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칠 때 떠나라 했던가.
꼭 어떤 큰 명예를 얻어야 내려오는 건 아니다.
어느 한계에 다다랐다면 스스로 깨닫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빈도
올해 남자 셋이서 자주 술을 먹었다.
월요일에 만나면 으레 먹겠거니 했다.
다른 약속이 없으면 수, 목에도 한 번 더.
만나다 보니 많이 친해진 것 같다.
맛있는 것도 먹고 당구도 같이 치고.
서로 어떤 성향인지 이해도 하게 된다.
"영상이 얘 보면 꽤 괜찮지 않아요?"
다른 사람도 있는 소규모 회식자리였다.
형에게 인정받는 기분에 많이 벅차올랐다.
퇴근시간 즈음 교무실로 올라간다.
오늘 저녁 해장이라도 같이 하려나 살핀다.
"야~ 힘들다. 이제 술은 1주일에 한 번만 먹자~"
그래. 너무 많이 보는 것 같다.
몸도 무겁고 건강도 안 좋은 것 같단다.
나도 저녁시간을 너무 의지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지금이 관계의 정점일 것이다.
이제는 이 상태를 잘 유지해야 한다.
너무 불편하지도, 어색해지지도 않게.
내 실패의 순간들을 돌이켜 본다.
처음엔 좋아서 자주 만났고.
자주 만나서 멀어졌던.
감정
지금껏 여러 부부모임을 했다.
분위기가 좋아서 다음 약속을 잡았다.
아이들도 잘 놀아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추억이 생긴 것도 많다.
계획을 다 짜주어 편하게 다녀온 적도 많다.
하지만 긴 시간을 함께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게 아니지만 먹었다.
컨디션이 안 좋지만 같이 움직였다.
의견이 부딪칠 때도, 괜한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나 하나의 예민함이라면 참고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해당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그것을 드러나게 했다.
평상시 주고받던 가벼운 농담이었다.
그날은 유독 내 말이 거슬렸던 것 같다.
크게 싸운 것도 아니지만 다시 찾지는 않는다.
100번을 잘 지냈어도 한 번 잘못되면 끝이다.
100번의 만남은 어긋날 가능성을 높여왔다.
100번의 기회를 너무 빨리 썼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사랑했다면' 이런 노래 가사처럼.
아무리 좋아도 적당히를 알았어야 했다.
마음이 커질수록 더 위험하다는 걸.
자만
내 전성기는 30대 초중반이었던 것 같다.
의욕이 넘쳤고, 당당히 말했고, 사람을 좋아했다.
독서 모임, 영재 수업, 글쓰기 등 외부 활동도 많이 했다.
당시에는 내가 엄청 잘하고 있다고 여겼다.
누구를 만나도 금방 친해지고 잘 지낼 수 있다고.
수업이든 업무든 내가 맡은 건 잘 해낼 능력이 있다고.
그러다 한 형에게 이런 얘길 들었다.
"넌 나중에 많이 깎이게 될 거 같다."
그땐 그냥 가벼운 조언으로 여겼다.
돌이켜보면 그 이후로 계속 깎이는 과정인 것 같다.
좋은 인연도 있었고 나름 이루어온 결과도 있지만.
쭉 올라가는 분위기에서 위태로운 순간이 생겼다.
팬들의 고마움을 잊은 연예인이 이렇게 되었을까.
자기가 잘나서 이렇게 성공했다고 자만하는 그때에.
꼭 연예인 병이 연예인에게만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를 알아봐 줄 때 고마워할 줄 알아야 했다.
내 성취도 주변의 도움과 뜻밖의 행운이었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감정과 적정 거리를 두어야 했다.
기쁨은 또 나를 우쭐거리게 만들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내 불행의 시작이 되겠지.
이제 기쁨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주식의 최고가는 알기 어렵지만.
내 마음의 최고점은 느낄 수 있다.
이제야 기쁨이 주는 의미를 조금 깨달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