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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Apr 18. 2023

어느 날, 알래스카에서 노래가 나를 찾아왔다.

제2화 짬뽕 한 그릇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인해 발생한 죽음으로부터의 용서였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얼어붙은 땅에서 나의 삶이 해석되었다.


시니어 아파트에 거주하던 노인들은 대피소에 모였다. 동양에서 온 검은 머리 여자를 불구경하듯 바라본다.

옆방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한국 아이들 음악을 가르치러 왔다나 봐”  


일주일에 두 번 한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음악 수업을 했다. 알래스카는  춥고 겨울에는 햇빛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학생들은 무기력했다. 마치 한국에서 나의 얼굴 같았다.


알래스카를 떠나오기 전 대학에서 가수의 꿈을 꾸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 학생이 기말고사에 나오지 않았다. 중간고사도 결석했던 학생이었다. 그 학생에게 F를 줬다. 며칠 후 학과장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F처리한 학생이 학교 측에 항의를 했다며 성적 정정 요청을 받았다.


나는 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에게 점수를 줄 수 없었다. 불만을 품은 학생의 항의에 학과장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학생 한 명을 입금 계좌로 보는 건가?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다른 교수들은 적당한 선에서 모르쇠로 일관했을까? 불신감으로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알래스카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시간이 더해질수록  아이들은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 “시애틀 대학에 입학했는데 친구들과 문제가 생겼어요, 휴학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사람 만나기 싫어서 에만 있었어요” k가 말했다.

“그러면 음악 수업은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나는 물었다. “엄마가 선생님 팬이에요”  한국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나의 팬을 동토의 땅 알래스카에서 만났다.


아이들과 만남의 시간이 더해지고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우리는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한 곡을 끝내는 토요일 우리는 회식을 갖기로 했다. 메뉴는 대동단결했다.


 “짬뽕이요!” 아이들의 샤우팅은 내가 수업 중에 들은 소리 중 가장 완벽한 공기 반, 소리 반이었다.

“그래, 짬뽕 그거 얼마나 하겠어?”


수업을 끝내고 식당에 도착하니 연습에 오지 않았던 아이들까지 식당에 앉아있다. 알바로 보이는 흑형은 웰컴으로 우리를 맞으며 테이블 위에 메뉴판을 올렸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메뉴판을 보았다. 짬뽕 한 그릇에 25불! 실화냐? 아이들은 나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일인 일 짬뽕과 요리 몇 개를 더 시켰다. 몇 분 후 테이블에 주문한 음식이 놓였다. 음식의 맛을 보기도 전에 아이들은 웃었다. 웃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웃었다.


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사람이라 했던가? 영혼의 피난처라 불리는 알래스카에서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갔을 때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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