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이별과 정
보고있으면 보고싶어질 것들에 대하여 글 쓰는것은 아주쉽다.
애틋은 증오하는 만큼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감정이고, 나는 차라리 로봇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락모락 연기나는 따듯한 분위기의 연말에, 나는 갓 태어난 아기같은 내 책 한권을 손에 달랑달랑 들고, 가벼운 손으로 무거운 대문을 열어 학교를 나선다. 학교를 나서면 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까봐 전전긍긍 했던 날들은 아직도 계속된다. 나는 항상 학교를 생각하고 작업을 생각하고 옷을 생각하고 색깔을 생각해서, 그것들이 없어지면 나의 나날들은 더이상 지속되지않을까봐 걱정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 자꾸만 나를 다른 물체를 통해서만 확인 하려하는 내게 나는 너무 질려버려서. 유체이탈을하면 좀 덜할까 자꾸 말도안되는 상상만 꾸역꾸역 갖다 넣는다.
몇주전에 댕강 잘라버린 무거운 머리카락들의 부재에, 내 목덜미는 칼같이 쨍하게 바람을 맞아내고 꿋꿋이 견뎌낸다. 무거운 머리카락이 잘리면 무거운 생각이 잘릴까하는 희망은 반은 실제로 일어나고 반은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를 자르는 의식을 통해 자라나는 무거운 줄기들은 절단해냈지만, 뿌리는 아직도 꿈틀거린다.
나는 아직도 내 모든 창조가 불만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서, 창조를 멈추느니 차라리 계속 어떤 불만족이든 삶에 지장이 없을정도까지만 안아서 나르고 싶다고 생각한다. 창조는 명상이라, 나 자신을 끊임없이 확인할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 다른 대안을 찾을떄까지는 나는 지나치게 행복하지만 않은 정도로 꾸준하게 만들고 생각하고싶다.
내 존재를 확인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작업이라는건 위험하지만, 나는 다른건 다 안전하게 사니까 이건 안전하지않아도 될까 자기위로한다.
나는 내가 낳은 아이들처럼 내 작업으로 돌아갔다가 그들을 종종 생각한다. 혹은 어쩌면은 그들을 만들때의 나에게 돌아가는 것 일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어쩌던, 파이널이 끝났다. 드디어 사람처럼 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