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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Apr 28. 2023

노래가 위로 in 알래스카

제6화 알래스카에서 노래가 찾아왔다


숲 속, 누군가 하얀 물감을 뿌렸다.

샛길로 사람의 발자국이 나 있지 않은 침묵의 호수가

잠들어 있다. 공연을 끝내고 집 근처에서 내려걸었다. 발가락이 동상에 걸릴 것 같다.


“다음 주 토요일 기억하고 있지?”

관리 아저씨가 내게 다가오며 말을 건다.


“저 한국으로 돌아가요, 비행기 날짜가 언제인지 몰라서 아저씨 집에 못 갈 것 같아요. 초대해 주셨는데 죄송해요”  


가방에서 내 음반 하나를 꺼내 아저씨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아니 왜? 아내가 한국 가수 본다고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저씨는 눈물을 숨겨주듯 나를 안았다.


방에 도착해 아이들이 준 선물을 열어보니 털모자, 수면양말, 바디 로션 그리고 라면과 초콜릿이 담겨있다.

 아이들의 손 글씨가 담긴 롤링페이퍼를 읽다가 책상 위에서 잠이 들었다.


 “똑똑똑”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이 밤에 누구지?”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방문을 여니 학교 관계자다.  

“빨리 공항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는 내 물건을 묻지도 않고 캐리어에 넣었다. 그리고는 내 팔을 끌어 승용차에 태웠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학교 관계자는 죄송하다며 말을 이었다.


“항공사 직원에게 배포되는 프리 티켓이 노쇼 자리가 나야 탑승이 가능한데 지금 노쇼가 났대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받았다. 학교 관계자는 나를 공항에 내려놓고 죄송하다 말하곤 사라졌다.

이 밤 공항 노숙이다.


다음날 탑승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 그런데 출국 직전 탑승게이트 앞 체크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 공항에서 또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널브러진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에 올랐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동안 한국으로 가는 두 번째 경유지다. 세계에서 하루가 가장 늦게 시작된다는 알래스카에서 꼬박 이틀을 날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따듯한 곳에 가고 싶었다. 인천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그리고 무작정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 공항에 내려 마라도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검은 현무암을 삼킬 듯 파도는 나를 대신해 울부짖는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니 오늘 밤 투숙객은 나 혼자다.  


쓸모없다는 느낌, 분노 그리고 억울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눈물이 터졌다. 한 참을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는데 신은 내 잠을 깨워 알래스카 숙소로 옮겼다.  


멜로디가 하늘 위에서 내려온다. 이해할 수 없으나 아름다운 노래로 가슴에 들어와 나를 안았다. 그리고


 "이제 깊은 잠을 자라고." 고요히... 가만히...

뚜렷한 멜로디가 마침내 들렸다. 눈을 떴다. 알래스카가 아닌 제주도다. 창밖에 우뚝 솟은 동백나무가 반짝이는 이파리를 흔든다.  마당에 나가보니 작고 여리지만 지난밤 세찬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굳건히 뿌리내린 여린 풀잎이 마치 “제주에 온 걸 환영해”라고 말하듯 속삭인다.

감사한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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