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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희정 Apr 30. 2017

기념하는 책 이야기

[반 고흐, 영혼의 편지] X [매거진 Chaeg]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들여다보니 하나하나 의미가 연결되어 있어서 새삼 놀란 적이 있다. 들고 다닐 땐 몰랐던 에코백의 레터가, 받았을 땐 몰랐던 엽서의 그림이 알고 보니 좋아하는 작가가 한 말이거나 그 엽서를 준 사람과 여행한 도시에서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거나 하는 의미 말이다. 이 두 권의 책도 그렇다.


2016년 4월호 [매거진 Chaeg], 세상에 단 한 권 밖에 없는 나만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작년이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매거진 Chaeg]에 이야기 공모글이 올라왔었다.


"누구도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 같았던 중2병, 병세 당시 여러분 곁에 있었던 책은 무엇이었나요? 중2병은 자아 형성 과정에서 생각이 트이며 '본인이 남과 다르다' 또는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감성이 충만했던 시기를 뜻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운 흑과거일 수 있지만 순도 100% 감성만으로 이루어졌던 그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저희 Chaeg은 그 당시 여러분 곁에 있었던 책이 궁금합니다"


 공모글을 보자마자 생각났던 한 권의 책, 바로 [반 고흐, 영혼의 편지]이다.



 이 책은 대학생 때 매일 들고 다니며 읽었던 책이다. 당시 사진을 좀 더 배우고 싶었던 무렵, 남들은 취업 준비할 때 뒤늦게 4학년 2학기에 사진학과 복수전공을 선택했던 내게 큰 힘이 되었던 글귀가 가득 있었다. 사진을 배우겠다는 도전을 앞두고 있던 나를 외롭지 않게 이끌어주는 지도였다. 선택의 지점들에서 다음 선택지로 가야 할 때 방향을 나는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친한 동생의 친구가 내 이름을 발견하고 찍어준 페이지

 [매거진 Chaeg]에 마감일 몇 시간 전 글을 보냈다. 어느 매체에 글을 보내보기란 처음이었다. 뽑힌다면 글이 소개되는 건 4월이었다. 4월은 프라하로 온 지 1년이 되는 달이었다. 프라하의 RuExp 팀에 지원서를 보냈을 때도 이 책으로 내 소개를 마무리했었기에 여러모로 나름 기념이 될 거 같았다. “심희정 님의 글에서 당시의 설렘과 열정을 상상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4월호 방 안의 코끼리에서 뵙겠습니다”라는 메일을 받았을 땐 입사지원 합격을 한 것만큼이나 기뻤다. 프라하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집으로 4월 호를 배송받아둔 터라 매체 지면으로는 아직 못 봤을 때였다. 지면의 글을 보고 내 이름을 알아본 친구가 알려줬다며 사진을 보내온 친한 동생 덕분에 행복했다.


RuExp 팀의 지원서
손글씨가 그대로 적혀있는 [매거진 Chaeg]


 여기까지도 충분하지만 또 하나의 의미가 더 남았다. 내 글이 담긴 [매거진 Chaeg] 4월호의 표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쾌락의 정원”이라는 작품이 표지였다. ‘환상을 파괴하는 환상적인 그림, 히에로니무스 보스’라는 글이 실려있었다. 내가 이 표지를 보고 놀랐던 것은 프라하에서 한국으로 오자마자 내 글이 실린 페이지를 펴서 읽었을 때가 아니었다. 친구와 마드리드 다녀온 것을 이야기하다가 이 표지가 생각났을 때였다. 응모글이 실릴 당시에 나는 이 작품을 몰랐다. '이번호의 주제가 '동화(Fairy tale)라더니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이네'라는 정도가 표지를 봤을 때의 첫 느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마드리드로 여행할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하였던 일인데 그 사이 마드리드를 여행했고 이 작품을 실제로 보고 왔던 것이다. 여행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몰랐을 작품이다. 내 글이 실린 매거진의 표지의 그림을 반갑게 알아보게 된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매거진 Chaeg]


 이 두 권의 책을 보고 있으니 2년간의 나를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한 권의 책은 프라하로 가기까지 동력이 되어준 것이라면 또 다른 책은 프라하에 살면서 우연히 여행했던 많은 도시를 대표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 4월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나는 2016년 4월도, 2017년 4월도 각각의 방법으로 기념하고 있다. 나를 소개하기 위한 지원서에 인용한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 대해 1년 후 응모글을 보낸 것이 첫 번째 기념이라면 그 매거진의 표지에 있는 그림을 보고 그 사이에 보고 온 그림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두 번째 기념이다.






[매거진 Chaeg]에 실린 글


봄이 되면 종달새는 울지 않을 수 없다

대학교 4학년 때이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친구들이 시험이나 취업에 대한 막막함을 쏟아내고 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두고 한참을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유망한 직장을 찾기보다는 원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며, 이런 고민을 하는 나는 남들보다 꽤 잘 살고 있는 중이라고 믿었던 그 시기, 며칠에 걸쳐 아끼는 책 한 권을 읽고 또 읽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장들을 내 속에 새겨 넣을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이 글대로 살아낼 수 있을 텐데"

밑줄을 쳐두고 그 문장들을 거듭 읽어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가방 속 종이테이프를 꺼내어 책 겉표지에 칭칭 감고는 밑줄 친 문장들을 차례대로 쓰기 시작했다. 그냥 순서대로 적었을 뿐이었는데 다 채우고 나서 읽어 보니 한편의 글이 된 순간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새로운 책 표지가 완성되었을 땐 늘 내 머리를 맴돌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하여 일순간 벅차기도 했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던 가. 마치 인생 사명서와 같았던 책, 가는 데마다 자랑스레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누군가 이게 뭐냐고 물어올 때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요즘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이 여기 다 써져 있다고 말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난다. "봄이 되면 종달새는 울지 않을 수 없다"라는 문장을 외워가며 언젠가 나도 내가 태어난 목적대로 살게 될 거라고 꿈꾸던 그때 내 곁에는 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이 책이 있었다.

<책 표지 문장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와 끈기뿐이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나는 패배하고 만다
묵묵히 한 길을 가면 무언가 얻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최종 목표가 뭐냐고 묻고 싶겠지
초벌 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 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의욕적으로 일하려면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론을 내렸다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나를 지배하는 열정을 따라 살아가기로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봄이 되면 종달새는 울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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