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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샥 Jun 02. 2017

무뎌진 창끝으로 무너진 명예, 원인과 복구 방법은?

호샥 축글 _ 서른 한 번째 글

2016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당시 K리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수원과 포항이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했지만 서울과 전북은 막강한 경기력을 바탕으로 4강에 올라 결승행 티켓을 두고 K리그 팀끼리 맞붙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서울을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한 전북은 중동의 알 아인을 꺾으며 2016 아시아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한창 대회가 진행 중인 2017 ACL 속 K리그의 존재감은 예년에 비해 초라하다. 서울, 제주, 울산, 수원 중 제주를 제외한 나머지 세 팀이 모두 조 3위를 기록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굴욕을 겪었다.


네 팀 중 두 팀이 4강에 진출했던 작년과 달리 네 팀 중 세 팀이 조별리그에서 힘없이 무너져버린 근본적 원인에 대해 다수의 언론은 ‘투자 부족’을 꼽고 있다. 최근 막대한 자금력으로 정상급 선수들을 영입하며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 슈퍼리그나 오래 전부터 리그 규모를 차근히 키워온 일본 J리그에 비해 늘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K리그가 결국 그 대가를 치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동안 경쟁국의 투자에 맞서 K리그가 가까스로 사수해왔던 ‘실력 차이’라는 성벽에 균열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올해는 K리그 팀이 ACL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그간 ACL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왔던 K리그가, ‘투자 부족’의 문제가 비단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에서야 무너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경기 외적인 투자 침체가 누적되며 드러난 경기 내적인 문제점은 ‘낮아진 득점력’이었다.



지난 시즌 ACL을 주도했던 K리그의 두 팀 서울과 전북의 무기는 화끈한 공격력이었다. 우승팀 전북은 조별리그 6경기 동안 13골을 기록하는 안정적인 공격력을 뽐냈다. 이동국과 김신욱이라는 대형 스트라이커와 최정상급 외국인 공격수 레오나르도, 로페즈를 앞세운 전북은 매 경기 골을 만들어내며 경기당 2.1골을 득점했다. 4강에서 전북에 패배하며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던 서울 역시 조별리그 6경기 동안 17골을 터트리는 위력을 보였다. 아드리아노의 신들린 활약에 힘입어 경기당 2.8골을 득점한 서울은 강력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가볍게 조별리그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ACL에 도전한 K리그 네 팀 중 조별리그에서 경기당 평균 2골 이상의 득점을 기록한 팀은 제주(경기당 2골)가 유일했다. 득점 빈곤에 시달린 나머지 세 팀은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FC 서울의 공격을 이끌었던 아드리아노.

ACL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며 단 한 번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경험이 없었던 서울은 올 시즌 구단 역사상 첫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시즌 초반 수비 불안으로 잦은 실점을 허용했던 것도 탈락의 주원인이었지만, 작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득점력 또한 문제였다. 이번 시즌 서울의 조별리그 총 득점은 10골에 그쳤다. 그 중에서도 반은 최하위 팀 웨스턴 시드니를 상대로만 성공시킨 득점이었다. 아드리아노를 중국 2부 리그로 떠나보낸 뒤 적절한 대체자를 영입하지 않고 데얀과 박주영에게만 의존하려 했던 팀의 ‘투자 보류’ 결정이 득점력 저하와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야기하고 말았다.


서울과 더불어 2년 연속 ACL에 진출한 수원 역시 미비한 득점력이 패인이었다. 지난 시즌 조별리그와 비교해 총 득점(7골→11골)과 경기당 득점(1.1골→1.8골)이 늘어나긴 했지만, 16강 진출에 성공할 만큼의 화력은 아니었다. 작년 조별리그 당시에는 팀에 없었던 조나탄이 4골을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산토스는 5경기에 출전해 단 한 골을 성공하는데 그쳤으며 시즌 개막을 앞두고 조나탄에게 집중된 득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영입된 박기동은 모든 경기에 출전했지만 무득점으로 침묵했다. 최근 ACL 무대에 계속해서 나서고 있는 팀의 두 번째 스트라이커 옵션으로 박기동은 분명 아쉬움이 느껴지는 영입이었다.

박기동은 분명 수원에겐 아쉬운 영입이다.

울산의 득점력은 더 비참했다. 조별리그 6경기 동안 9골을 성공시켰지만 득점에 성공한 상대 팀은 단 한 팀이었다. E조 최하위 팀 브리즈번 로어를 상대로는 1, 2차전 각각 6골과 3골을 성공시켰지만 가시마 앤틀러스와 무앙통 유나이티드를 상대로는 단 한 골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울산의 경우에는 선수보단 감독에 대한 투자 방향이 아쉬웠다. 윤정환 감독이 떠난 이후 울산이 선택한 대체자는 지난 시즌 성적 부진으로 인천의 감독직을 내려놓았던 김도훈 감독이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던 윤정환 감독을 떠나보낸 뒤 선택한 대안이라기엔 의문스러운 결정이었다. 결국 김도훈 감독의 울산은 조별리그 내내 공격 상황에서 전술적으로 미완된 인상을 지우지 못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서울, 수원, 울산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반면 제주는 조별리그 6경기에서 총 12골을 성공시키며 K리그 팀으로는 유일하게 16강 진출 티켓을 획득했다. 마르셀로, 멘디, 마그노, 이창민, 권순형 등 다양한 선수들이 골고루 득점을 기록하는 무서운 공격력을 선보인 제주는 경기당 평균 2골을 성공시키며 조 2위를 차지했다. 개막 전 멘디, 마그노 등 즉시 전력 감 선수들을 다수 영입하는 적극적인 투자를 감행한 제주의 선택이 빛을 발했다.

제주의 공격을 이끌고 있는 두 외국인 공격수 마르셀로(좌)와 멘디(우).

올 시즌 K리그 팀들의 ACL 16강행 여부를 결정지은 요소는 결국 득점력의 차이였다. 내년 대회에서 올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공격력 강화를 위한 적극적 투자가 요구된다. 무뎌진 창끝을 다시 날카롭게 만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투자 정책은 결국 공격수 영입이다. 중국 슈퍼리그의 팀들처럼 천문학적 금액을 쏟아 유명 선수를 영입하는 것만이 꼭 능사는 아니다. 수백억대 연봉의 선수들이 아니더라도 K리그 팀들의 공격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선수들이 가까운 곳에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먼저 챌린지 무대에서 득점력이 검증된 외국인 공격수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과 수원은 아드리아노와 조나탄을 통해 챌린지 무대에서 검증 받은 외국인 선수가 클래식 무대나 ACL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했다. 따라서 득점력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클래식 팀들은 챌린지 무대를 주목할 가치가 있다. 현재 14라운드까지 진행된 챌린지 무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공격수는 경남의 말컹이다. 말컹은 큰 체구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움직임과 골 결정력으로 경남의 무패 행진을 이끌고 있다. 서울(마우링요)이나 울산(코바)처럼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의 외국인 공격수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팀에게 말컹이 구원자로 떠오를 수 있다.

현재 K리그 챌린지 최고의 스타는 단연 말컹(우)이다.

U-20 월드컵을 통해 잠재력을 증명한 젊은 스트라이커 조영욱과 하승운도 K리그 팀들이 노려볼만한 후보군이다. 이 둘은 각각 고려대와 연세대 소속으로 아직 프로 무대에 데뷔하지 못했지만 월드컵 준비 과정과 본 대회를 통해 충분한 가능성을 드러냈다. 특히 조영욱은 그동안의 대한민국 공격수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남다른 움직임을 보유한 공격수라는 평을 받으며 주가를 높였다. 하승운 역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대회 준비 과정에서 충분한 잠재력을 입증한 매력적인 유망주다. 월드컵 이후 프로 무대 데뷔를 목표로 할 어린 선수들 역시 K리그 팀들이 영입을 고려해볼만한 대상이다. 만약 12년 전 청소년 대표 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K리그에 입성해 엄청난 존재감을 떨쳤던 '박주영 신드롬'이 다시 한 번 재현된다면, 이는 단순한 공격력 강화 이상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이외에도 유럽 무대에 진출해있지만 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석현준, 이청용, 류승우 역시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유럽 빅 리그에서 전력 외로 분류됐던 김보경과 김진수를 불러들여 팀의 에이스로 등극시킨 전북의 사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투자 없인 발전도 없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창끝이 무뎌진 K리그가 다시 아시아 무대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격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무뎌진 창끝을 다시금 날카롭게 하는 것, 무너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K리그가 해결해야 하는 숙제이다.


글 = 호샥

사진 = 골닷컴, 수원 삼성 공식 홈페이지, 경남 FC 공식 홈페이지, A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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