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lmost the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ol K Mar 20. 2018

42



 42는 오늘도 함께 하지 못했다. 어제 '신들의 다리'를 건너 워싱턴 구간을 처음 걸었을 때만 해도 해맑고 신나 보이는 그였는데, 야영을 하기로 한 곳에서 텐트를 치던 중 텐트 칠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고는 다시 짐을 싸 혼자 그 자리를 떠났다. 그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오늘 저녁 야영할 곳까지 걸으면서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다. 



< 물을 정수하는 42를 찍은건지, 나뭇잎을 찍은건지... >




 42는 이미 애리조나 트레일, 콜로라도 트레일은 물론 존 뮤어 트레일을 완주했고, 스스로를  '베이비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칭할 정도로 장거리 하이킹에 자신 있어한 베테랑 하이커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방에 별로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그의 행동은 때론 우리를 의아하게 했고 또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길을 걷다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면 한동안 멈춰 서서 자신만의 시간에 빠져들기도 했고, 가끔은 그 분위기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우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의 트레일 네임인 '42'도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에서 인생, 우주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이었던 '42'를 따온 것이니, 그 트레일 네임만으로도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유추해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마음도 여렸다. 동물들이 불쌍해 육식을 꺼리기 시작해 지금은 채식만을 하고 있고, 지난 셰프와의 관계 때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우 힘들어하기도 했다.

 타인의 성격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았지만, 가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행하는 그의 뜬금없는 행동에 적잖은 당황을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분위기 자체가 이상해졌기에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문제로 그가 어제 자리를 떴을까? 삐진 걸까? 하는 토론을 썬더버니와 와일드맨이 한창 하고 있었는데, 'PCT Days'에서 우리와 합류했던 해피아워(Happy Hour)가 한마디 거들었다. 해피아워는 캘리포니아 주를 지날 때 42와 오랜 시간 함께 했었던 적이 있었다. 


 "42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그의 사고방식과 멘탈은 우리와 다르니, 우리가 느끼는 기분만으로 그를 판단할 수는 없어. 늘 그렇듯 그는 우리에게 돌아올 거야. 시간이 약이지. 걱정 말라고" 


 "아무래도 트레일이 끝나가는 시점이라 그런지, 마지막인 워싱턴 구간에 들어오니 감정이 더 복잡해지나 봐. 한국에서는 이런 친구를 '유리멘탈'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어쨌든 42 본인이 잘 알아서 할 거니 너무 걱정 말고 우리나 걱정하자고. 썬더버니 허리 쓸린 데는 괜찮아?"


 나도 한마디 했다. 사실 42의 이런 감정은 스스로가 잘 컨트롤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기에 우리가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었다. 그 보다 허리 벨트에 쓸려 상처가 난 썬더버니와 발바닥의 굳은 살을 걷어내다 생살까지 들려서 상처가 난 내 걱정이 우선이었다. 걸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피 섞인 진물이 양말을 적셔 신발 밑창까지도 핏물이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5일간의 제로데이에 몸과 마음이 무뎌진 상태에서 오르막길을 15km 정도 올라서 그런지 몸이 버거워했다. 썬더버니도 처음엔 별거 아닌 상처였는데 같은 부위에 계속 마찰이 생기니 상처가 더 커져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나 보다. 괜찮다는 그녀에게 가지고 있던 호랑이연고를 상처에 바르라며 건네주었고, 그게 고마웠는지 달콤한 오레오 2개를 내게 답례로 주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잠들기 전, 42 생각을 잠깐 했다. 난 42가 좋았다. 여리기도, 감성적이기도 하고 유리 멘탈을 소유한 그였지만, 그의 유머러스함과 풍류를 아는 모습이 좋았다. 나도 가끔은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전 한국에서도, 이 트레일에서도... 만사가 귀찮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냥 혼자 있는 게 답이다. 전화도 받지 않고 그냥 집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정처 없이 하루 종일 혼자 걸을 때도 있었다. 그런 기분일 때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로 상처받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내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라도, 그러고 싶을 때는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더 편하곤 했다. 나도 그랬었기에, 그런 42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 IPA 한잔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맨 우측 친구가 바로 42이다. >

 



 간밤에 비가 오더니 아침까지 계속 내렸다. 워싱턴 구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는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에 내리는 비는 주변의 아침 공기를 차갑게 만들기 충분했다. 오전 8시가 넘어도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냥 밥을 챙겨 먹고 비를 맞으면서 배낭을 꾸렸다. 와일드맨은 오늘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고 50km를 넘게 운행할 거라며 먼저 출발했다. 50km 조금 넘는 지점에서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나는데 그곳으로 아버지가 온다고 했다. 함께하고 싶었지만, 나나 썬더버니나 상처로 인해 걸음이 좀 불편했기에 그냥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기로 했다. 해피아워도 함께.

 레인재킷 만으로 내리는 비를 다 커버하기엔 역부족이라, 숏 팬츠만 입은 하체가 그대로 비에 노출되어 하루 종일 추위에 떨었다. 점심도 비를 피할 곳이 없어 건너뛸까 생각했지만, 아침을 대충 먹었기에 배가 고파서 힘이 나질 않았다. 대충 물을 끓일 수 있는 곳을 찾아 라면을 하나 끓여서는 서서 먹었다. 해피아워는 대충 토르티야에 치즈랑 이것저것 섞어 먹었기에 불편함이 없었지만, 너무 추웠던 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뜨거운 것을 먹어야만 했다. 확실히 뜨거운 국물이 몸에 들어가니 살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에 안 좋다고 하지만, 이럴 때는 정말 라면만 한 게 없었다. 값도 싸고 열량도 높기에 한 끼 식량으로 충분했고, 거기다 무게도 무겁지 않아 금상첨화였다. 나는 봉지라면보다는 면발이 얇은 사발면을 애용했는데, 아무래도 면발이 얇아야만 조리 시 소비되는 가스 양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사발면을 여러 개 사서 큰 지퍼락에 부셔 담고 수프만 따로 챙기면 되니 준비하는 것도 간단했다. 장거리 하이킹과 라면, 한국인과 라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 비가 내리는 숲 길을 걸을때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한동안 넋을 잃을때가 많다. >




 점심을 먹은 이후에는 쉬지 않고 미친 듯이 걷기만 했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이끼 낀 숲 속을 걷는 것이 기분 좋게 느껴질 만도 했지만, 일어나서부터 느꼈던 추위 때문에 조금의 낭만도 가져볼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조금이라도 더 체온을 높이고자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기만 하다 숲길이 끝나고 벌판으로 나오니, 갑자기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구름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오들오들 떨다가 걷히는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몸에 닿는 순간, 마치 어릴 적 엄마의 품속에서 느꼈던 그런 따스함이 느껴졌다. 한동안 그 따스함을 품은 채 하늘만 바라보면서 햇빛 한 줄기에서 느껴지는 이 따스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다 뒤따라 온 해피아워가 배낭에서 텐트를 꺼내 말리는 걸 보고는 나도 얼른 젖은 텐트를 꺼내 넓게 펼치기 시작했다. 지금 말리지 않으면 오늘은 젖은 텐트에서 자야만 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그쳐준 비와 걷힌 구름 덕분에 춥고 힘들었던 하루의 꿀 같은 휴식 시간을 황금색 벌판에서 가질 수가 있었다.

 

 "케이! 저 위에 트레일 매직이 있다는데??"


 입이 양쪽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뒤돌아 선 해피아워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의 고생을 누군가 알아주기라도 한 듯, 기가 막힌 타이밍에 트레일 매직을 알리는 사인을 보고 나니 나 또한 입이 귀에 걸리듯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화살표가 향하는 방향으로 걸어가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누군가의 캠핑카가 보였고, 지글지글 무언가를 굽고 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마움에 그대로 달려가 햄버거 패티를 굽고 있는 엔젤을 와락 끌어안았다. 호탕하게 웃던 그는 우리를 위해 먹음직스러운 햄버거를 즉석에서 만들어주었는데, 채식을 하는 해피아워를 위해 베지테리언용 패티를 따로 구워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미 그들에게는 당연한 문화였겠지만, 채식주의자를 위한 그런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내게는 매우 인상 깊었다. 햄버거에 이어 브라우니, 도넛 등 많은 음식을 우리에게 내어줬지만, 그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부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트레일 엔젤이라는 문화와 함께 느껴진 소수의 권리를 동일하게 대우해주는 그들의 문화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작은 배려. 그 배려야말로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시작은 춥고 배고픈 하루였지만, 마지막은 따스함과 동시에 훈훈함까지도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 트레일 매직 이후 1km 정도 더 진행한 곳에 위치한 텐트 사이트에서 먼저 도착해있던 42도 만날 수 있었다. 늘 그랬듯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반갑게 마주한 그에게 그냥 보고 싶었다고만 했다. 그 역시 우리에게 보고 싶었는데 왜 이리 늦었냐고 투정했고, 우리는 다시 트레일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위키가 피그 테일과 함께 트레일에 복귀했다고 파워 타이츠가 아침을 먹으며 얘기했다. 안 그래도 썬더버니가 텐트사이트에 도착하지 않아 궁금했는데, 어제 늦게 이 곳에 도착한 파워 타이츠가 트레일 매직에서 썬더버니가 위키, 피그 테일과 함께 있는 걸 봤다고 했다. 파워 타이츠는 그들이 'Trout lake'에서부터 시작되는 우회(Detour) 구간을 걷지 않고 그냥 뛰어넘을 거란 얘기를 했다고 우리에게 전했다. 산불로 인해 트레일 일부 구간이 막혀 약 30km 이상을 아스팔트로 우회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건너뛸 생각인듯했다. 난 그들이 우회 구간을 건너뛸 예정이라는 것보다 위키와 피그 테일이 트레일로 복귀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아무래도 위키의 아쉬움이 크게 작용했고, 피그 테일이 그의 의견을 존중해 마지막까지 함께 하기로 한 듯 보였다. 위키의 결정에 마음속으로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곧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괜한 반가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우회 구간에 들어서기 전, 인근 마을인 'Trout lake'에서 잠깐의 휴식을 가지기로 했다. 약 16km 정도를 걸은 후 히치하이킹을 해서 마을로 들어갈 수 있었고, 마을에 위치한 햄버거 가게에서 와일드맨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작은 스토어에서 스낵과 위스키를 좀 사고는 젖은 장비들을 햄버거 가게 뒤에 위치한 뜰에 펼쳐놓고 말리기도 했다. 희남이와 희종이도 이 곳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 역시 워싱턴의 비 때문에 고생을 좀 한 듯 보였다. 핼쑥한 몰골로 서로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찡하기도 했다. 햄버거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희종이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문득 '나는 이 친구들의 나이 때 뭘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길을 걸으며 느끼는 것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나 보다 어린 나이에 이 PCT를 경험하고 있는 이 친구들이 갑자기 부러웠다. 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이런 큰 경험을 하고 나면 앞으로의 인생을 그려 나갈 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도 좀 더 젊었을 때 이런 경험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또 한 번 느껴졌다. 


 "형! 먼저 갈게요! 끝까지 파이팅하세요!"


 갈 길이 멀어 먼저 출발한다는 희남이와 희종이를 먼저 보내고 조금 더 쉬다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우리도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마을로 오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했던 지점에서 약 37km를 로드워킹으로 우회해야만 했다. 오후 늦은 시간에 출발했기에 오늘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최대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캠핑장을 목표로 삼았는데, 결국은 거기까지 못 가고 약 14km 지점에서 도로 옆 넓은 공터에 텐트를 치고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때 시간이 밤 10시였는데, 역시 로드워킹은 트레일을 걷는 것보다는 두배 정도 더 피로감이 쌓이는지 다들 텐트를 치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 산불로 인해 통제된 트레일을 아쉽게도 인근 도로를 이용해 우회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마냥 즐거웠던 한때 >




 워싱턴 주는 역시 워싱턴 주였다.

 캘리포니아 구간을 지날 때 마주쳤던 비는 비도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비가 오다가도 안 오는 틈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렸다 하면 하루 종일 내렸다. 중간에 잠깐이라도 텐트나 젖은 장비를 말릴 수 있는 틈이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으니 젖은 텐트를 그대로 치고 들어가 그냥 물기만 대충 닦고 자는 수밖에 없었다. 유리 멘탈의 42는 밤사이 계속 내린 비로 물바다가 된 텐트에 화가 나 말없이 혼자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기도 했다. 우회 구간을 걷는 내내 내린 비로 짜증이 난 상태에서 그런 상황을 겪으니 아무래도 받는 스트레스가 배가 된 듯했다.

 어쨌든 우회 구간이 끝나고 'Knife edge'를 통과해야 하는데, 계속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어 상황이 어려워졌다. 다들 아이젠도 없었기에 혹시나 얼어 있을 수도 있는 눈 쌓인 구간을 맨몸으로 걸어야만 했다. 더구나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구간이었기에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정오 때 잠깐 비가 그치길래 냉큼 텐트를 널어두고 점심을 먹었는데, 10분도 채 안돼서 다시 내린 비로 점심을 먹는 도중에 배낭을 꾸리느라 비를 쫄딱 맞기도 했다. 비에 젖은 생쥐꼴로 덜덜 떨면서 계속 걸었는데, 역시나 'Knife edge'가 보이기 시작하자 비는 눈으로 바뀌었고, 이미 그 일대는 눈으로 쌓여 있었다. 나름 중무장을 한다고 했지만, 매서운 강풍이 부는 이 곳을 지나기엔 역부족이었다. 레인 팬츠가 없어 다리가 다 드러나는 숏 팬츠만 입고 걸어야 했고, 장갑을 껴도 손가락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미 손과 발은 얼어있었다. 몸을 날릴 듯 부는 강한 바람을 타고 온몸을 때리는 우박을 그대로 마주한 채 가파르고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때때로 강한 바람에 몸이 휘청일 때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고, 눈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안 보일 때는 추위에 노출된 채 그대로 멈춰 서있기도 했다. 아이젠만 있었더라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 텐데, 미리 준비하지 못한 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정말 추워 죽겠다는 말을 체감할 정도로 춥고 위험했던 길이었지만,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모두가 지나올 수 있었다. 다만, 'Knife edge'를 지나기 전부터 보이지 않던 와일드맨은 이 구간을 지나 오늘 캠프를 할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우리보다 앞서 갔기에 우리가 멈춰 선 지점을 지나쳤을 거라 생각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하루 종일 떨어서인지, 침낭 속에 몸을 눕혔지만 추위가 가시질 않았다. 내 집의 따뜻한 이불속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 눈이 섞인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Knife edge'를 향하는 비장한 뒷모습 >



 

 42는 오늘도 아침 일찍 떠났다고 했다. 텐트가 또 한 번 물바다가 되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새벽부터 계속 투정을 하고는 그대로 짐을 싸 떠났다고 했다. 그가 마음의 안정을 조금 찾길 바랬는데 계속되는 그의 감정 기복이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오후 정도면 약 3,700km 지점의 'White pass'에서 다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서두르지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비는 계속 내렸고, 어제의 한기가 오늘도 그대로 느껴져 최대한 빠른 속도로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조금만 좋았다면 'Mt.Rainier'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었지만, 날씨가 흐려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사실 주변을 뿌옇게 뒤덮은 안개가 아니었더라도 지금은 너무 추워 경치를 감상하기보다는 최대한 빨리 내려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추위 속에서 얼마를 더 걸었을까?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지나다니는 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몸이 먼저 반응해 거의 날으는 수준으로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갔다. 트레일의 시작을 알리는 여러 안내문이 서 있는 입구의 모습이 보이자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두 다리가 풀리고 거의 주저앉을 뻔했다. 몸이 아직 얼어 있었기에 체온을 낮출 수가 없어 속도를 늦추지 않고 저 멀리 보이는 'White pass'의 스토어를 향해 계속 움직였다. 이윽고 다다른 스토어에는 역시나 와일드맨과 42, 어디서 왔는지 모를 썬더버니와 위키 그리고 해피아워가 모여 있었다. 하고 싶은 말과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일단 몸부터 녹이기 위해 따뜻한 스토어 안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들 하루정도 쉬고 싶어 인근 마을인 'Packwood'로 나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휴가철에 주말까지 맞물린 날이었기에 예약이 꽉 차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에 결례를 무릅쓰고 와일드맨이 워리어 하이커 멤버인 탱크(에릭)에게 연락을 했고, 우리의 간절함을 느낀 탱크가 고맙게도 본인의 집으로 초대를 해주었기에 우리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거기다 탱크의 집은 이곳에서부터 약 2시간 떨어진 거리인 'Olyimpia'에 위치해 있었는데, 여기서 탱크의 집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이 없다는 걸 알고는 그가 직접 픽업까지 온다고 했다. 진심으로 탱크가 너무 고마웠다. 


 일이 모두 잘 풀리고 나니, 갑자기 긴장이 풀리고 잠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추위로 인해 밤잠을 설친 탓인지, 지금까지는 느낄 수도 없었던 졸음이 몰려오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온기가 묻어 있는 벽 모서리에 기대어 스르륵 조용히 잠이 드는 것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쉬움과 설레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