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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 May 21. 2023

한국미술 70년을 <다시 보다 : 한국 근현대미술전>

박수근, 이중섭부터 김환기와 유영국까지 한국 미술의 대가들을 만나다

날씨 좋은 오뉴월에 공원의 녹음과 함께 즐기기 좋은 풍성한 전시!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특별 기획전 '다시 보다 : 한국 근현대미술전'(~6/18) 을 보고 왔다.




이번 전시는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예술이 도입된 1920년대부터 문화적 대변환의 계기가 된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을 담았다. 외세, 식민과 해방, 전쟁과 분단을 몸소 겪은 우리 예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민족 정체성을 담은 향토적 화풍, 강렬하게 고유의 한국적 미를 담은 추상, 열악한 환경 속 피어난 조형 예술까지 약 70여 년간의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소개한다.




1. 우리땅, 민족의 노래

길가의 평범한 얼굴들, 따뜻하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 등 근대미술가들은 이 땅의 풍경에 집중했다. 일제 강점과 해방, 625 전쟁 등을 겪어내면서도 소박한 소중함, 소중한 소박함을 그려낸 작품들이다.


장욱진 <가족>

전시실에 입장하자마자 소박하지만 전통적인 색감으로 눈을 사로잡는 작품.

마치 창호지에 귀엽게 그려 넣은 그림처럼 작고 앙증맞았지만 그래서인지 제목 <가족>처럼 그 단란함이 느껴졌다.


장욱진 <무제>, <소 있는 마을>



박수근 <두 여인>, <노상의 사람들>

투박함 속의 따스함이 참 좋은 박수근의 작품.

얼굴을 그리지 않은 익명의 두 여인이, 꼭 길가에서 본 그 여인들 같기도 하고 그 시절의 어머니 같기도 하고. 오히려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박수근 <대화>

시장통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함께 대화의 교감이 고스란히 느껴진 작품.


박수근 <아이 업은 소녀>, <소>

스케치이지만 특유의 단순한 선과 투박한 색칠이 보이는 작품. 우리나라 화백들은 소를 참 자주 그린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민중들과 함께 살아온 동물이면서도 그 우직하면서 순박한 눈망울이 영감을 주는 걸까?



이중섭 <소>

생동감이 넘쳤던 이중섭의 소. 반짝이면서 정면을 바라보는 듯한 생돔감 넘치는 눈과 적극적으로 벌어진 입까지 투기와 활력이 느껴졌다.


이중섭 <닭과 가족>

제목 닭과 가족처럼, 한 가족의 시끌벅적한 닭과의 전투(?)가 보이는 듯했던 그림. 날을 맞아 풍성한 닭요리가 필요한 사형제와 나름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닭들의 투쟁이 푸드덕 거리는 소리와 날리는 닭 깃털과 함께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 같아 즐거웠다.


이중섭 <물고기와 나뭇잎>,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이를 참 많이 그린 이중섭. 작품에서 그 애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와 함께 너무나도 귀여웠던 아들에게 부친 편지. 여백마다 글이나 당시 상황에 대한 그림을 그린 게 어찌나 다정하고 앙증맞던지. 예술가로서의 본성과 아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함께 느껴졌다.



박생광 <무제>

같은 '소'그림이지만 이중섭의 소와 정말 달랐던 박생광의 소 그림.

이 소는 좀 더 겁을 먹은 눈빛이랄까.. 다가올 어두운 앞날을 미리 알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중섭의 활기 넘치는 소와는 무척 다른 느낌을 주었다.




2. 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

디아스포라는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집단을 의미한다.
어느덧 70년, 민족분단은 한민족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이는 미술에도 영향을 끼쳐 '월남작가', '월북 작가'라는 분리된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번 섹션은 월북작가의 유산과 함께 해외 한인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변월룡 <자화상>

날 바라보는(?) 각도와 눈빛, 거친 붓질이 만들어내는 포스에 인상 깊었던 그림,,


변월룡 <평양의 누각>
변월룡 <평양 대동문>

두툼하면서 섬세한 유화 붓질이 만들어낸 반짝임과 연분홍빛 하늘빛이 정말 예뻤다.

평양엔 정말 이렇게 멋진 대동문이 있나? 하고 처음으로 평양의 모습이 궁금해졌던.



이쾌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청록색의 튀는 색감과 비현실(?)적인 초록빛 피부를 보며,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 떠올랐다.

통상적으로 '실제적'이라 불리는 색깔을 버리고 본인의 감정과 대상 고유의 매력을 담은 색깔로 충격을 줬던 스페인의 마티스. 초록색, 노란색 등으로 얼굴을 색칠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혹시 앙리 마티스의 영향을 받은 걸까? 시대를 보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단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몇 십 년을 헤어지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당시 잠깐이길 기대했던 분단은 70년간 이어졌다. 생사를 알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산가족들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겠지...

그 당시의 상황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느껴져 가슴이 조금 먹먹했던 문구.




3.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

당시의 봉건, 남성 중심 가부장제 속에서 뚜렷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낸 여성 미술사를 보여준다. 결혼과 육아, 가사, 사회 편견 등 고난 속에서 꽃 피운 여성작가들의 예술 열정을 담았다.


천경자 <언젠가, 그날>
천경자 <초원 II>

천경자 작가 특유의 꿈속 같은 파스텔컬러가 만들어 내는 판타지에 행복했던 작품.

특히 코끼리를 보랏빛으로 칠한 것이 인상 깊었다. 보통 떠올리는 코끼리는 회색이기 마련인데 천경자 화백은 보랏빛으로 그렸다. 맞아 생각해 보니 코끼리는 회색빛 하나가 아니라 이렇게 푸른 보랏빛도 섞여 있었던 것 같아- 하고 즐겁게 깨달았다.



박래현 <이른 아침>

처음 보는 작가에 처음 보는 작품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여운이 남았다.

색감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흰 바탕에 얼굴빛을 어둡게 그린 것이,

마치 그 시대의 고통과 동시에 무르익은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인물 개개인의 표정이 다른 것도 재밌었던. 아이 둘을 이끄는 지치고 슬픈 표정의 여인과 왠지 모르게 화가 난 듯한 여인.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박래현 <기억>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르네 마그리트의 <개인적 가치>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일상 속의 사물들을 비현실적으로 크게 그린 작품으로, 같은 사물도 개개인마다 그 가치를 다르게 느끼겠구나-생각했던 작품이었다. 박래현의 <기억>을 보면서도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형상들이 각자의 중요도와 질감을 갖고 개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걸 표현한 걸까, 생각했다.



박래현 <달밤>

그리고 수묵화와 입체주의가 동시에 느껴져 좋았던 작품.

먹물을 베이스로 한 수채화에서 느껴지는 한국미와 달의 모습이 단계적으로 굳이 그 경계면을 지우지 않고 표현된 점이 더 좋았다. 마치 피카소가 여러 각도의 그림을 1차원 평면에 다 그린 것처럼, 여러 가지 모습의 달을 한 번에 보여준 것 같았달까.



방혜자 <빛>

프리즘을 통해 네모난 조각 형태로 들어오는 자연 빛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좋았던 작품.




4. 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정신

20세기의 미술은 전 세계적으로 '추상'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한국도 그 예외는 아니었으니, 그 흐름을 적극 받아들이는 동시에 기존의 동양미를 잃지 않았다. 동서양의 만남이자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추구한 그때의 미술을 만나보자.


김환기 <돌>
김환기 <산>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을 여러 번 갔었다. 김환기 화백은 곡선과 원 등 기본적인 도형을 자주 활용한다. 원색을 활용하기도 하고 위와 같은 파스텔톤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푸른색을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본 전시에는 선이 강조된 작품들 위주이나, 색감과 붓질로 사색을 유도하는 작품이 보고 싶다면 환기 미술관을 방문해 보길.

 


유영국 <새벽>, <산>

새벽에 동이 트면 꼭 이렇게 환- 한 모습이지 않았나. 하고 문득 언젠가 보았던 새벽의 장면이 떠오른 작품.

지난해였던지, 국제갤러리에서 했던 유영국 전시를 가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졌다.


'추상화'에 대한 김환기와 유영국의 말.

추상에 대한 두 화백의 해석.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라는 말과

"그것이 인생인 것 같아서 내 그림의 산속에는 여러 모양의 인생이 숨어 있다"라는 말이 참 좋았던.


한묵 <ㄴㅗㄱ 구성>

거친 조각보를 이어 붙인 듯한 느낌과 단순한 컬러가 몬드리안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문득 그토록 머나먼 동서양에서 이렇게 비슷한 화풍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게 신기하다.




5. 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

작품 제작에 드는 많은 품과 시간 등으로 예술가의 순수한 개성 표현이 어려웠던 조각 작품. 대부분이 주문 제작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환경 속에서도 꽃을 피운 근현대 조각 작품들을 소개한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건칠을 되풀이하면서 오늘도 봄을 기다린다. '

마치 내 모습 같아서 힘이 됐던 문장.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결국 봄에 빛날 수 있는 꽃이 되길, 오늘도 희망을 그리며 지금을 보낸다.


김종영 <75-11>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한 신체가 아름다운 작품. 연한 그레이톤 컬러로 더 우아해 보인다.


김종영 <80-5>

같은 작가의 다른 느낌의 작품. 저것이 '목재'라는 것이 신선했다.


김종영 <자화상>

앙리 마티스의 얼굴 그림이 떠오르던 작품. 단순화 및 추상화는 비슷하지만 자아나는 느낌은 다르다. 김종영 화백의 작품에서 좀 더 강인한 투박함이 느껴진다.



김정숙 <여인 흉상>

이 또한 유려하고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 깊었던. 목을 길쭉하게 표현한 것이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문신 <무제>

너무 멋있어서 감탄이 나왔던 말. 노예처럼 작업하고 서민과 같이 생활하고 신처럼 창조한다니.

자기 자신과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확신이 강한 사람만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문신 작가는 잘 몰랐던 작가인데 이 한마디만으로 기억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문신 <어부>

노동의 한가운데에 있는 어부의 강인함과 집중력이 표정과 근육의 표현에서 느껴진다.


문신 <우주를 향해>





기대한 것보다 훨씬 알차고 재밌었던 <다시 보다 : 한국근현대미술전>

한국 미술사가 이렇게 다채롭고 풍성했던가?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좋은 작가들이 많았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미술작품은 특유의 소박함과 강한 투쟁정신, 투박함 속의 서글픔 등이 느껴졌다. 특유의 '한'이라는 정신.

뿐만 아니라 한국 추상미술의 계보를 알 수 있어 무척 재밌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박래현, 김환기. 이중 유영국과 박래현의 작품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앞으로 개인전이 열린다면 꼭 찾아가 보고 싶다.


미술전시를 다 보고 올림픽공원도 함께 산책할 수 있기에, 날이 좋은 5,6월에 꼭 추천하는 전시!

다만 사람이 많을 수 있으니 주말 오전 일찍이나 평일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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