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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st in Translation Mar 16. 2018

세계 최연소 여성 억만장자의 끝없는 추락

닉 빌튼, 2016년 10월호, 배니티 페어 하이브


작년(2015년) 10월 16일 늦은 금요일 밤에 엘리자베스 홈스(Elizabeth Holmes)는 자신에게 더 이상 남은 선택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스탠퍼드 대학을 중간에 자퇴하고, 만 19세 나이로 혈액 테스트 제품을 내놓는 스타트업으로써 당시 회사 가치만 한때 90억 달러(한화 약 9조 6천억 원)에 육박했던 테라노스(Theranos)를 창업한 그녀는 결국 자사 직원들 앞에 서서 연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전인 수요일 오전에 비판적인 풍조가 가득한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가 나왔는데, 테라노스는 원래 "사기(sham)" 집단이고, 원천기술에 심각한 결함이 있으며, 그간 자사 제품이 아닌, 경쟁 업체의 기기를 이용해서 혈액을 판별해냈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로 인해서,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인 홈즈를 지구촌 곳곳에서 칭송받도록 자리를 깐 실리콘밸리 전역에서 갑자기 진동이 울렸다. 이 기사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세간의 호기심이 팔로알토에 위치한 겨자색과 녹색이 혼합된 테라노스의 본사 내부에 보글보글 끓었다. 당시는 670만 달러(한화 약 71억) 규모의 건물 내부 리노베이션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과학자부터 일반 마케팅 부서까지, 테라노스의 직원들은 작금의 상황이 무슨 의미인지가 궁금했다. 

 

 내부자들에 따르면 올해 32세인 홈스는 최근 이틀 동안 이러한 의혹에 대해서 입장 표명을 하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 그 대신에, 홈즈는 한동안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회의실 안에서 숨어 지냈다. 그녀가 꽤 신뢰할 만한 소집단과 전략을 짜고 있었을 때 주변 테이블 위는 반쯤 찬 음식 용기와 오래된 커피와 녹차가 담긴 컵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소집단에는 여러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테라노스의 C.O.O. 이자 회장인 라메쉬 "써니" 발와니, 최고 법무 자문위원인 헤더 킹, 그리고 용감무쌍한 로펌으로 소문난 [보이스, 쉴러 & 플렉스너] 소속의 몇몇 변호사들, 그리고 고 위기 경영 컨설턴트들이었다. 내부자들에 따르면, 이때 전쟁 지휘실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틀 밤 내내 그곳에 모여 회의를 했으며, 샤워를 할 때만 문을 열고 나갔고, 숙면은 보통 2시간 미만으로 자려고 노력했다. 그곳 방 안에는 여전히 불쾌한 냉기만이 흐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테라노스 건물 안을 홈즈는 언제나 실온 화씨 60도 중반(섭씨 약 15도)으로 유지했다. 이렇게 해야 홈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검은 터틀넥이나 검은 조끼를 매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모두가 자신이 숭배하는 아이돌, 바로 스티브 잡스에서 빌려온 일종의 균질성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티브 잡스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 애플처럼 테라노스도 내부 분위기가 비밀스러웠다. 테라노스 본사에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무한루프 1'에서 잡스가 공공연히 주장했던 것처럼, 이곳 내부 각각의 사무실도 각기 고립된 채 설계되었다. 직무 및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서로 간의 소통이 금지되었는데, 경영 방식에 정통한 사람들은 이런 형태가 매우 드물다고 답한 바 있다. 테라노스에서 홈즈는 창업자 겸 CEO, 그리고 의장이었다. 또한 건물 중앙 복도 양쪽 벽에 걸려 각기 액자화 된 미국 국기의 수부터 시작해서 새롭게 채용되는 직원들의 복지 혜택 규모까지, 모든 결정 사항은 그녀의 책상 위를 단 한 번도 몰래 미끄러져 나간 적이 없었다.

 

잡스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자신의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 다시 말해서 "일화(narrative)"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였다. 또한 테라노스는 그저 선반 위에 놓인 기기들이나, 투자자들의 두둑한 안주머니를 재빠르게 해치우고자 막대한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도 더욱 신랄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계속된 인터뷰에서 홈즈는 테라노스가 소유한 특허 기술,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정맥주사를 맞지 않고, 단지 사람의 손가락 끝부분에 피 한 방울이 살짝 나올 정도로 아주 작은 구멍을 내서 혈액을 채취하고, 그걸 토대로 수백 가지의 질병을 검사하는 과정을 또다시 되풀이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삶을 살리게 될 아주 놀랄 만한 혁신이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자주 "세상을 바꾸자"라는 말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IT 분야에서는 무수한 음식 배달 어플 및 스타트업들이 있었기 때문에 돈키호테 식의 그녀만의 야망은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윽고 그녀는 포준, 포브스, Inc, 등 여타 잡지들의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뉴요커에도 이력이 실린 그녀는 찰리 로즈(Charlie Rose)의 쇼에도 출연했다. 이러면서 그녀는 재산을 무려 40억 달러(한화 약 4조 2천6백억 원)로 증식시켰다.

 


 

이 일화에 그다지 감명받지 않은 것 같은 유일무이한 언론인 한 명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존 캐리루였다. 존 캐리루(John Carreyrou)는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헬스케어에 대하여 주로 기사를 쓰는 아주 다루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는 테라노스의 비밀 가득한 분위기에 약간 놀란 뉴요커의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서 심적으로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비밀은 제약회사가 아닌 기술회사에서 주로 기대되는 패턴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홈스가 대외 석상에서 테라노스의 기술이 어떤 효과를 가져다주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봤다. 일례로 뉴요커의 기자가 홈즈에게 기술에 대해서 질문을 하자,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다소 애매하게 답했다. 

 

"화학적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그래야 화학반응이 나타날 테고, 거기에 샘플과 대조해서 서로 간의 화학적 상호작용으로부터 도출되는 신호가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결과로 해석한 다음에, 후에 자격 있는 실험실 직원으로부터 평가를 받죠."

 

(She responded, somewhat cryptically, "a chemistry is performed so that a chemical reaction occurs and generates a signal from the chemical interaction with the sample, which is translated into a result, which is then reviewed by certified laboratory personnel.")


뉴요커의 기사를 다 읽은 후 캐리루는 테라노스의 의료 행위에 대해 본격적인 탐사에 들어갔다. 자세히 취재를 하니까, 테라노스의 이야기에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은 어두운 이면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실험 절차와 그에 따른 결과에 어떤 한 요소가 별도로 개입하고 있는 걸 포착했다. 캐리루가 이에 대하여 기사화를 하자, 테라노스 이사회에 소속된 변호사 데이비드 보이스(David Boise)가 [월스트리트 저널] 뉴스룸에 찾아와 한번에 5시간 이상이나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데이비드 보이스는 미국 법조계의 슈퍼스타로서 1990년대에 빌 게이츠, 2000년 플로리다 주 개표 결과 재판에서 알 고어를 대변했다. 보이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월스트리트 저널]의 수석 편집장인 제라드 베이커(Gerard Baker)를 만나고자 다시 방문을 했다. 그 후 2015년 10월 16일에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인기 많은 스타트업인 테라노스가 자사 혈액 판별 기술로 어려움을 겪다'



 

내부자들에 따르면, 꼬박 이틀 밤을 전쟁 지휘실(회의실)에서 지새운 엘리자베스 홈스는 다양한 대응 전략들을 참모로부터 들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제안은 이랬다. 일단 '테라노스'라는 이름 자체에 "치료"와 "혼합물"이라는 두 가지 이미가 겹치게 만들고, 대외적으로 이 스타트업의 이미지를 꿰하고자 과학계에 있는 학자들을 이사화 멤버로 정식 섭외하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과학자들도 테라노스를 확실히 신뢰하지 않았다. 홈스의 지휘 아래서 이 비밀스러운 스타트업은 다른 과학자들이 자사 기술을 토대로 평가 논문 쓰는 걸 미연에 막았다. 


계획의 부재 속에 홈즈는 자신에게 보다 친숙한 방향으로 물꼬를 트려고 했었다. 그녀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또 한 번 들려주었다. 하루는 그녀가 차에 시동을 걸고자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공항으로 향했다. 그녀 주변에는 종종 경호인력이 배치되었는데, 어쩔 때는 최대 네 명의 남성들이었고, 그들은 이 젊은 CEO를 (안전상의 이유로) "이글 원(Eagle 1)"이라고 불렀다. (주로 혼자서 어디를 가는 그녀는 그때만 하더라도 650만 달러[한화 약 69억 3천만 원] 짜리의 걸프스트림 G150 제트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홈즈는 이미 약속이 된 하버드 의과대학의 전임연구원 이사회가 마련하는 축하 오찬을 먹으로 그날 보스턴을 향해 떠났다. 오찬장에서 그녀는 헌액 될 예정이었다. 여행을 하던 도중에 그녀는 아직 전쟁 지휘실에 남아 있었던 참모들로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녀와 참모들은 CNBC의 매드 머니(Mad Money)의 진행자인 짐 크레이머와 인터뷰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전에도 크레이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와 우정을 다지고 있었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이 되었다.


크레이머는 홈즈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물으면서 관대한 분위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홈즈는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말을 이어 나갔고, 걱정스러울 정도로 불규칙적으로 양쪽 눈을 깜빡거렸으며, 잡스가 했던 말을 약간 변형시켜서 대답했다. "이건 당신이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고 싶을 때 겪게 되는 현상입니다." 그녀의 긴 금발머리는 헝클어졌고, 아까 바른 빨간 립스틱 때문에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미소는 더욱 크게 나타났다. "먼저, 사람들은 당신이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테고, 당신과 맞서 싸우려고 할 테고, 그러고 나서는, 갑자기, 당신은 세상을 바꾸게 되는 겁니다." 크레이머가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에서 제기된 의혹을 가지고 '예'와 '아니오'라고 답변을 달라고 부탁하자, 그녀는 두서없이 198개의 단어로 이뤄진 문장으로 재빠르게 응수했다.


팔로알토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무렵, 그녀는 그곳에서 자사 직원들을 향해 짧은 연설을 할 거라는 사항이, 그때 마침에 최종 결정되었다. 회사 측은 전체 이메일을 통해서 하얀 가운을 입은 기술자들,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프로그래머들, 그리고 수많은 행정 직원들이 식당에서 모두 모이라고 지시했다. 그곳에서 홈즈가 옆에 발와니를 둔 채로 자신의 전형적인 바리톤 목소리로 설득력 가득한 웅변을 유창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충실한 직원들에게 "여러분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설명했다. 연설이 길어지면서 그녀는 더욱 열정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그녀는 [월스트리트 저널] 측이 그릇된 소스를 가지고 기사를 썼다고 주장했다. 그녀에 따르면, 존 캐리루는 약간 격분한 기색을 가진 채,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오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홈즈는 무대를 발와니에게 넘겨주었고, 그는 그녀의 감정을 다시 발화했다.


발와니의 연설이 끝나자, 테라노스의 주요 임원진은 자사 직원들을 바라보고 식당 곳곳을 살폈다. 그러고 나서 하나의 외침이 들렸다. "좆까..." 그러자 직원들 모두가 하나가 된 것처럼 크게 소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캐리루." 그 외침은 더욱 크게 울러 퍼졌다. "좆까! 캐리루!" 실험용 하얀 가운을 입은 남성들과 여성들, 티셔츠와 청바지를 주로 입은 프로그래머들까지 합세했다. 그들은 정열적으로 외쳤다. "좆까, 캐리루!" 그들은 울부짖었다. "좆까, 캐리루! 좆! 까! 캐리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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