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샥 축글 _ 스물 한 번째 글
2017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1라운드
FC 서울 : 수원 삼성 경기 리뷰
“K리그는 스토리가 부족하다.” K리그에 대해 잘 알지 못 하는 사람들이 K리그를 어설프게 깎아내리기 위해 사용하곤 하는 가장 흔한 비판 중 하나다. 이러한 비판이 부적절함을 증명하고자 K리그를 진심으로 아끼는 팬들이 제시하는 가장 대표적인 반례가 바로 ‘슈퍼매치’다.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맞대결을 뜻하는 ‘슈퍼매치’는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를 통틀어 가장 화려하고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주는 K리그의 대표 라이벌전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정적인 팬들을 보유한 두 팀의 맞대결 답게 '슈퍼매치'는 매번 새로운 스토리를 더해가며 K리그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거듭났다.
전년도 리그 우승 팀과 FA컵 우승 팀의 자격으로 2017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맞붙은 두 팀은 34,376명의 관중과 함께 또 하나의 소중한 스토리를 더했다. 2017년 첫 번째 ‘슈퍼매치’가 더욱 짜릿한 이야기로 역사에 기록되게끔 했던 주인공은, 올 겨울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FC 서울의 공격수 이상호였다. 지난 겨울 수원 삼성의 유니폼을 벗고 최대 라이벌 팀 FC 서울로 이적한 이상호는 친정 팀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한 개막전에서 천금 같은 동점골을 터트리며 FC 서울을 3연패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상호의 이적 소식을 접한 뒤 두 팀의 팬들이 어쩌면 가장 기대했거나 걱정했을 상상이 현실로 일어나며 어제의 경기는 더 긴 여운을 남기게 되었다.
두 팀 모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두 경기 치른 뒤의 시즌 세 번째 공식 경기였다. FC 서울은 2연패로, 수원 삼성은 2연속 무승부로 두 팀 모두 좋지 않은 출발을 했지만 경기력 측면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팀은 수원 삼성이었다. 수비가 계속해서 무너지며 우라와 레즈에게 2:5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던 FC 서울은 이 날 경기 초반에도 여전히 불안한 수비력을 보이며 수원 삼성의 공격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 수비수로 FC 서울 데뷔전을 가진 김근환은 수원 삼성 공격수들의 전방 압박에 계속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며 불안한 볼 처리를 남발했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던 오스마르 역시 중앙 수비수들이 흔들리자 덩달아 당황한 듯 패스미스를 계속했다. 곽태휘가 부상으로 결장하고 박주영이 벤치에 앉아있는 상황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나왔던 오스마르가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고 흔들리자 팀이 전체적으로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듯 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원 삼성의 페이스로 흘러가던 경기 양상은 결국 FC 서울의 선제 실점으로 이어졌다. 전반 8분, 조나탄이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민우에게 이어졌고, 볼을 받은 김민우가 김근환을 등 진채 한 바퀴를 빙글 돈 이후 그대로 터닝 슈팅을 때렸다. 볼은 김근환의 가랑이 사이로 빠지며 그대로 골로 이어졌다. 김민우의 골로 인해 FC 서울은 지난 두 경기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선제골을 실점하게 되며 경기를 어렵게 시작하게 되었다.
김민우의 골이 터져나온 이후 경기는 계속해서 수원 삼성의 주도 하에 흘러갔다. FC 서울의 수비는 계속해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으며 오스마르, 고요한, 윤일록으로 구성됐던 중앙 미드필더 진은 수비수들에게 백패스를 돌리기에 급급했고, 가끔 시도되는 전방을 향한 패스는 부정확했다. 반면 수원 삼성은 염기훈과 조나탄, 김민우 쓰리톱이 공격을 주도하며 계속해서 좋은 찬스를 만들어냈다. 유현이 가까스로 선방해 냈던 염기훈의 중거리 슈팅과 김근환의 볼을 뺏어내며 만들어냈던 조나탄의 일대일 찬스는 FC 서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하지만 전반전을 지배했던 수원 삼성은 추가 득점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전반전은 1:0으로 종료됐다.
후반 시작과 함께 황선홍 감독은 김한길과 김근환을 빼고 주세종과 이석현을 투입하는 강수를 두며 경기력 반전을 꾀했다. 오스마르를 중앙 수비수로 내리고 주세종에게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맡기며 빌드업을 전담시키고, 이석현이 중앙에서 경기를 풀어나가게끔 하며 팀의 무너진 밸런스를 회복하려는 황선홍 감독의 선택이었다. 리그 내에서 선수 교체를 통해 경기력 반전을 이끌어 내는 능력은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황선홍 감독의 용병술은 오늘도 적중했다. 주세종과 이석현이 투입되며 중앙 수비수 자리로 내려간 오스마르는 다시 제 기량을 회복했고, 팀의 패스 플레이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주세종은 김동우와 오스마르의 사이 위치까지 내려가서 공격으로 나아가는 팀의 첫 번째 패스를 연결해줬고, 이석현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수원 삼성 미드필더 진의 압박을 가볍게 벗겨냈다. 두 선수의 활약과 함께 후반전은 FC 서울의 흐름으로 흘러갔다. 비록 조나탄에게 득점 기회를 내주기도 했었지만, 전반전보다는 확실히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FC 서울 선수들은 경기를 지배해나갔다. 이후 후반 17분, 오늘 경기 가장 짜릿했던 장면이 터졌다. 수원 삼성 진영에서 이상호가 파울을 당하며 프리킥 찬스를 얻어냈고, 김치우가 키커로 나섰다. 김치우가 오스마르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지만 볼은 뒤로 빠졌다. 뒤로 빠졌던 볼이 수원 삼성의 수비수에 몸에 맞고 윤일록 앞으로 떨어졌고 윤일록은 이를 바로 왼발 슈팅으로 이어갔다. 골대 쪽으로 흘러가던 볼에 이상호가 발을 갖다 댔고, 그물이 출렁였다. 골이 들어가는 순간 이상호는 오른손을 치켜 올리며 순간적인 짜릿함을 못 이기고 환호할 뻔 했지만, 상대 팀이 그의 친정 팀 수원 삼성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세레머니를 참아냈다.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 FC 서울은 개막전을 승리로 만들기 위해 더욱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후반 26분 이석현이 때린 중거리 슈팅이 크로스바를 때리며 골로 이어지지 않았고, 이후의 계속되는 공격에도 끝내 추가 득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2017년 첫 번째 슈퍼매치는 1:1 무승부로 종료되었다.
이 날 경기의 주인공은 ‘레드소닉’ 이상호였다.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 모습으로 FC 서울 팬들의 신뢰를 얻어내겠다고 다짐했던 이상호는 정말로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 열정을 보여주며 FC 서울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상호는 동점골을 기록한 것뿐만 아니라 경기장 곳곳을 누비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팀의 공격을 주도했다. 자신의 옛 과오로 인해 아직 마음을 열지 않은 팬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열심히 뛰던 그의 열정은 얼어있던 FC 서울 팬들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골을 넣은 이후에도 한 때 그를 응원해줬던 수원 삼성의 팬들을 생각해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던 점과 그를 향해 경기 내내 야유를 보냈던 수원 삼성의 팬들에게 경기가 끝난 뒤 다가가 감사 인사를 전했던 이상호의 행동은 축구장에서만 볼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이상호가 ‘슈퍼매치’에, 그리고 K리그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더해준 셈이었다.
이 날 경기의 주연이 이상호였다면, 숨은 조연은 주세종과 이석현이었다. 주세종과 이석현은 자칫하면 3연패의 수렁으로 떨어질 수 있었던 팀을 45분의 짧은 시간만에 구해냈다. 지난 두 경기의 부진으로 인해 이 날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지 못했던 주세종은 후반 45분 동안 자신의 진가를 되찾았다. 수비 시에는 중원에서 상대 선수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공격 시에는 좌우로 볼을 배급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며 주세종은 전반전에 무너졌던 팀의 밸런스를 되찾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석현 역시 주세종과 마찬가지로 후반전의 흐름을 FC 서울이 가져올 수 있었던 데에 큰 일조를 했다. 이석현은 간결한 볼 터치와 턴 동작으로 수원 삼성 수비진의 압박을 탈출하며, 전반전에 밀렸던 중원 싸움에서 FC 서울이 우세를 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석현과 주세종의 활약은 중앙 수비진의 불안으로 인해 오스마르의 기용 위치에 고민이 많은 황선홍 감독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다.
전반전 붕괴됐던 수비진 이외에 어제 경기에서 FC 서울이 아쉬웠던 또 다른 점은 눈에 띄게 기량이 저하된 데얀이었다. 올해 한국 나이로 37살이 된 데얀은 스피드와 순발력 부분에서 현저히 기량이 저하된 모습을 보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직접 골을 넣는 ‘골 게터’ 스타일 보다는 공격을 풀어주고 찬스를 만들어내는 ‘찬스 메이커’ 스타일로 변화한 데얀에게 계속해서 원톱 역할을 맡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주영 역시 ‘찬스 메이커’ 스타일에 가까운 상황에서 황선홍 감독이 원톱 공격수의 득점력을 어떻게 극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저 논리에만 근거한 호소 방법보다는 감정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더해진 호소 방법이 무언가를 홍보하고 설득하는 데에 있어서 훨씬 더 큰 효과를 지닐 수 있다. 따라서, K리그가 더욱 흥행하기 위해서는 어제 이상호가 만들어 냈던 이야기와 같은 스토리가 끊임없이 탄생되어야 한다. 이상호의 이적처럼 라이벌 팀 간의 이적이 계속해서 이뤄져야 함을 주장하는 바는 아니지만, K리그를 사랑하는 우리들이 모두 함께 ‘K리그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해나가는 것이 K리그를 세계 최고의 리그로 성장시키는 첫 걸음일 것이다.
글 = 호샥 @ 서울 월드컵 경기장
동영상 = 호샥
사진 = SPOTVNEWS, 인터풋볼, 아시아경제, FC 서울 공식 인스타그램, 수원 삼성 공식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