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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igma Apr 01. 2019

물거품이 된 신랑의 버킷리스트

하와이 허니문 이야기 (2)

신혼여행을 첫 해외여행으로 가게 된 신랑에게 물었다. 

"가장 해보고 싶은 거 있어? 버킷리스트 같은 거 말이야" 신랑은 대답했다. "음... 스카이다이빙!!" 


여행 예찬자로서 신랑의 첫 해외여행을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신랑의 여권을 만들러 가는 것부터 함께 했다. 점심시간에 같이 손을 잡고 강남구청으로 가 여권신청을 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나왔다. 신랑의 이름이 적힌 여권을 보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저 여권을 들고 평생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상황과 여건과 우리가 되길...'


신혼여행을 준비하며, (사실 패키지로 가는 거라 크게 준비할 게 없었다) 신랑의 드림카인 컨버터블 머스탱을 렌트할 수 있도록 예약했다. 하와이 해변가를 시원하게 달릴 것을 상상하면서... 신랑의 버킷리스트인 스카이다이빙은 여행사 상품에는 없었으므로 따로 업체를 알아보고 예약해뒀다. 혹시 날씨 때문에 캔슬되면 그다음 날이라도 할 수 있도록 적당한 날짜로 예약했다. 너무 기대됐다. 평소 신랑이랑 데이트를 할 때에도 드라이브하는 순간을 가장 좋아했던 나였기에 하와이 해변을 드라이브할 생각에 설렜다. 몇 년 전, 터키 여행을 하며 패러글라이딩의 성지인 페티예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했었다. 하늘에서 봤던 경관을 잊을 수가 없었고 생각보다 안정감이 들었던 패러글라이딩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스카이다이빙은 얼마나 짜릿하고 재미있을까?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여행 가이드의 투어상품 강매와 렌터카에 대한 우려를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다. 짜증이 나서 투어상품을 추가는커녕 오히려 있던 것도 취소했다. 딱 하루만 투어 버스에 타고 동부 섬 투어를 하기로 했다. 동부 섬 투어를 하기로 했으니, 사실상 코스가 겹치기 때문에 차를 렌트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렌터카까지 취소했다. 일부러 국제 면허까지 발급받아서 왔는데... 신랑이 실망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괜찮다 했었고 오히려 휴식이 주어져서 둘 다 내심 좋아했다. (결혼 준비로 쌓인 그간의 피로 때문에 많이 지친 상태였다)


딱 하루 패키지 투어로 동부 섬 일주를 하고 나머지 일정은 자유롭게 즐겼다. 호텔에서 늘어지게 잠도 자고, 호텔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도 하고 바로 앞에 있는 비치에도 갔다. 호놀룰루 시내를 손잡고 걸어 다니며 구경도 하고, 갑자기 피자가 너무 먹고 싶어서 피자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날도 맘껏 놀다 씻고 자려던 참이었다. 내일은 드디어 기대하고 기다리던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날이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호텔 욕실에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짧은 영어로 리셉션에 전화를 걸었고, 한시 두 시간이 지나서야 수리하는 분들이 올라왔다. (대게 하와이에 있는 호텔들은 오래돼서 룸 컨디션이 좋진 않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씻을 수 있었다. 씻고 누우니 새벽 2시. 스카이다이빙 픽업은 새벽 4시 30분. 서둘러 잠을 청했다.


눈을 감자마자 뜬 것 같았다. 우리 둘 다 비몽사몽 힘든 상태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섰다. 픽업장소에서 투어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 컨디션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스카이다이빙만은 꼭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픽업차량에 올랐다. 그 순간 갑자기 구토가 올라오고 머리가 핑 돌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신랑에게 미안한데 혼자 하고 오라고 말하고 차 밖으로 뛰쳐나가 길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을 간신히 정말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길바닥에 거의 눕다시피 한 상태로 신랑이 스카이다이빙 캔슬 서명을 하는 것을 지켜봤다. 정말 참담했다. 신랑에게 업혀 호텔로 돌아갔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911이나 병원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보험 없이 병원비를 내는 건 파산신청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다) 호텔로 돌아와 화장실에서 한참 동안 나올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구역질과 어지러움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신랑은 안절부절못하며 구글링을 했고, 신랑은 내가 침대에 눕자 '약물 과다 복용'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사실 결혼 전부터 감기를 심하게 걸려 기침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기침을 달고 하와이까지 갔었고, 누적된 피로와 장거리 비행으로 기침은 더 심해졌었다. 여행 내내 기침과 감기 기운으로 몸이 힘들어서 여행 가이드가 소개해준 나이트 퀼'이라는 감기약을 사서 마셨다. 별로 효과가 없자 신랑이 내 증세를 면밀히 검토하고 구글링 한 후 '뮤시넥스'와 '델심'이라는 약을 사줬다. 다음날 있을 성공적인 스카이다이빙을 위해 전날 밤에 약을 먹고 잤는데, 약을 기준치보다 조금 더 많이 먹었을뿐더러 잠을 2시간 밖에 못 잔 터라 약이 체내에 흡수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한참을 앓다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창가로 비치는 햇살에 눈을 떴다. 불과 몇 시간 전 새벽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내 몸은 안정을 찾았고 창 밖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마치 악몽을 꾸고 일어난 느낌이었지만, 현실은 거금 40만 원을 들여 예약한 스카이다이빙, 바꾸어 말하면 신랑의 버킷리스트가 물거품이 된 상태였다. 신랑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하며 약해빠진 내 몸뚱이가 원망스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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