모습이 곧 올바른 어머니- 주류라는 느낌이 있지만, 난 비주류를 택했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끼니시간이 두렵지 않아졌고, 그래서 식사시간 아이의 몸부림(?)에도 비교적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선택은 옳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삼시세끼를 해먹이는 엄마들을 존경한다.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