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그때 전 세계는 핵폭탄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아마 그때부터 호랑이가 무서운 시절은 지나가고 핵이 무서운 대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언어는 사회 인식을 반영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핵’을 바라보는지 우리가 쓰는 단어들을 통해 살펴보자.
충격적임을 묘사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 비키니 원자폭탄 실험
핵과 관련해 하나의 일상 용어로 자리 잡은 대표적 단어가 ‘비키니’다. 원래 비키니는 북태평양 마셜군도에 있는 작은 섬 이름이다. 이 비키니섬에서 미국이 1946년 처음 원자폭탄 실험을 했다. 그때 디자이너 루이스 레아르는 나흘 뒤 프랑스 패션쇼에 올릴 자신이 만든 옷에 붙일 이름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 옷은 바로 배와 허벅지를 훤히 드러내어 투피스로 나온 가장 작은 수영복이었다. 그렇다. 바로 ‘비키니’다. 루이스는 이때껏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옷이라며, 이 옷을 표현할 언어를 찾던 중, 동시대 가장 충격적인 일인 핵폭탄 실험을 하고 있던 비키니섬에서 그 옷의 이름을 따왔다. 사회에 강력한 충격과 놀라움을 준다는 비유로서 핵이 사용된 첫 사례로 볼 수 있다.
‘핵폭탄급’에서 ‘핵인싸’라는 단어가 나올 때까지
한국에서도 핵과 관련된 표현을 자주 쓴다. 핵노답, 핵유잼, 핵인싸. 한 번쯤은 일상에서 들었을 표현이다. 이 언어는 언제부터 이렇게 쓰였을까? 맨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 ‘핵주먹’이다. 네이버 기사 라이브러리를 찾아보니 한국에 핵발전소가 들어서고 딱 10년이 된 해 처음으로 언론에 핵과 관련한 표현이 등장했다. 1987년, ‘핵주먹’을 시작으로 ‘핵폭탄급사태’ 같은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른 국가에서도 이러한 용례로 사용한다고 하니 ‘핵’이라는 게 인간이 상상하고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의 폭발이라는 원자폭탄과 핵사고의 공유된 이미지에서 온 표현이라는 추측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파괴적인 힘을 차용하며 비유되던 ‘핵’의 이미지가 희미해졌다. 2010년대 중순부터는 접두사로써 빈번히 사용되면서 그 충격의 의미가 줄어든 것이다. 핵유잼(핵+有+재미), 핵인싸(핵+insider) 같은 표현들은 심지어는 긍정형으로도 쓰이고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신조어로 뉴스에 소개되고, 따라가야 할 유행어에서 이제는 철 지난 단어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강력한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그 뜻이 ‘매우 강함’ 혹은 접두사 ‘개’ 정도로 약화된 것이다.
‘존맛’ 말고 ‘탈핵존맛’
한때 많이 쓰였던 핵존맛 같은 단어들에 지인이 “탈핵존맛”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제야 나는 ‘핵’이라는 접두사를 쉽게 쓰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인은 맛있다 같은 긍정적인 것은 “탈핵존맛”을 붙임으로써 탈핵을 긍정적으로, 부정적인 것은 부정적으로 내버려둘 수 있도록 정확한 언어 실험을 하는 중이었으리라.
핵이라는 언어 표현이 쉬워진 데에는 핵이 더 이상 두려움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기보다는 정치의 안줏거리에 지나지 않음에 있다고 본다. 핵발전소를 지을 때 우리 안에는 그런 무서움이 있었을 테지만, 핵발전소가 원래부터 있었던 때부터 태어난 사람들에게 핵발전소란 그저 저 먼 지역의 변두리 깊숙한 공간에 있는 곳이다. 핵발전소는 더 이상 무서운 것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의 영역이 아닌 정치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윤석열 정부가 18기 노후 원전의 수명을 늘리려 하고 있다. 그들은 벙커가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고, 고작 해봤자 100년을 살 뿐이다. 방사능은 우리의 수명보다 길고, 그렇기에 사용후핵연료, 즉 방사능 덩어리 폐기물은 우리의 수명보다 오래 땅에 있을 것이다. 지진과 태풍 같은 자연재해와 기계 노후화, 인간의 실수 등 예측할 수 없는 그 많은 일들이 단 한 번도 없어야만 원전은 안전하다. 그런 시간을 생각했을 때, 부정형의 핵이 긍정형으로까지 사용되고 있는 이 언어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자주 쓰는 언어 속에서, 우리의 시선을 점검해보자. 탈원전의 힌트는 우리의 언어 속에도 있을지 모른다.
글. 박이윤정(녹색연합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