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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Oct 29. 2020

군산에 대한 어떤 감정

군산을 생각하면 울컥하게 되는 어떤 감정이 있다. 그 자리를 한결같이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경외와 감사한 마음. 대한민국의 서글픈 일제 강점 역사를 온몸으로 맞아낸 것에 대한 연민의 마음. 대한민국의 근현대 역사를 생각하면 드는 감정과도 비슷하다. 다른 관광지에 가서는 사진을 숨 쉬듯이 찍는 나도 군산의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훔쳐보는 것 같아 쉽게 카메라를 들이밀지 못하게 된다. 그들이 지켜온 삶의 터전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라고 할까. 두 눈으로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잰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흘긋 보는 것이 전부다.


군산은 나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평생을 대전-세종에서 보낸 나는 당연하게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정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직장 덕분에 정착하게 된 곳이 군산이었다.


집도 구하지 못하고 에어비엔비에 지냈던 군산에서의 첫 일주일, 나는 군산의 역사에 대한 박물관을 돌아다녔다. 대부분이 일제강점기 수탈을 겪으며 성장했던 군산의 건물, 역사, 문화재 등에 대한 기록이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역사적 건물들도 대부분이 일본이 사용했던 은행, 곡식창고 등이었다. 지금 우리가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이 관광지도 다 일제 수탈에 의해 생긴 잔해라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박물관에서 보았던 사진 중 과거의 군산 사진이 있었다. 과거의 현재 사진이 있다. 지금은 높은 빌딩들과 상점들이 즐비한 곳이 과거에는 다 논 밭이었단다.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는데 군산 시내에서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보니 이해가 되었다. 20분만 운전해보면 비옥하고 드넓은 평야를 볼 수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다.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땅이었는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시달려야 했는지 말이다.


군산에는 시간이 멈춰있는 것과 같은 상점들이 많다. '아직도 이런 곳이 존재한단 말이야?'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때가 많다. 오죽하면 남편과 나의 취미는 옛날 골목 산책이 아니겠는가. 너무 예스러워서 신기하지만 또 누군가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는 삶의 터전이기에 함부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그런 곳들이 군산에는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 그곳에서 어제도, 오늘도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생계를 꾸려나간다. 군산의 참모습을 보려면 골목골목을 돌아다녀야 한다. 철길마을도 좋고, 근대 역사거리, 근대 박물관도 좋지만 군산의 참 얼굴은 골목에 있다. 짐을 잔뜩 싣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할아버지, 슈퍼라고 쓰여있는 가게 안에서 햇살 아래 졸고 있는 할머니. 골목에 내놓고 물뿌리개로 물을 주며 키우는 상추가 빼곡한 화분을 보려면 군산의 골목을 돌아다녀야 한다.


한동안 글쓰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요즘은 군산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군산의 장소와 박물관에 대한 애정을 담아내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군산에 오래 터를 내리고 사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지역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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