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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Oct 27. 2021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은 도시

군산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유독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많이 마주친다. 이전에 살던 도시 또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차도에서 자전거를 마주치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대부분 천변에서 자전거를 타기 때문이다.


처음에 군산에 이사를 왔을 때, 운전을 하는 게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였다. 아슬아슬하게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로 4차선 차도를 역주행하는 사람들, 횡단보도를 기다리는데 인도도 차도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신호 대기를 하는 사람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자전거. 이런 스트레스는 특히 구도심에서 더 했는데 오죽하면 나는 네비를 찍을 때 조금 돌아가더라도 구도심은 피해 가는 경로를 선택하곤 했다. 자전거를 타는 인구는 대부분 노인층인데 그래서 나는 운전할 때마다 '할아버지, 조심하세요... 할아버지 제발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인도하여 군산에 사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인간극장을 보게 되었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씩씩하게 조업을 하시며 생계를 이어가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를 사랑스럽고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내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한 장면에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잠이 확 깨는듯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었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할아버지가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시는 장면이었다.


‘갔다 오겠소!’ 외치며 짐을 잔뜩 얹은 자전거를 타고 씩씩하게 출근하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 그리고 나도 언젠가 한번쯤은 걸었음직한 골목 구석구석. 나는 할아버지의 그 모습이 내가 그토록 스트레스받았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어떤 이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중한 교통수단, 그 자전거.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먹을거리를 사러 장을 보러 다니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교통수단을 나는 지극히도 내 위주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보면 자전거는 정말 고마운 교통수단이다. 오토바이나 자동차처럼 계속 연료를 넣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건 오직 건강한 다리와 적당히 튼튼한 자전거만 있으면 된다. 걸어서는 한참을 가야 하는 거리도 덕분에 빨리 갈 수 있게 되고, 요령만 있으면 무거운 짐도 거뜬히 나를 수 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사용해서 삶의 무게를 받치고 있겠는가.


하루하루를 긍정적이고 씩씩하게 살아가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너무나도 가난한 사람이 된 것처럼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운전하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극히 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불평하며,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내가 운전하기가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면 자전거를 탄 사람은 오죽했으랴. 그 사람도 울퉁불퉁한 인도보다 차도로 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 이후 주변을 둘러보니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개발된 신도심 같은 경우에는 도로가 아스팔트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방면, 구도심의 경우는 차도와 인도가 잘 구분이 되지 않고 그나마 있는 인도는 아스팔트로 되어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다.  차가 많이 없던 옛날이야 그럭저럭 살게 되겠지만 요즘같이 한 가구 소유 차량이 두 대는 기본인 시대에 이런 길은 자전거를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위험할 수밖에 없다. 사실 군산 외곽은 자전거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다. 서천부터 군산을 연결하는 풍경이 기가 막힌 자전거 도로가 연결되어있다. 그래서 봄과 가을에 종종 자전거 기어를 풀장착한 관광객들이 보인다. 그런데 정작 군산 시내의 길은 자전거 타기에 그렇게 좋은 길은 아닌 것 같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구석구석의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정비되면 군산 시민들의 생활 만족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그 티브이 시리즈를 보고 난 이후로 자전거를 보는 내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함께 공생해야 할 이웃이 된 것이다. 이웃은 서로의 사정을 헤아릴 줄 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서로의 편이 되어준다. 군산의 시민으로서 또 모든 자전거 운전자들의 이웃으로써, 시내를 가로지르는 구석구석의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더 말끔히 정비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전거 타시는 어르신들 모두 늘 건강하고 안전하게 운전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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