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간 키즈카페에서 나를 돌아보기
벌써 이직을 한 지도 한 달 반이 되었다. 나의 브런치에 운동이나 육아 글을 기대하고 들어오신 분들에겐 죄승스러운 일이면서도, 글 주제를 생각하면 회사, 일, 이직 등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운동이나 육아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일상(에 녹아든 게 아닌 일상 그 자체)이고 일은 여전히 하기 싫은 나와 투쟁해야 할(이런 대목에서 struggle이란 동사가 매번 떠오른다) 어떤 것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직 후에는 재밌게 일하고 있습니다.)
본가(aka친정)에 갔던 지난 7월 말, 장마기간이라 어김없이 비오는 일요일이었기에 어디든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키즈카페를 검색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주 저렴하면서 평가가 좋은 키즈카페를 발견했다. 이름하여 '플레이타임'. 이름은 낯설었지만, 아...아니? 여기에 진짜 익숙한 놀이기구가!!! 후기에서 본 사진 하나가 20년 이상의 시간을 거슬러 나를 어릴적으로 소환했다.
보호자 입장료는 없고 아기 입장료도 2시간에 14,000원인 혜자 키즈카페는 입구부터 90년대였다. 입장 안내문도 포스터칼라로 직접 쓴 듯했고, 간단한 간식을 파는 카페에는 응답하라1994에 나올 것 같은 OO햄버거가 걸려 있었다. 쉴 수 있는 공간은 텐트였다. 텐트의 테이블에는 세계지도가 붙여 있었다. 화룡점정은 흘러나오는 BGM이 '동요'였다는 점이다. 정말 말 그대로 동요. 요즘 키즈카페는 아이들을 현혹시킬 목적으로 핑크퐁이며 뽀뽀로며 가지각색 영상을 틀어놓는데 "파란하늘~ 파란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하는 순수한 동요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동요 중 모르는 게 없었다. 아들에게 자주 틀어주는 것도 있지만 내가 어릴 적에도 불렀던 동요였기 때문이다.
아들은 모르겠지만 엄마가 이 곳에 온 목적은(?) 보호자를 가장한(??) 롤러미끄럼틀을 타기 위해서니(???) 얼른 가보자고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최근의 많은 놀이기구들이 계단만 이용하면 미끄럼틀을 탈 수 있는 것과 달리, 이 곳은 미로처럼 미끄럼틀을 가는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미로들은... 나에게는 아주 작았다. 원통형으로 꾸불꾸불 만들어진 미로 속에서 미끄럼틀로 가는 길을 찾아 나는 내내 기어야만 했다.
늘 그렇듯 엄마의 마음에 따라 움직여주지 않는 아들을 따라다니며 한 손을 디딜 때마다 몹시 불편했다. 기어가는 자세가 힘들었고, 이어지는 마찰에 무릎도 아팠다. 속도가 더딘 나에 비해 아들은 매우 재빨랐다. 아직 90cm가 약간 안되는 아들은 내내 서서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어느 곳이든 고개만 약간 숙이면 가기에 충분했다. 그런 모습과 대비되는 나의 모습. 그 순간 아주 절절하게 직감했다.
'나는 이제 컸다. 이제 어린이로 돌아갈 수 없구나.'
아기를 돌보고, 회사를 다니고, 운동을 하는 일상을 살아가며 '난 지금 어른!'이란 생각을 구체적으로 할 일이 거의 없는데다가, 있더라도 내가 생각한 어른은 대개 마음에 99.9% 머물러 있던 것 같다. 30대라면 이래야지, 어른이라면 이래야지, 부모라면 이래야지,와 같은. 그런데 이렇게 내 몸도 롤러미끄럼틀을 찾아가기에 너무 커버렸다는 사실을 통감하니 무라카미하루키 식으로 이야기하면 "으음, 정말 빼도박도 못하게 어른이 되어버렸군요"라고나 할까. 그래. 정말 이제는 어린이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어서인지, 3살짜리도 재밌게 탔던 롤러미끄럼틀을 막상 타려니 어찌나 겁이 나던지. 그렇지만 엉덩이에 닿는 그 감촉과 내려가는 스릴만큼은 그대로였다!!(고 믿고 싶다) 고통스러운 무릎을 부여잡곤 몇 번이나 타러갔다. 흐흐 좋아라.♥
이즈음 내가 좋아하는 박상영 작가의 신작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 나와 읽고 있었는데, 이런 글귀를 마주했다. "나는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나와 동갑인 박상영 작가의 문장까지 마주하니 나는 속절없이 인정하고 만 것이다. 다시는 '어린 이'로 돌아갈 수 없음을.