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비 May 14. 2023

사색의 돌과 경쾌한 모빌 <이우환 & 칼더 개인전>

철학을 담은 작품과 율동감이 흐르는 조각의 만남

예약하기 정말 힘들었던 이우환 & 칼더 전시.

매일 취소표를 기대하며 들락날락할 땐 기회가 없더니 느닷없이 표가 한 장 떠서 헐레벌떡(?) 다녀왔다.

국제갤러리는 처음 방문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더 커서 놀랐다.


본 전시는 도록과 함께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나, 개념적인 설명 위주의 도록은 앞단에 간단히 소개하고 작품이 자아내는 '느낌'을 위주로 적어보고자 한다.




1. 이우환 (Lee Ufan / 1936~)

'철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답게 이우환은 '점'과 '돌'로 유명한 화백이다. 그 작품을 보면 단순히(?) 점 두 개가 찍혀 있다던지, 돌 두 개가 놓여 있다던지 첫 눈에는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깊은 철학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와 미니멀리즘의 대표국인 일본에서 인기가 많다. 특히 프랑스 베르사유궁의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었던 만큼 그 철학성을 깊게 인정 받고 있는 작가이다.  

실제로 이우환의 작품은 그 배경과 해석을 확정 짓지 않기 위해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 공간과 같은 익명의 공간에 간결하게 전시된다. 


이우환 <Relatum - a Corner >

조형 전시도 생경한 편이지만 돌을 이용한 전시는 처음이었다. 무슨 의미일까 고민이 필요했다.



이우환 <Dialogue>

‘대화’를 주제로 여러 연작이 있었는데 이 작품이 가장 좋았다. 잔잔하게 이어지고 또 끊어지고, 그러다 자연스레 이어나가는 그런 대화. 다들 경험한 적 있지 않은가.

소재가 고갈되어 어색하게 이어나가는 대화인 듯도 하고, 적막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서 공기처럼 흐르는 대화인 듯도 하고. 느끼기 나름이겠지.



이우환 <Relatum - The Kiss>

'키스'라는 작품.

두 돌은 서로 기대어 맞닿아 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동시에 의지하고 있다. 그리고 서로의 영역이 맞닿은 쇠사슬까지, 키스의 장면이 자연스레 와닿았다. 타인과 처음 ‘섞이는’ 순간인 키스에 대해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인 접촉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기도 하는 순간이니.

물론 사람과 상황에 따라 키스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러했다.




2관으로 이어지는 전시.



이우환의 모든 조각들은 '관계항(relatum) - (부제)'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때 부제는 간결한 단어로만 구성되어 있을 뿐 정확한 해석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연의 돌과 산업사회를 나타내는 강철판 등 단순한 요소들을 시간을 들여 가만히 바라보자. 무엇을 느끼려고 노력하기보다 그저 사물들과 주변의 공기의 흐름을 느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색에 잠기게 된다. 두 사물의 대화를 가만히 느낀다던지 그 대화에 참여한다던지, 침묵 속의 적극적인 교감을 하게 된다. 
이우환 <Relatum - Dialogue>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대화’

서로 다른 두 돌이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그 시간은 영혼의 나눔으로 수다스럽기도 하고, 편안한 적막함으로 고요하기도 하다.

침묵이 가장 깊은 대화일 수 있다고, 이전에 만났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나누었고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나누었던 순간.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서로의 영역에 교차점, 그곳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말이기도 이고 침묵이기도 하다.



이우환 <Relatum - Seem>

그리고 가장 안쪽에 있던 작품.

가운데의 흰 백지는 고요한 명상의 시간으로 보는 이를 안내한다. 가운데에 위치한 돌은, 수백 년 수천 년의 시간을 간직한 채 관람자의 기운을 하나로 모은다.

처음 보면 공허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단순함이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단단한 돌과 희끄무레한 백지가 나의 상념을 모두 흡수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것을 담은 채, 돌은 담담하게 있었다.






2.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 / 1898~1976)
타고난 천재성으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본래 공대 출신이나 유명 예술가 집안의 피를 이어받아, 철사를 구부리고 일그러뜨리는 방식으로 사실상 공간 안에 입체적 조형물을 '그려내는' 새로운 조각법을 개발했다. 칼더는 추상적인 형태들이 공중에 매달려 조화로운 변화 속에서 움직이며 균형을 맞추는 모빌을 창시하여 명성을 얻었다.
 
공중에 매달려 공기의 진동에 의해 움직이는 칼더의 작품에 '모빌'이라 이름 붙인 건 바로 마르셀 뒤샹이었다. 칼더는 뒤샹과 동시대에 활동하면서 당대 유럽의 모더니즘과 미국의 신생 아방가르드 흐름을 연결하는 주요한 가교 역할을 했다. (도록 발췌 및 첨언)


Calder <Untitled>

그 유명한 ‘모빌’ 작품들 전에 칼더의 회화 작품도 볼 수 있다. 조형 작품을 위한 칼더의 머릿속 개념 작업처럼 느껴졌던 드로잉들.



공기의 흐름과 함께 유유히 회전하는 모빌 작품의 우아한 리듬감. 칼더는 작품 자체 뿐 아니라 주변 공기 자체를 생동감 있게 만들어 조각이란 장르의 영역을 확장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Calder <Roxbury Front>
Calder <Roxbury Front>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이하는 조각품과 모빌.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모빌을 보고 싶었으나 바람 한 점 허용되지 않아(?) 살짝 아쉬웠던.



Calder <Whip Snake>, <Fawn>

Whip Snake라는 이름이 절묘했다.



Calder <Untitled>

기발한 창의력으로 조형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던 칼더의 모빌 작품. 나의 상식 속 굳건한 조형작품과 달리 유연하게 ‘움직이는’ 칼더의 모빌은 과연 새로웠다. 선명한 컬러와 주변과 호흡하는 생동감 있는 움직임으로, 그 존재감이 뚜렷했다.



Calder <Caged Stone and Fourteen Dots>

무게를 맞추려고 돌을 묶어둔 걸까?

가볍고 명랑한 원반들의 맞은편에 묵직하고 미동 없는 돌을 위치시킨 것이 재밌기도 했다. 여러 가지 해석을 자아냈던 작품.



Calder <London (maquette)>
Calder <London (maquette)>

이름이 왜 런던일까? 생각보다 이유는 단순할 것 같았지만 궁금했다.

유려하게 떨어지는 모빌의 라인도 좋았지만 뒷 벽면에 비치는 그림자도 작품의 구성요소처럼 느껴졌다.

나뭇잎처럼 뻗어나가는 줄기 끝에 각기 다른 모양의 모형이 달려 더 경쾌했던 작품.



Calder <Guava>

구아바라는 이름답게 뱀을 표현한 것 같던 작품.

붉은색으로 강렬하게 표현한 부분이 날름 거리는 뱀의 혓바닥이 아닐까.



그리고 너~~~~무 귀엽던 작은 모빌 작품들.


Calder <Untitled>
Calder <Untitled>
Calder <Four Dots and Brass Tail>

자유로운 모양의 청동조각과 작은 모빌로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앙증맞은 그림자는 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 보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칼더 작품에 잘 어울리는 감각적인 직선 구조의 전시장. 떠나기가 아쉬웠던 칼더 전시.





5월 28일까지 진행되는 이우환 & 칼더 전시.

대체 한 달 내내 매진인 게 말이 되나 했는데, 소규모 예약제인 데다가 전시를 보니 그 이유가 이해가 됐다. 이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이렇게 집중해서 볼 수 있다니 행복한 오후를 만들어준 전시였다.


자연의 돌을 통해 근본적인 소통을 이야기한 이우환과 기존의 틀을 깨고 경쾌한 생명력을 조각한 칼더.

이우환의 작품은 나를 위로했고, 칼더의 전시는 나를 일깨웠다.

조형예술이 낯선 이에게도 스며드는 위로와 자연스러운 경탄을 주는 전시로 적극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현대미술사를 항해하다,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